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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Sep 15. 2021

삼재 때문인가?그런 것인가?

"너네 삼재야."


시어머님이 건넨  봉투 안에는 노란 종이에 붉은색 잉크로 그려진 부적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시어머님은 걱정 반, 경고 반의 목소리로 우리 가족이 '삼재'라고 알려 주셨다. 소띠인 남편과 뱀띠인 나, 그리고 닭띠인 둘째까지.


응, 너네 삼재 당첨이야. ⓒEBS


삼재가 시작되던 2년 전.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자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하느라 바쁘게 오가면서 삼재를 나려나보다."


입학한 첫 해,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 남서쪽 끄트머리까지 대중교통으로 7,000km를 오갔다. 길에서 오가며 보낸 시간만도 300시간.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긴 시간 오가며 공부하느라 몸은 고됐지만, 원해서 시작한 일이니 재난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만 한 해가 끝나갈 무렵 체력이 바닥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겨울방학의 끝 무렵에 코로나가 덮쳤고, 손목과 발목 통증으로 일상생활이 힘들어졌다. 치료를 받느라 디자인 일을 손에서 놓아야 했고, 수입도 끊어졌다. 어머님은 "삼재라 그렇다."고 하셨다.


작년 가을에 오른팔 골절상을 입었을 때도 어머님은 '삼재'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고, 오른쪽 팔꿈치가 부러진 건 밤에 급하게 택시 타려고 뛰어가다가 주차방지 블록에 걸려 넘어져서 그런 거였는데. 어머님은 기-승-전-삼재였다.




어머님이 자꾸 '삼재'라고 말씀하시니, 무슨 일이 생기면 '삼재라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둘째가 학교를 다닌 지 2주도 안 되어 자퇴서를 쓰고, 남편이 디스크 수술로 병원에 입원하고, 마을카페는 재개발로 문을 닫고, 갑자기 집값이 1억 도 넘게 올라 이사 갈 일이 막막해지고, 고3인 큰 아이 뒷바라지에 통장은 바닥나고. 진짜 삼재인가?


이 모든 불운이..... 정말 삼재 때문인가? 그런 것인가? ⓒEBS


궁금해졌다. 대체 삼재가 뭐길래? 근거 없는 불안에 시달리기보다 명확히 알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겠지 싶어 인터넷으로 '삼재'를 검색해보았다.


삼재(三災) : 민간에서 신앙되는 사람에게 닥치는 세 가지 재해(災害). 9년을 주기로 돌아오며 3년간 지속된다.  

① 도병재(刀兵災): 연장이나 무기로 입는 재난
② 역려재(疫癘災): 전염병에 걸리는 재난
③ 기근재(飢饉災): 굶주리는 재난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 마디로 9년마다 세 가지 재난이 다가온다는 건데. 나는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삼재 대신 과거에 내가 때마다 겪었을 삼재를 유추해보았다. 9년을 주기로 3년간 지속된다면 12년마다 삼재를 거쳐왔을 테니까.


연도와 나이를 거꾸로 써 내려가며 기억에 남는 특별한 사건들을 떠올려보았다. 30대 초반에 겪었던 삼재 기간 동안 겪은 일들이 의외로 많았다. 혼자 글을 쓰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삼청동에 있는 예술대학 교수님 자택으로 6개월간 오가며 북아티스트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고, 디자이너로 처음 일을 시작했으며 석관동에 있는 입시미술학원을 4달간 다니고, 미대 입시를 치렀다. 1차에 바로 광탈이었지만(ㅜㅜ). 그러고도 삼재 기간 동안 홍대에 있는 입시미술학원을 두 달간 다니며 입시에 또 도전했고 2차에 결국 떨어졌다. 결혼 후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던 시기 동경했던 미대 입학을 세 번의 시도 끝에 홀가분하게 털어내고 개인사업자로 디자인 프리랜서 일을 시작하고, 결혼 후부터 살던 동네를 떠나 아이 학교 입학 때문에 이사를 했다. 돌이켜보니 많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배웠고, 움직였던 시기였다.


고3부터 대학 2년까지 겪었던 삼재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고3 때 처음으로 연애를 해봤고, 대학에 입학하며 고향을 완전히 떠났고, 새로운 대학생활의 재미에 빠져 실컷 놀았으며 2학년 때 동아리 회장을 하다가 학생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7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8살 때 엄마의 학구열로 시골 깡촌에서 오빠들이 지내던 서울 단칸방으로 올라와 용두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시골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나는 방학 때마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과 서울을 오갔다.


태어나서 겪은 3번의 삼재를 쭉 정리해보니 이런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동(물리적)

변화(새로운 환경, 새로운 일, 새로운 관계망)

배움(입학, 시험, 초등, 대학, 대학원)


이 경험 속에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변화들도 있고, 나의 욕구와 의지로 시작된 변화들도 있다. 어쨌든 정리하고 보니 재난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동과 변화, 새로운 배움으로 바뀐 환경과 관계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 생긴 어려움에 가까웠다. 어쩌면 9년 뒤에 다가올 삼재 기간에도 어디론가 멀리 떠나거나, 지금과 다른 환경과 관계망 속에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시도와 변화에는 당연히 실패와 좌절도 따를 테니 꽃길과는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삼재를 변화와 관련지어 생각하게 된 것은, '삼재가 최근 7~8년간 해왔던 일들이 더 이상 힘이 되지 못하기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환경을 바꾸라는 의미'라고 해석한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혼자 독학하며 어렴풋이 깨우친 사주명리의 '대운' 개념과도 비슷하다. '대운'은 커다란 운이 아니고, 커다란 변화의 기운을 뜻한다. 대운은 모든 사람이 10년마다 겪는 변화의 기운이니 삼재와도 일맥상통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현대 사회는 과거에 생각하던 10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이런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변화의 흐름에서 빗겨 난 개인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대한 세계의 격차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옛날처럼 한 마을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살고, 평생 한 가지 직업만 갖고 살았던 조상님들도 10년마다 세상의 변화를 느꼈는데 요즘이야 오죽할까.


과거에는 살 곳을 옮기거나, 직업을 바꾸는 일이 자유롭지 않았다. 양반이나 귀족이 아니라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여행도 쉽지 않았다. 지금처럼 기술이 빠르게 변하고, 전 세계가 정보를 공유하지도 못하던 시절. 분명 강산이 변하는 만큼 과거의 세상도 나름의 변화를 겪었을 텐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개인은 많지 않았던 셈이다.


어차피 미래를 알 수 없고 자연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에게 재난이란 언제나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운명과도 같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이러한 삶에 대한 불안정성과 두려움이 더욱 강했을 것이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부상이나 전염병, 기근으로 인한 굶주림도 자연의 재난만큼이나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재난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무속의 힘을 빌리고 부적을 찾지 않았을까.




삼재는 '역마살'과 관련이 있다.


‘역(驛)’은 예전에,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관아에 전달하고, 벼슬아치가 여행하거나 부임할 때 마필(馬匹)을 공급하던 곳이다. ‘역’은 주요 도로에 대체로 30리마다 두었다. 이 ‘역’에 갖추어진 말이 바로 ‘역마(驛馬)’다. 예전에는 이 ‘역마’를 이용하여 중요 정보를 전달하고 또 거리를 이동하였다.

조항범 [그런, 우리말은 없다], 태학사(2005)


정보의 전달과 거리의 이동. 익숙해진 삶의 방식과 환경에 머무르려고 하지 말고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 적응해보라는 신호인 것이다. 삼재가 능동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기라고 이해한다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일 필요는 없다. 욕구와 필요에 따라 직장을 바꾸고, 새로운 배움을 시도하고, 낯선 관계를 받아들이고, 가보지 않았던 곳을 가볼 수도 있다.


싹 다 바꾸라는 의미는 아니다.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잡기 위해 무조건 헉헉대라는 것도 아니다. 평생을 변화에 쫓기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 수는 없다. 개인적 경험으론 새로운 곳에 가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세계와 타자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고 사고가 유연 해지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정보의 습득과 일의 연결로 수입이 늘어나기도 했다.


변하지 않는 나만의 고유성이 더욱 또렷해지고, 창조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는 다른 사람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좀 더 성숙하고 유연하게 관계를 맺을 줄 아는 나로 이어졌다. 다 안다고 믿었던 편견이 깨어지기도 하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열정과 노력의 에너지를 얻을 때도 많았다. 물리적 환경(장소, 조직, 관계, 일, 배움)이 변하면서 내면적 변화가 함께 일어난 것이다.  


낯설고 새로운 변화는 낡은 편견과 인식을 깨 주기도 한다. ⓒEBS




아무리 우연적 요소가 개입하더라도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퇴한 건 본인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다. 물론 이로 인해 학교를 다니는 또래들과는 좀 다른 일상을 보낸다. 길고양이 2마리의 집사가 되었고,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바리스타 자격증 과정과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 밖 지원센터에서 새로운 선생님들과 관계를 맺고, 지역 잡지의 청소년 에디터로 참여하면서 또래보다 나이 많은 청년들을 자주 만난다.


남편의 디스크 증상도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참고, 미루어왔던 수술을 드디어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것뿐이다. 올 해까지 6년간 다니던 근무지를 내년부터 옮길 예정인데 실제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 결정한 일이다.


재개발로 인해 마을카페가 닫는 것 역시 수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언젠가는 닫을 수밖에 없던 공간이었지만, 올해에 와서야 비로소 이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집값은 떨어지는 일보다 오르는 일이 늘 잦았고, 고3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경제적으로 힘에 부치기 마련일 터. 삼재 중 하나인 전염병 또한 인간의 역사에서 늘 있어왔던 사건이므로 코로나가 나만 겪는 재난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재개발로 동네가 사라지고 새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도 변화고, 아이가 자라는 것도 변화고, 나이를 먹는 것도, 건강상태가 달라지는 것도 변화다. 하루하루 비슷한 것 같아도 똑같은 날이란 없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큰 힘으로 변화를 요구하면 준비되지 않은 개인은 버틸 재간이 없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겪는 변화들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AI가 점차 인간의 일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우리의 일상은 코로나로 급격히 달라졌다. 기후위기로 전 지구적인 실천과 노력이 필요한 영역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나이와 성별, 국적을 떠나 인류 전체를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다.


그러니 변화를 읽어야 하고, 힘을 쌓아야 한다. 변화에 올라타는 힘이든,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힘이든. 변화를 따를지 안 따를지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변화 속에서도 흐름을 알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과 모르는 채 휩쓸리는 것은 다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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