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에 들어가면 사고 싶은 건 아닌데 눈길을 사로잡는 물건들을 종종 만난다. 매우 독특하거나 비싼 물건들도 그렇지만, 물건 이름에 오타가 있는 경우도 그렇다.
본문에 어쩌다 오타가 등장하는 건 그렇다 치자. 겨우 몇 줄짜리 물건을 소개하는 글인 데다 핸드폰 앱으로 쓰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실수니까. 하지만 제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제품을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제목에 오타가 있다는 건 최소한 자기가 쓴 게시글을 쓰고 나서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아니면 알고 나서도 수정하지 않았거나(자기가 맞게 썼다고 착각하는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
그간 물품들을 구경하며 찾아낸 오타와 그에 대한 단상들.
여성 소가족 핸드백 _ 이 핸드백을 위해 소가족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다.
워커와 겨울부추 - 신발과 부추는 참 어울리지 않지만, 겨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부추를 판매하는 분들이 꽤나 많다.
검정 무수탕 - 목욕탕 이름 같기도 하고, 무와 수제비가 들어간 탕 같기도 한 무수탕
닥* 양알 3개 드려요 - '양알'이란 말은 어감이 귀엽기라도 하지.
수면 조까 - 왠지 기분 나빠서 사고 싶지 않다.
목돌이 - 목에 돌돌 말아 감는 목돌이는 얼핏 보면 자연스러워서 오타임을 눈치채기 쉽지 않다.
스와로브스키 목걸리 팝니다 - 이건 마치 고급스러운 러시아산 막걸리 이름 같지 않은가.
스와로브스키 팔짜 - 이거 차면 왠지 팔자가 드세질 것 같은 이상한 기분
바람마기 잠바 - 아마도 바람막이 + 두루마기의 합성어인 듯.
오리톨 점퍼, 오리털 롱점포 - 오리톨vs오리털/ 점퍼vs점포. 오리털 점퍼라고 쓰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노**** 여성 85 사이즈 거의 털 - 물론 충전재가 거의 털로 이루어진 제품인 건 알겠다.
그 외 얼마나 많은 오타가 있는지 볼 때마다 놀랍다.
'기죽 가방, 지잡, 장디갑, 반지겁, 여상장갑...'
이런 제품명을 볼 때마다 채팅을 보내고 싶었다.
"판매글의 제목에 오타가 있어요. 수정하신다면 좀 더 판매가 잘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일일이 채팅을 보냈다간 오매불망 구매 채팅을 기다리는 판매자들에게 살 마음도 없으면서 훈수만 둔다고 차단당하거나 매너 온도가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이 정도 비문이면 새로운 창작 기법이 아닌가 싶은 판매자의 글을 발견한 적도 있다.
원단은 오리털 원단이며 바처입기좋습니다. 깨끈하고 튼튼 합니다. 그의 새것 같은제품 임니다.
프** 후두 자켓 싸이즈 남녀공영 후리 입니다. 속지는구스털임니다 목에는폭스 털이 구요 갑짝이살이쩌서내놈니다.
색상은연한핑크색이고요. 필요하신분 가저가셔요. 살대는빚사게백화점에서산거에요. 예뿐토끼모피예요제가갑작이살이쩌서내놈니다. (띄어쓰기 및 오타 원문 그대로이나 가독성을 위해 마침표는 임의로 찍음)
이 것은 거의 해학의 경지가 아닌가 싶다. 뭐랄까. 마치 옛날 수궁가나 현대의 랩을 섞어놓은 듯한 묘한 매력마저 감도는 문장들인데. 언어유희로서는 어떤지 몰라도 물건에 대한 신뢰감은 떨어뜨린다고 보인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물건을 판매하는 이에 대한 신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물건 사진이 정성스럽게 찍혀 있고, 물건 상태도 좋아 보이며 판매자의 매너 온도가 높다면 상쇄되겠지만. 어쩐지 판매글을 올리는데 성의가 없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당근마켓에 물건을 팔아본 이라면 알 것이다. 제품을 등록하자마자 곧바로 팔리는 일은 드물다. 팔리지 않는 물건을 끊임없이 끌어올리기 하는 이유다. 그냥 끌어올리기 버튼을 톡 누르기만 하면 되지만, 여러 번 끌어올리다 보면 자신이 쓴 게시글의 제목을 최소한 몇 번은 보게 된다.(물론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보는 건 원래 힘든 법. 전문 교정교열을 거쳐 출판된 책에서도 오타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몇 번은 보았을 오타를 계속 그대로 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가 쓴 글을 더이상 살펴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글이든, 말이든 모두 언어를 통해 소통한다. 물론 대화 시에는 표정이나 제스처가 전하는 분위기가 소통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문자로 소통할 수밖에 없다. 카톡 한 줄을 보낼 때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상님들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란, '아' 다르고 '어'다른 법이니까.
한 번 보낸 카톡은 수정이 안 된다. 책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작가 외에 편집자가 있고, 윤문과 교정을 보는 이들이 있으며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수십 번의 교정도 보는 게 아니겠는가. 나 역시 브런치에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여러 번 고치고 고치면서(너덜거릴 때까지) 퇴고를 거듭하지만, 발행하고 나서 나중에 읽어보면 또 고칠 게 눈에 보인다(그래서 요즘은 잘 안 읽는다).
한 번 인쇄되면 어찌할 수 없는 책이나 상대방이 읽기 전 삭제 외에 답이 없는 카톡과 달리 당근마켓은 수정이 가능하다. 자신의 실수를 발견했을 때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게시글을 올린 후에라도 한 번쯤은 제목이라도 쭉 훑어보길 권한다.
당근마켓 이용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공감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판매자가 올린 글이나 거래를 위한 짧은 채팅에서도 상대방의 인격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품을 거래하는 앱에서 인격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결국 거래할만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가늠할 수 있는 신뢰라고 생각한다.
나는 장사와는 거리가 멀고, 주민들과 운영해온 마을카페의 재정을 8년간 담당해왔지만 이윤을 남기는 일에는 영 재주가 없다. 그렇지만 소통을 통한 신뢰가 어떻게 쌓이는가에 대해서는 나름 경험이 있다. 결국 신뢰를 판단할 기준과 근거는 말이다. 게다가 얼굴을 대면할 수 없는 온라인 거래라면 더욱 그렇다. 얼마 전 배달앱의 사장이 남긴 대댓글을 두고 많은 공분이 일어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어느 판매자는 자신의 물건을 판매하면서 이런 표현을 썼다.
바지핏이 완전 쓰레기입니다. 아는 동생 옷 가게 차려서 팔아줬는데, 잘 못 샀어요 돈 날렸네요. 다시는 안가려구요. 수선해서 입으셔야 합니다.
3천 원에 파는 빈티지 청바지였다. 이렇게 물건을 소개하면 누가 사고 싶을까. 쓰레기를 사가란 건지, 너도 한번 돈을 날려보란 심산인 건지. 물론 본인은 판매가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고 샀겠지만.
한 번은 공짜나 다름없으니 와서 가져가라는 식으로 쓴 다른 판매자의 게시글을 보았다. 아무리 가성비 좋고 효율적인 중고거래라지만 구매자를 마치 거지근성에 찌든 것처럼 표현하는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졌다.
누구나 물건을 살 때 기분 좋은 거래를 하고 싶지, 불쾌한 거래를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기왕이면 구매자가 기분 좋게 물건을 살 수 있게끔 글을 다듬어 준다면 좋지 않을까.
<브런치 작가가 생각하는 당근마켓 판매의 기본>
1. 판매할 때 웬만하면 (제목)오타는 고치자.
2. 물건 소개할 때 부정적 표현보다는 긍정적 표현을 쓰자.
(판매 제품에 대한 솔직한 정보와 안내는 당연한 기본이겠죠!)
총 3편의 당근마켓(중독) 체험보고서 3편 중 마지막 3편입니다. 드디어 끝났네요ㅠㅠ 체험보고서가 연구보고서만큼이나 힘들다는 걸 느낀 3개월이었습니다. 덕분에 중독 증세는 많이 좋아졌어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당근마켓과 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당근마켓을 홍보할 마음도 없고요. 그저 저의 당근마켓 중독 증세를 완화시키고, 그간의 이용후기를 공유하고자 쓴 글입니다. 이제 다른 글로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