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세대인 두 딸아이는 모든 것을 휴대폰으로 해결한다. 폰으로 게임하고, 웹툰도 보고, 아이돌 영상과 외국 드라마를 보는 것뿐 아니라 화장법과 요리도 배운다.방학 때는 눈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들여다보고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개입보다 자유를 장려하는 나지만 온종일 휴대폰과 물아일체로 지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날이면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똑같은 잔소리는 자주 하면 효과가 떨어지는 법. 딱 한 번 임팩트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날이 그날이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 유튜브를 보던 둘째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유튜브 너무 많이 보는 거 아냐?"
"....."
나름 부드럽게 시작했건만, 아이는 묵비권을 행사한다. 평소 같으면 "눈 나빠지니까 적당히 해" 한 마디하고 말았겠지만 이날은 임팩트를 주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몇 마디를 더 건넸다.
"너무 휴대폰만 하지 말고, 가끔 책도 읽고 그래야지."
하지만 계속되는 침묵.
"나이가 들 수록 책을 읽어야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그때 나는 아이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길 바랐다.
'어? 엄마가 평소 이런 말 하는 스타일 아닌데. 책을 다 읽으라고 하다니.. 나를 위해 진심으로 하는 말이구나. 앞으로는 휴대폰 좀 줄여야지.'
하지만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던가. 아이는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작은 한숨 소리).. 엄마, 나는 이미 유튜브에서 인생을 다 배웠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던 로버트 풀검의 말처럼 단호한 어조였다. 아, 맞다.... 얘 중2지.
인생을 통달한 듯한 아이의 목소리 앞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퇴장한 나. 임팩트를 주기는커녕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꼴이 됐다. 내가 단순한 게임에서도 배운 것이 있듯 아이들도 휴대폰에서 배움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설사 '배울 게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하더라도 그걸 찾아내는 것 또한 아이들의 몫이라는 것도.
그리고 깨달았다. 일제 치하에 태어나 학교도 못 가고 산에서 나무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아버지와 경제부흥기에 태어나 만화책과 팝송으로 사춘기를 지나온 내가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듯, 모든 지식과 정보, 경험과 감정까지 휴대폰으로 공유하는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의 삶 역시 나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어차피 나의 경험 안에서 세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고, 십 대에 21세기를 사는 아이들의 세계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짜 뉴스가 넘쳐나고, 이상한 알고리즘으로 콘텐츠를 추천하고, 선정적인 내용이 뜬다든 유튜브. 도대체 어떻게 유튜브에서 인생을 배웠다는 건지 참 기가 찰 노릇이지만, 그렇게 큰 아이의 아이돌 사랑과 둘째의 유튜브 예찬으로 발을 들이게 된 유튜브의 세계. 그 후 1년....
이 안에는 실로 다양하고 놀라운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그것도 무료로!
엄청난 실력의 영어강사들이 제공하는 학습 자료와 강의는 물론이고 전 세계 수많은 명사들의 강의, 클래식과 재즈, 운동 영상까지.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고퀄리티의 모든 콘텐츠가 무료였다.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저는 유튜브로 영어 배워요. 우리 애는, 인생을 배웠고요."
사람들은 책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숭고한 지성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책을 사랑하는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하지만, 책이 대중화되면 사람들의 지성이 퇴화할 거라고 반대했던 소크라테스의 경우를 보면 새로운 매체에 대한 기성세대의 인식은 늘 보수적이었다. 자신들이 경험해보지 않았으니까. 구글 임원의 자녀들은 핸드폰을 안 주고 모래를 만지며 놀게 한다지만, 내가 구글 임원이 아닌 다음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