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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pr 21. 2020

열다섯 아이돌 덕후에게 배우는 인생

큰 아이는 어려서부터 내성적이었다. 어른들 앞에선 부끄러움을 많이 탔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양보하면서 맞춰주는 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이에 대한 담임선생님들의 평가 역시 ‘성격이 유순하고, 조용히 자기 할 일을 잘하는 아이’였다.


내향적인 아이의 오랜 취미는 책 읽기. 5학년 즈음부터는 글밥이 많은 책도 무리 없이 읽었고 특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좋아했다. 소설뿐 아니라 내가 읽는 교육이나 심리학 관련 책도 흥미로워하며 읽었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은 어휘력이 부족해 이해를 잘 못하는 적도 많았다. 그럴 때면 모르는 단어나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물어가며 완독 했다.      


여행지에도 책을 가져갈 정도로 책을 좋아하던 큰 아이.


지금 아이의 나이 열다섯. 어떻게 지내느냐고? 지금은 고전이나 더 두꺼운 책도 술술 읽지 않느냐고? 한 숨 먼저 한 번 쉬겠다. 휴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제 아이는 예전처럼 책을 붙들고 살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보이 그룹과 관련된 음악과 영상에 빠져 지낸다.


예전엔 책 살 때 외엔 돈이라곤 쓸 줄 모르던 구두쇠였는데 요새는 툭하면 앨범이나 관련 상품, 콘서트 티켓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차비를 빼면 한 달 용돈이 만 원 정도밖에 안되다 보니 매일 학교까지 걸어 다니며 차비를 모은다. 영하의 추위로 떨어지는 날이면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는데도 괜찮다며 걸어간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10만 원에 달하는 콘서트 티켓을 구입할 때면 주저 없이 쓴다. 생일이나 명절에 받는 용돈도 모두 그렇게 쓰인다. 그럴 때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리는 건 나뿐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보이 그룹은 툭하면 싱글 앨범을 내고 공연을 수시로 한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게다가 두 개나 되는 그룹을 좋아하다 보니 두 그룹이 번갈아가며 앨범을 내놓고 공연을 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바빠진다. 음악 전문 어플에 정기권을 구매한 후 끊임없이 노래를 재생시키면서 순위를 지속시켜주는 것은 물론이요, 각 멤버들이 출연하는 티브이 프로그램 시청률을 위해 본방사수는 기본이다. 새로운 앨범이 발매되면 반드시 사전 구매하고(우리 집엔 디브이디 플레이어가 없어서 듣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콘서트 티켓을 구하게 되건 말건 콘서트에서 꼭 손에 쥐고 있어야 할 공식 응원봉도 미리 사둔다.      


아이는 서버가 다운되고 몇 분 만에 매진된다는 콘서트 티켓 구매를 작년에 성공한 데 이어 올 해도 두 번이나 콘서트를 다녀왔다. 문제는 콘서트를 간다고 해서 티켓 값만 드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콘서트를 앞두고 소속 회사에서는 응원봉뿐 아니라 가수의 이미지나 로고가 새겨진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한다. 좋아하는 멤버의 이름이 적힌 슬로건부터 부채, 응원봉 고리 등 콘서트 당일에 챙겨가야 할 물건이 엄청나게 많다.


작년 콘서트에는 좋아하는 멤버의 상반신이 그려진 유리잔 하나를 3만 원에 사 오기까지 했다.  나는 3만 원이 아까워서 미용실도 못 가는데!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아이들의 팬심을 이용해 횡포를 부리는 것 같아 화가 났고, 그걸 알면서도 사고야마는 아이의 팬심에 부아가 치밀었다.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인 딸아이는 친구를 불러 최애인 슈가의 생일상을 차리고 노트북으로 공연 영상을 관람하는 기념 파티를 열었다.  




작년의 일이다. 공식 콘서트 외에 여러 그룹이 모여하는 공연이 있는데, 아이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예매에 성공했다. 딸아이는 흥분한 상태로 방에서 나오더니 무조건 가겠다고 말했다. 차마 좋겠다거나 축하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찬물을 끼얹을 심산으로 대뜸 가격부터 물었다.   

     

“티켓값 얼마야?”

“5,500원”     


생각보다 너무 싸서 찬물 끼얹기는 실패.     


“그래?... 싸네”

“친구 것까지 두 장 성공했어”     


그래. 10만 원짜리 콘서트도 가는데 5,500원짜리 공연쯤이야.         


“그럼 같이 가면 되겠네. 공연장이 어디야?”

“음...”      


아이가 뜸을 들인다.      


“.. 부산”     


뭐라고... 부산? 차비가 티켓 값의 열 배도 넘을 텐데! 게다가 열네 살짜리 여자애 둘이서 그 먼 거리를 간다고? 평소 아이들에게 허용적이라고 생각하던 나도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던 소심한 딸아이의 모습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인형들을 아는 집에 물려주었을 때 알았어야 했다. 이제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아이는 결국 친구와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공연을 보러 갔다. 친구 부모님과 몇 번의 협의를 거치고 남편이 아이들을 인솔한다는 전제하에. 어릴 때 많은 시간을 함께 못 보낸 남편이 그간의 미안함을 만회하려는 듯 자발적으로 동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아이 혼자 10만 원짜리 콘서트를 보러 가는 것보다 훨씬 더 큰돈이 깨졌다. 속이 쓰렸다.     

   

나는 이렇게 연예인에 목매 본 적이 없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도 인기 있는 스타들이 많았지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학교에서 연예인에 대해 재잘거리는 친구들을 보면 유치하고 한심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내 딸이 그러고 있다. 예전 내 친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써가며. 이건 대체 누구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란 말인가. 주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딸 키우면 그런 재미가 있네”라고 곡해한다. 대체 누가 재미있단 말인가. 재미는 딸이 누리는 것이지, 내가 누리는 게 아니다. 나 같은 딸을 둔 부모들은 내 심정을 알 것이다. 하나도 재미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열다섯 살을 앞둔 지난겨울 방학 기간 동안 딸아이는 어느 때보다 팬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 했다. 밥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 그리고 꼭 보아야 할 프로그램을 보러 티브이 앞에 앉을 때 외에는 거실로 나오지 않았다. 방 안에서 음악을 듣고, 동영상을 챙겨보다가 밤을 새우는 일도 부지기수.


동영상을 볼 때도 혼자 얼마다 시시덕거리는지. 그 꼴이 보기 싫어서 문을 쾅쾅 두드릴 때도 있다. “좀 조용히 하면 안 돼?” 하고 윽박질러 보지만 대답만 “응” 하고선 어느새 다시 숨이 넘어갈 듯 킥킥거리며 웃어댄다. 그렇게 밤늦은 시간까지 열정을 불태우고서 잠이 들면 오후 4시나 5시쯤 되어야 배고프다고 방에서 기어 나온다(정말 기어 나오는 건 아니지만 감정상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겨울방학 내내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방에만 콕 쳐 박혀 그러고 있으니 명절에 온 시어머니도, 남편도, 나도 못마땅하긴 마찬가지. 보다 못한 남편이 슬며시 물었다.


“이번 겨울방학에 뭐 계획 같은 거 없어?”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다.


“최대한 무기력하게 지내려고. 밖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을 거야. 그게 내 계획이야”


남편은 아이의 상태가 너무 심각하다며 여러 번 걱정을 내비쳤고, 나도 ‘무기력’이란 단어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짤막한 충격적 대화가 오고 간 2주 뒤쯤. 방학이 시작하기도 전에 예매해놓은 콘서트 당일, 캄캄한 새벽이었다. 거실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일찍 일어나 갈 거라더니 정말 새벽부터 일어나 머리를 감고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전날 저녁부터 담요를 챙긴다, 물을 챙긴다, 요란을 떨더니 당일도 새벽부터 혼자 분주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아이를 그저 무기력하다고만 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최소한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할 때는 자기 에너지를 쏟아부으니까.        


요즘 딸아이의 근황은 그야말로 점입가경, 첩첩산중이다. 지난겨울보다 좋아하는 그룹이 두 개나 더 늘어 총 4개나 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벽에 붙일 데도 없는 브로마이드를 받겠다고 쓰지도 않는 화장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먹지도 않을 과자를 사고, 입맛은 한식인 주제에 이른 아침부터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사선 결국 반도 넘게 버리는 짓을 여전히, 더 자주 한다.   


초등학교 시절, 인형과 책으로 가득하던 아이의 책장
이제 책장을 차지한 건 아이돌 그룹의 CD와 응원봉이다.



그날도 아이는 방에서 영상을 보면서 숨이 넘어갈 듯이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거야? 나는 일하느라 힘든데.”


식탁에 앉아서 일을 하던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심드렁한 엄마의 기분 따위 아랑곳없이 깔깔댄다.


 “휴우.. 넌 좋겠다. 그렇게 웃을 일이 있어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랐다. 이거였나? 그동안 딸아이의 모습이 그토록 꼴불견이었던 이유가. 내가 누리지 못한 기쁨과 즐거움을 가진 사람을 미워하는 것. 사람들은 그걸 ‘질투’라고 부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었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나의 하루하루가 그 애에겐 강렬한 생의 기쁨일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던 모양이라고.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은 말한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사랑, 낭만은 삶의 목적인 거야.


그의 말대로 아이는 삶의 목적인 사랑과 낭만을 쫓았을 뿐이다. 열여섯의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었다. 키팅의 가르침에 열광하고 닐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으니까.


이제 나는 웰튼 아카데미의 부모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부모들은 곧잘 아이의 행복을 바란다고, 아이만 행복하면 된다고 말한다. 아이 스스로 행복을 찾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응원하겠다고.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아이가 쫓는 행복은 내가 바라던 방식이 아니었다. 나중에 행복하려면 지금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저으며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상술쯤으로 폄하했다. 아이는 내가 잠언처럼 고이 간직해온 ‘Carpe Diem'을 실천하는 것뿐이었는데.      


깨달음이 있으면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법. 아이가 좋아하는 한 그룹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다. 자세히 보니 다들 참 멋지다. 날렵한 몸으로 춤은 또 어찌나 잘 추는지. 안무 연습 영상만 보는데도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서는 무대마다 달라지는 의상도 멋지다. 무대를 찍은 멤버별 영상을 찾아보다 또 며칠이 흘렀다. 특히 춤을 잘 추는 멤버의 영상을 많이 찾아보았다. 강렬한 몸짓에서 삶의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이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싶다. 눈앞에서 공연을 보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그렇다고 앨범을 사거나 콘서트를 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돈 쓰는 건 우리 집에 한 명이면 된다. 나는 그냥 돈이 안 드는 영상만 찾아본다. 일 년을 꾸준히 찾아봤더니 이제는 목소리만 듣고도 이름을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 어느 땐 학교에 간 아이보다 먼저 인터넷에 뜬 기사나 영상을 찾아보기도 한다.      


“엄마, 혹시 그거 알아?”

“뭐?”

“이번에 슈가가..”

“콜라보한 거?”

“어떻게 알았어?”

“오늘 떴길래”      


이제는 아이가 영상을 보다가 시시덕거려도 꼴사납지 않다. 나도 가끔 그러니까. 카르페 디엠!     



2017년, 아이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썼던 글. 그 사이 두 그룹은 해체되었고, 한 그룹은 멤버들의 군대 문제로 활동이 뜸하며,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나는 최근에야 CD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구매했다. 스피커가 도착한 날, 나는 아이가 산 CD로 마음껏 방탄의 음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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