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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23. 2020

우연히 마주한 70대 부부의 세계

서로가 서로 곁에 더 머물러주길 바라는 간절함

손발 시림 증상으로 고생하던 차에 배탈까지 심하게 나는 바람에 며칠째 한의원을 다니고 있다. 접수하고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담당 직원이 건너편에 앉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님, 오늘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허리”     


그리고 내 옆에 앉은 할머니께도 직원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머님은 어디가 불편하세요?”

“나도 허리”     


나보다 앞서 접수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먼저 치료실로 들어가고 나는 나중에 들어갔는데 침대가 줄줄이 붙어 있어서 할머니 옆에 눕게 되었다.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어서 남남인 줄 알았던 두 분은 알고 보니 부부였고, 커튼 너머로 한의사와 두 분이 나누는 대화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할아버지 : (엄살 섞인 목소리로) 오십견이라 그런가 어깨도 아파요.

한의사 : 아버님, 오십견은 팔이 반도 안 올라가요. 아버님은 오십견 아니에요.

할아버지 : 아, 근데 팔이 이렇게...(계속 오십견이라며 우기심)

한의사 : (한의사 선생님의 화제 전환) 아버님은 뱃살을 좀 빼셔야 돼요. 살 빼시면 허리가 덜 불편해지실 거예요.

할머니 : 흐흐..(의사 선생님께 한소리 듣는 할아버지가 고소한 듯 단전에서 우러나오는 할머니의 웃음소리)

한의사 : 술은 절대로 드시면 안 돼요.

할머니 : 그거 술배예요!(큰 목소리로 바로 고자질)

할아버지 : (건강식 한다며 변명 시작하심) 땅콩, 바나나.. 그 뭐냐..

할머니 : (그것도 기억 못 하는 게 답답하다는 듯한 말투로)아, 단호박!

할아버지 : 그래.. 어제부터 단호박이랑 해서 아침 대신 갈아먹어요.(나름 살 빼려고 노력 중이라고 어필하심. 그런데 이제 겨우 이틀째)

한의사 : (단칼에)  그렇게까진 안 드셔도 되고요.

할아버지 : (당황하며 목소리 작아지심) 아니, 친구 놈이 살 빼는데 좋다고 해서.. 오늘 아침부터 먹기 시작했어요.

할머니 : 에잇, 귀찮아.(분명 단호박 찌고 재료 섞어서 갈아주는 게 할머니 신듯)

한의사 : (한의사 선생님의 연타) 아버님, 남이 좋다고 꼭 다 따라서 드실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속이 더부룩할 수도 있어요. 그냥 밥이랑 반찬 골고루 드시는 게 제일 좋아요.

할머니 : (옳다구나, 이때다 싶으셨는지 대놓고  고자질 시작하심)아, 나는 밥도 5분이면 먹는데, 저이는 1시간을 붙잡고 먹어요.      


계속 들어보니 할아버지는 자전거 탈 정도로 건강한 편인데 허리 치료받으러 오신 거고, 할머니는 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상태가 안 좋은데 연세도 있고 체력 문제로 수술 대신 치료를 받으러 오신 거였다. 그걸 아는 한의사 선생님이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 편을 들었던 모양이다.       


의사 선생님 가고 나신 후부턴 두 분이서 계속 “그 사람 암 이래”, “암 아니래” 라며 티키타카를 이어가셨다.   

   

치료받는 동안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큭큭 거리다가 문득 우리 부부의 70대를 떠올려보았다.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일단 70대가 되려면 대략 25년을 더 같이 살아야 하고, 지금도 이렇게 아파서 골골하는데 그때라고 같이 병원 다닐 일이 없겠냐 싶어 남일 같지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두 분의 대화를 다시 곱씹어보는데 한 편의 영화가 생각났다.



76년간 연인으로 산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고, 여름엔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가을엔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는 매일이 신혼 같은 백발의 노부부를 보노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기력이 약해지고 기침을 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석 달만 더 살아요. 이렇게 석 달만 더 살면 내가 얼마나 반갑겠소.” 하던 할머니의 말이 얼마나 저리던지.


우리 부부 역시 언젠가 헤어질 날이 올 텐데. 함께 한의원에 침 맞으러 다니며 투닥거리는 사이가 되더라도, 서로가 서로 곁에 더 머물러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우리 부부의 세계 한편에도 자리 잡고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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