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다. 손과 팔만 정상으로 돌아오면 글을 쓸 것이라고. 그런데 며칠 전 알았다. 내가 손목과 팔을 핑계로 글쓰기를 피해왔다는 걸.
당근 마켓을 하루 세끼 밥 먹듯 드나든 건 시작이었다. 가족과 주변 지인들뿐 아니라 브런치에서 당근 중독을 고백한 후 차마 당근에서 전처럼 마음껏 물건을 사지 못한 나는 다른 중고거래 마켓인 번개장터로 손길을 뻗쳤다. 전국구 앱이어서 볼 물건이 당근보다 훨씬 많았다. 불안과 결핍, 보상심리를 달래기 위해 쇼핑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했고, 그걸 치료할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라는 얼마 전의 깨달음이 무색하리만큼 쇼핑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쇼핑이 다가 아니었다. 큰 관심 없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들을 챙겨보고, 수년 전 끝난 드라마를 정주행 하느라 몇 시간을 꼼짝 앉고 티브이 앞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러고선 역시 건강이 최고라며 한동안 뒷산을 오르는데 열을 냈다. 코로나로 집에서 두문불출하던 그 긴 시간 동안 책 읽고 글 쓸 시간이 충분했는데 유독 글쓰기만 멀리했다.
그저께는 딸아이에게 부탁해 거실에 있는 책장을 베란다로 옮기고 책을 날랐다. 책상 위에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웬갖 자료들도 모두 꺼내 상자에 담아 버렸다. 책과 자료 더미를 옮기며 분류하느라 과도하게 손을 썼더니 손가락과 팔꿈치가 아프고 찌릿찌릿했다.
살림이 어려울 때마다 책을 계속 팔았더니 책이 많지는 않다. 잘 보지 않는 책과 자료들은 유리문이 달린 수납장안에, 논문 작성을 위해 봐야할 전공책은 책상위로.
식탁에서 대학원 수업과 온라인 회의를 했는데, 아무래도 안정적인 공간이 필요할 것 같아 부엌 수납장 하나를 더 베란다로 빼고 기존 책장을 가로로 막아 막힌 공간으로 만들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통증을 참아가며 책장도 정리하는데 손이 아파서 글을 못 쓴다니! 이건 말이 안 된다. 분명했다. 글을 쓰지 않은 건 아픈 손 때문이 아니었다.
예전에도 글을 쓰기 힘들었던 적은 많았다. 글을 쓰는 날보다 쓰지 않은 날이, 글이 잘 써지는 날보다 안 써지는 날이 훨씬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이유를 생각해보곤 했다. 마음속으로는 "글을 쓸 거야, 글을 쓰고 싶어!"라고 외치면서 정작 글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당시 나는 그 이유를 두려움에서 찾았었다. 글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누군가 읽은 후 내릴 평가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거였다.
이런 말을 들을까 봐(물론 내 귀에 직접적으로 들리지는 않겠지만. 마치 환청처럼 들리는 듯한 불안하고도 불쾌한 기분).
시험을 앞두고 일부러 공부를 안 하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랄까. 아예 공부를 안 하면, 공부를 안 해놓고 망치느니 '공부를 안 해서 그래'라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글을 아예 쓰지 않는다면 제대로 완성하지 못해서 괴로울 일(역시 난 글쓰기에 재능이 없어. 오랫동안 붙들고 쓸 성실함도 부족하고. 쓰고는 싶은데 쓸 수 없는 이 괴로움!)도 없을 테니까.
머릿속에 문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난감함을 넘어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치미기도 한다. 써놓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비문이 난무하고 맥락에서 벗어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참신한 표현과 사유는 없고, 이미 어디에선가 읽은 법한 상투적인 문장만 나열하거나 자신이 예전에 쓴 문장을 스스로 복제하는 경우도 있다.
그저 쓰는 일이 귀찮고 힘들어서 피한 적도 많다. 글을 쓴다는 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지루한 작업이다.
글쓰기가 게임이나 유튜브만큼 재밌다면 아이들의 꿈의 프로게이머나 유튜버가 아니라 작가가 되어있겠지. 물론 수입도 관련이 있겠지만. @EBS
하루에 반드시 원고지 5매를 쓴다는 김훈 작가나 직장 생활할 때처럼 하루 8시간은 쓴다는 박민규 작가의 이야기는 글쓰기가 단순히 영감과 재능으로 완성되는 게 아님을 알려준다. '소설가의 일'을 쓴 김연수 작가 역시 말했다. 제일 처음 쓴 문장이 제일 안 좋은 문장이라고. 엉망인 문장으로 가득해서 토할 것 같은 토고(초고)를 쓴 다음에야 그다음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다고. 그 고통의 과정을 매일매일 거쳐야 최종적으로 좋은 문장을 만난다고 말이다.
재능으로 똘똘 뭉친 것 같은 대단한 작가들도 말하지 않는가. 글은 손이나 뇌가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가 쓰는 거라고. 물론 내가 전업 작가들처럼 매일 오랜 시간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기는 어렵고, 써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브런치에 실을 한 편의 글을 쓰는 데만도 몇 날 며칠을 붙잡고 끙끙대는 건 사실이니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브런치와 노트북에는 쓰다 만 글 뭉치가 한가득이다. 체력이 약해서, 피곤하고 졸려서, 쓰다가 스스로 실망해서, 도저히 매듭을 짓지 못해서, 감정만 가득한 글이라 남에게 보여주기 민망해서, 바빠서, 돈이 안 되니까. 쓰지 못하는 이유는 늘 차고 넘쳤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도 그렇다. 구독하는 작가분들의 글은 피드에 계속 올라오는데 내 브런치에는 한 달이 가도록 어쩌다 한 편이 고작 발행될 뿐이다. 차곡차곡 글을 쌓아가는 작가님들을 보면 괜히 부럽고 배가 아프고, 완성하지 못한 작가의 서랍을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난다. 당근 마켓 후속 편을 쓰겠노라 호언장담을 한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쓰기는 커녕 브런치에 접속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으로 외치곤 했다.
'괜히 쓰겠다고 말해가지고! 결국 그 글을 완성하기 전까지 다른 글도 쓸 수 없게 되어버렸잖아!(그러니까 당근 마켓 2편을 쓰기 전까지 다른 글은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상한 논리)
함부로 입(손)을 놀린 대가랄까.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글을 쓴 지 딱 한 달이 되어가는 사이. 내가 뱉은 말 때문에 스스로를 책망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책장 정리를 하는 동안 내 마음은 갈팡질팡이었다. '글은 완성하기 어렵지만, 책장 정리는 해낼 수 있잖아!' 하는 마음에 기분이 가벼워졌다가, '무거운 책을 옮기는 일도 하면서 타이핑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 하는 생각에 금세 마음이가라앉았다. 무리하게 손을 쓰면서 하는 책장 정리가 글쓰기를 회피하고 자존감을 지키려는 발버둥 같았다.
누가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부터 개라고. 자신이 해낼 수 있는 매우 사소하고 간단한 일로 하루를 열면 그보다 조금 더 어려운 단계의 일을 해낼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어렵고 힘든 일을 회피하고 싶을 때, 아무것도 안 하는 무기력에 빠지느니 할 수 있는 작은 일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해내고 나면 그 성취감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어느 책에서 읽었던 문장이었고, 다른 이들에게도 종종 전하던 말이었다.
'그래, 뭐라도 써보자! 설마 당근 마켓 후속 편부터 왜 쓰지 않았느냐고 항의할 구독자가 있기야 하겠어?(네, 없으시죠?ㅜㅜ)'
며칠간 고민했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일까 하고. 여러 가지 주제들이 떠올랐지만,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주제는 하나뿐이었다.
"나는 왜 글을 못 쓰는가?"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그 외엔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글쓰기(feat. 당근 마켓 2편을 쓰지 못하는 변명)지만.
'쓰다 보면 알게 되겠지. 무엇 때문에 글쓰기가 힘든 건지.'
그냥 이런 마음으로 써 내려갔다. 결론은?
잘 모르겠다. 글의 완성과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회피인지, 글쓰기에 대한 권태기나 슬럼프인지. 아니면 그저 집중력과 체력 저하 때문인지.
그런데 다행인 건, 어쨌거나 쓰다 보니 글 한편 분량은 되었다는 것이다! 진흙탕에 빠진 발을 한 발 한 발 빼내며 더디게 나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렇게나마 조금씩이라도 써나가지 않으면, 글을 완전히 놓아버릴지도 모른다. 토고를 다시 보며 고치고 다듬는 일은 정말 토할 것 같으니까.
*며칠간 글쓰기에서 도망가려는 마음과 드잡이를 하며 이 글을 써 내려갔다. 책장 정리로는 모자라 그저께는 온종일 부엌과 베란다, 신발장을 청소했고, 어제는 새벽 3시가 넘도록 멜로 액션 드라마를 보았다. 오늘이 가기 전에야 겨우 책상 앞에 엉덩이를 갖다 붙이고 브런치에 접속했는데 다른 작가분들의 글부터 읽으면 괜히 의기소침해질까 봐 일단 작가의 서랍부터 열었다.
대개 변명 따윈 집어치우라고 말한다. 하지만, 글쓰기의 좋은 점은 이런 거다. 변명조차 글감이 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