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치기 해변에선 귤을 사드세요
광치기 해안을 갈 때마다 귤이나 한라봉을 파는 할머니들을 만난다. 같은 분들인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두 분이다. 귤을 한 봉지 사서 숙소에 두고 먹을 생각으로 좌판 가까이 다가가니 한 분이 큰 소리로 외친다.
“아가씨! 삼천 원어치도 팔아. 이천 원 어치도 팔고!”
혼자 오는 여자 여행객을 많이 상대해본 솜씨다. 40대를 향해 거침없이 아가씨라고 부르는 저 센스. 좌판에는 오천 원, 만 원짜리 바구니뿐이다. 삼천 원어치만 사도 되련만 그 ‘아가씨’라는 말의 효과 때문인지 오천 원어치 사고 말았다.
숙소로 돌아가는데 오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귤 봉지를 보더니 묻는다.
“그 귤 맛있어요?”
“글쎄요.. 저도 아직 맛보질 못해서.”
“귤 좀 맛볼 수 있어요?”
아니 그건 파는 할머니한테 가서 부탁해야지. 나도 아직 못 먹어봤는데. 얼굴 두꺼운 아저씨다.
옆에서 팔짱 끼고 함께 걸어오던 여자가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 남자를 바라본다. 하지만 내 봉지엔 귤 하나쯤 주어도 티 안 날 만큼 귤이 가득하다. 인심을 쓰자. 지난 지리산 둘레길에선 나도 공짜 커피를 얻어마시지 않았나.
자고로 여행은 낯선 이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것. 봉지에서 귤을 하나 건넸다. 하지만 내 안에 여행자의 풍요로움이 가득 넘쳐흐르지는 못했는지 한 마디를 덧붙이고야 말았다.
“저기 할머니한테 가면 맛보고 사실 수 있어요.”
굳이 나한테 달랄 필요는 없지 않았느냐는 말을 돌려서 한 셈이다. 그 아저씨가 할머니들한테 가서 정말 귤을 샀는지는 모르겠다.
올해 다시 같은 제주 숙소에 머무르게 되었다. 역시나 광치기 해변엔 할머니 두 분이 나와서 귤과 한라봉을 팔고 있다. 한 할머니가, 손으로 두 개의 바구니를 가리키며 “오천 원, 만원” 이라며 가격을 말한다. 이번에도 아가씨라고 불러주려나 내심 기대했건만.
“제가 혼자라 다 못 먹는데, 삼천 원어치만 주시면 안 돼요?”
“돼”
그리곤 오천 원짜리 바구니에 담긴 한라봉을 반으로 덜어 봉지를 건네주신다. 아마 작년처럼 ‘아가씨’라고 불러주었다면 그냥 한 바구니를 다 샀을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