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이상한 꿈을 꾸었다. 빗으로 머리를 빗는데 솜사탕만 한 털 뭉치가 끊임없이 묻어 나오는 꿈이었다.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고양이 털이었다.
삼 일 전에는 꿈에서 청소기를 돌리다가 까만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아니? 우리 집에 고양이가 또 왔어?(세상에, 그럼 털이 더 많아지는 거잖아...)'
어젯밤 꿈에도 고양이가 나타났다. 유튜브에서 보던 애교 많은 커다란 갈색 고양이었다. 고양이가 품에 다가와 안기길래 몇 번 쓰다듬었는데, 갈색 털에서 윤이 좌르르 흘렀다. 고양이를 만지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나, 이 고양이는 털이 짧네. 잘 빠지지도 않겠어!"
꿈에 이토록 고양이가 자주 등장하는 건 3개월 전 딸아이가 집으로 입양한 두 마리의 고양이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고양이들의 몸에서 무한대로 떨어져 나오는 털 때문이었다.
예견 못한 일은 아니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으로부터 하루에 두 번씩 청소기를 돌려도 고양이 털 박멸은 불가능하다고 들었으니까. 딸아이가 구석구석 물청소를 하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거실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는 솜털 뭉치를 볼 때마다 '이건 아니야'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고양이가 잠시 머물거나 낮잠을 자고 난 소파는 말할 것도 없고, 빨래를 돌린 양말이나 수건에도, 잠깐 벗어둔 마스크에도 고양이 털이 묻어났다. 아무리 돌돌이와 테이프로 떼어내도 그때뿐이었다. 다음 날이면 새로운 털들이 집안 곳곳에 날렸다. 점점 고양이 털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지더니 급기야는 밤마다 고양이 꿈을 꾸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어느 카페에서 이런 인테리어를 보고 흠칫 놀랐다. 건물 위에 고양이 털이 잔뜩 쌓인 줄 알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이유
지난겨울, 자주 가던 산행로에서 고양이를 발견했다. 이 산에 오른 지 10년이 넘었는데 고양이를 발견한 건 처음이었다. 샛노란 눈동자에 까만 털로 뒤덮인 고양이 두 마리가 좁은 등산로 오른쪽 편에 앉아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후 산에서 처음 눈에 띈 검은 고양이들/그후 매번 챙겨가기 시작한 고양이 사료
고양이들의 시선을 따라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비슷한 덩치의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너른 바위 위에서 뭔가를 먹더니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건너편으로 뛰어갔다. 산속에 사는 고양이가 바위 위에서 먹을 만한 게 뭘까.가까이 다가가 보니 고양이 사료였다. 캣맘은 골목길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갑자기 집에 있는 사료 샘플들이 떠올랐다. 아이가 여기저기서 얻었는데 새끼용 사료라 정작 집에 있는 고양이는 먹지 못한다고 했다. 그 후로 나는 조금씩 포장된 고양이 사료를 한 두 개씩 들고 산에 올랐다.
신기했다. 아이가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기 시작하자 자꾸만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우리가 사는 집 근처에서도 보이고, 산책 나간 옆 동네에서도 띄었다. 산에는 갈 때마다 한 두 마리씩 꼭 마주쳤다. 지난주에는 고양이가 안보이길래 그냥 사료만 부어놓았는데, 어느새 냄새를 맡았는지 슬그머니 다가와 먹이를 먹었다.
산에 갈 때마다 마주치는 고양이들. 눈치를 보며 경계하다가도 사료를 부어주면 조심스럽게 다가와 먹는다. 아파트 입구 편의점 구역에서 자주 발견되는 고양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이유는 이제 집고양이가 된 두 마리의 길고양이 때문일 것이다. 녀석들과의 동거를 시작하면서 고양이라는 낯선 존재가 조금 익숙해진 덕분일 테지.
우리 집 시선강탈, 너야 너
딸아이가 입양한 두 마리의 길고양이는 아이가 졸업한 초등학교 앞 골목에 살던 녀석들이다. 내가 주민들과 함께 운영하는 마을카페 기준으로는 뒷골목에 속한다. 처음 이 고양이들을 발견한 건 딸아이의 가까운 친구였고, 아이는 친구를 따라 고양이랑 놀아주다가 정이 들었다. 매일같이 먹거리를 챙겨주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더니 한 달만에 임보(임시보호)를 거쳐 결국 집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아이가 붙여준 이름은 징징이와 모루. 징징이는 조금 더 어린 녀석이고 모루는 골목에서 산지 3~4년은 족히 넘은 베테랑 노숙묘다. 이 골목에서 사료를 챙겨주던 캣맘의 증언에 의하면 이 구역 길고양이들의 짱이었다고 했다. 아이에게 들었는데, 얼굴 큰 고양이가 원래 서열이 높단다.
식탁에 앉아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뭐 먹을 거 없나 하고 식탁 위로 고개를 빠꼼이 내미는 녀석과 눈을 마주칠 때가 종종 있다. 녀석, 진짜 머리가 크다.
녀석은 노숙 생활이 길어서인지, 음식 냄새에 민감하다. 어쩌다 음식물이 묻어있거나 냄새나는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면 귀신같이 알고 다가온다. 어제는 소고기를 구워 먹고 난 석쇠 프라이팬을 바로 닦지 못하고 싱크대 위에 올려두었는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 프라이팬을 열심히 핥다가 들켰다. 어쩌면 사람보다 후각이 예민한 고양이들에겐 당연한 습성일지도 모르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역시 태생이 길거리라 그런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감자튀김 먹고 난 봉지를 버린 날이었는데 냄새 때문인지 쓰레기통 곁을 떠나질 못한다.
둘이서 쑥떡 거리는 듯한 모양새가 심상찮다. 야.. 우리 이거 엎어버릴꺄옹?
결국 엎지는 못하고 그 위에 올라가 한참을 머물다 내려온다. 짠하다, 짠해...
가끔은 어린 녀석도 저렇게 식탁을 기웃거린다. 거기 먹을 거 없다고 소리쳐도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원.
나이 많고 기력 없는 모루에 비해 좀 더 어린 징징이는 사냥 놀이에도 관심이 많고, 새가 나오는 티브이를 틀어주면 집중해서 보는 편이다. 좀 뒤로 가서 보면 좋을 텐데 꼭 티브이 앞에 바짝 붙어서 쳐다본다. 눈 나빠질까 봐 걱정된다.
눈 나빠진다. 뒤로 가서 봐라.
집에 침대가 없어서 이불 생활을 하는데, 자려고 거실에 이불을 꺼내놓으면 어느새 고양이가 올라 가 잠을 잔다. 낮이고 밤이고 수시로 잠을 자는 고양이들이라 뭐든 바닥에 푹신한 게 깔려 있으면 곧 녀석들 차지가 된다. 이불 위에 곤히 잠든 고양이를 보면 털이 묻어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동시에 참 평화롭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어릴 때도 잘 때가 참 예쁘더니 고양이들도 그렇다.
내가 자려고 꺼내놓은 이불 위에서 이러고 자면 차마 깨우지는 못하고 툴툴거린다. 아, 또 털 잔뜩 묻겠네.
녀석들이 우리 집에 온 지 나흘 후면 꼭 100일이 된다. 3개월간의 동거에서 일어난 몇 가지 변화 중 하나는 자꾸만 관찰하게 된다는 것. 녀석들이 바라보는 곳으로 나도 눈길이 가고,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녀석들 잘 자네. 마음이 편안한가 보다, 다행이야. 이런 마음으로.
가끔 어린 녀석이 나이 많은 고양이 등에 올라타 못살게 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형뻘인 모루가 하악 소리를 내며 싫어하는 티를 낸다. 놀이보다는 서열 싸움에 가까워 보일 때가 많은데 계속 투닥거리는 소리가 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현장으로 가본다. 일단 가까이 다가가면 눈치를 보고 싸움이 멈추니까.
"왜 그래? 심심해서 그래?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
알아듣지 못할 쓸데없는 잔소리인 줄 알면서도 어릴 적 다투던 아이들을 생각하며 말려보기도 한다. 야생의 습성이 남아 있는 녀석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비슷한 잔소리를 몇 번쯤 했을 때 깨달았다. 아, 이래서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하는구나. 어느새 녀석들은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한 우리 집의 사고(털)뭉치 막내들이 된 거다.
여전히 털과 녀석들의 사료와 분변에서 나는 냄새는 불편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두 마리의 생김새와 이름조차 헷갈리던 것에 비하면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름 고양이 집사 엄마다운 면모를 갖추었달까. 녀석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 사진을 찍고, 작은 움직임이나 소리에도 예민한 녀석들이 놀랄까 싶어 조용히 돌아서 걸어가고, 입양 100일 맞이 브런치 글까지 쓰게 된 걸 보면. 심리적 거리감이 꽤나 좁혀진 모양이다. 들에 핀 풀꽃도 오래 보면 사랑스럽다는데 하물며 집에서 석 달이나 함께 산 고양이 아닌가.
인사를 하자고 손가락을 내밀면 여전히 잔뜩 경계하는 눈빛을 하고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는 모루와 인사도 잘하고 목을 긁어주면 '어우,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지그시 감는 징징이. 부디 아프지 말고, 집사님 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