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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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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l 04. 2020

쓸데없는 DNA를 물려주었다.

딸아, 너는 제발 헛똑똑이로 살지 말거라


겨울이 생일이라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장갑을 자주 선물 받는다. 지금까지 받은 게 총 몇 번이나 되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건 모두 네 켤레다. 그런데 짝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 버스나 택시, 지하철 같은 곳에 타면 잠시 벗어두었다가 내릴 때 한 짝씩 잃어버린 탓이다.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그나마 다행이다. 맞춰 낄 수 있어서.


재작년 제주에 갔을 때는 오메기떡 한 박스를 김포공항 버스정거장 벤치에 두고 왔고, 작년에는 제주공항 보안검색대에 노트북을 두고 오기도 했다.  (노트북은 내비두고 이것만 챙겼더랬지요=>제주에 가장 흔하다는 이것)

   

며칠 전에는 급하게 미팅을 가느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회의장소까지 정신없이 뛰었는데, 도착해보니 손목에 차고 온 시계가 없어졌다. 약간 헐거운 터라 늘 조심했건만. 그 날은 늦는 바람에 신경을 쓰질 못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런 나를 헛똑똑이라고 불렀다.


“야야, 테레비 근처에 내 안경 좀 도.”      


어릴 적 아버지는 종종 이렇게 물건을 갖다 달라고 시키곤 하셨다. 나는 한참 텔레비전 주위를 서성거리다 결국 못 찾곤 “아부지, 없는데요?” 하고 대답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아버지는 텔레비전 밑에 서랍을 열어서 단번에 안경을 꺼내시곤 “여 있는데 와 없다 카노? 아이고, 이 헛똑똑이야.” 하며 나를 책망하셨다.      


내가 어디엔가 보온 도시락을 두고 오거나 우산을 잃어버린 날에도 나는 헛똑똑이가 되었다.      

 



대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기숙사에 짐을 옮기던 날이었다. 큰오빠와 새언니가 짐을 기숙사 한편에 내려주고, 지내는 동안 필요할 때 쓰라며 용돈을 쥐어주고 돌아갔다.    

  

짐을 얼추 정리하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친구랑 통화를 하기 위해 공중전화 박스를 찾았다. 기숙사 건물에서 몇 분쯤 시내 쪽으로 걸어 나오니 공중전화가 보였다. 전화카드를 넣고 번호를 눌렀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한참을 통화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숙사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지갑이 없다. '어디 갔지?' 지갑에서 전화카드를 꺼내 통화를 하고, 전화카드는 다시 주머니에 넣고, 지갑은..... 공중전화기 위에 그대로 올려두고 온 게 기억났다. 헐레벌떡 공중전화박스를 향해 달려갔다. 헉헉,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지갑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대학 입학을 한다고 여기저기서 받은 용돈 삼십만 원과 함께.



    

둘째를 낳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때였다. 며칠을 고민하다 장식장에 있던 예물 케이스를 꺼냈다. 이미 남편의 세 돈 짜리 금반지와 아이들 돌반지는 팔아서 생활비로 써버린지 오래. 내가 받은 예물 반지와 귀걸이, 목걸이만 남은 상태였다. 결혼식과 신혼여행 후 시댁에 인사를 갈 때 외엔 착용해보지 않은 예물들이었지만, 모두 팔아버릴 생각을 하니 어쩐지 마음이 허전했다. 하지만 쌀은 떨어지고 당장 마트에서 장을 볼 돈도 없는 처지에 밥도 해먹을 수 없는 반지와 목걸이가 무슨 소용이랴.  예물을 모두 꺼내 리넨으로 된 작은 파우치에 담고 집을 나섰다.     


밖은 이미 해가 지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중이었다. 걷지 못하는 둘째를 아기띠에 안고, 큰 아이의 손을 잡고 또 다른 손으론 우산을 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비오는 어두운 거리를 이십분간 걸어갔다.


귀금속 가게는 대형 마트 맞은편의 골목에 자리해 있었다. 가게 앞에 도착한 뒤 우산을 든 채 잠시 큰 아이의 손을 내려 놓았다.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둔 예물을 꺼내려고 손을 넣었는데 이상하게 잡히는 것이 없었다. 왼쪽 주머니에도 손을 넣어보았지만 주머니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주머니에 반지는 없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고. 난감했다. 가게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아이들과 함께 한참을 서 있었다. 


어디에 떨어뜨렸을까. 지나온 길을 가만히 되짚어보았다. 아까 마트 안에 있는 은행 ATM기에 들르느라 입구 계단에서 잠깐 예물 주머니를 꺼냈다 넣은 기억이 났다.


마트 쪽으로 걸어가 빗물에 젖은 계단 주위를 살펴보았다. 주위는 어두컴컴하고 예물 주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어딘가에 떨어졌을텐데. 빗소리와 자동차 소리 때문에 떨어지는 소리를 못 들은 모양이었다. 팔아도 아까웠을 예물인데, 팔아보지도 못하고 몽땅 잃어버리다니.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빗속을 걸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귓가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이고, 이 헛똑똑이야.”       


그러나 헛똑똑이의 만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설을 앞두고 은행에 간 날이었다. 뒤로 맨 가방에 사십만 원 정도가 든 돈봉투를 넣고선 깜빡하고 지퍼를 안 닫았다. 은행을 나와서 잠시 뒤에 봉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쉽게 봉투가 빠질 구조는 아니었는데 누군가 빼간 것이 분명했다. 게 중에 수표는 분실신고를 해서 수개월 후 돌려받았지만 현금은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몇년 전, 마을카페 후원 찻집을 열고 난 뒤였다. 이래저래 돈을 정산하고 나니 17만 원이 남았다. 찻집 당일 들어온 돈과 나간 돈을 깨알같이 적은 봉투에 그대로 넣어 매고다니던 가방 속에 두었다. 나중에 가방에 들어있던 온갖 종류의 오래된 서류들을 정리한답시고 버렸는데 그 안에 돈봉투가 끼어 있었다.(재활용 쓰레기로 버렸는데, 부디 박스를 수거해가시던 할머니가 챙겨가셨기를 빌고 또 빌었다ㅜㅜ)    



     

작년, 추석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엄마”

“왜?”

“나 오늘 지갑 잃어버렸어.”

“뭐?”

“수학공부방에 먹을 거 사 가지고 들어가면서 봉지 안에 지갑도 넣었는데, 그대로 두고 나온 것 같아. 근데 선생님이 공부방에 지갑이 없대.”

“지갑에 뭐 들어 있었는데?”

“청소년증이랑 교통카드, 체크카드. 어...그리고 현금”

“현금 얼마나?”

“좀 많아. 칠만 원 정도?”

“.....”

“추석 때 용돈 받은 거 계속 입금해야지 하면서 못 넣어가지고...”

“....”


아이는 아무 말이 없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한 마디 덧붙인다.


“아.. 피 같은 내 돈..”     


뭐라도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말이 안 나왔다. 기가 막혔다기보다는 원조 헛똑똑이로서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이 헛똑똑이야!!”라고 한 마디 할 뻔 하긴 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어릴 적, 헛똑똑이라는 말이 참 듣기 싫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후 실수를 저지르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이 헛똑똑이야’라고 말하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랐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안녕 씨는 잘할 거야”라고 말할 때도 “알고 보면 제가 헛똑똑이라..” 고 고백하면서 상대방의 응원과 기대감을 일찌감치 꺾어버리기도 했다.  딸아이에게 그런 걸 물려주고 싶진 않았다.     


아침마다 허겁지겁 학교로 나서고, 자주 지갑과 안경, 교통카드를 찾아헤매고, 이어폰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내걸 빌려가곤 하는 딸이지만 '헛똑똑이'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헛똑똑이야'를 입에 달고 살게 될 테니까. (딸아, 너는 제발 참똑똑이로 살거라)


나랑 다르게 자전거도 탈줄 알고, 머리도 자주 감고, 산수도 포기하지 않으며 진화한 큰 딸. 헌데 그런 건 뭣하러 물려받았을까?



그나저나 궁금하다. 이거 유전인 건가? 그럼 큰일인데. 왜 이렇게 쓸데없는 게 유전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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