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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기 May 20. 2024

사람은 무슨 맛이야?

    나는 아주 마른 편이다. 어릴 때는 잘 먹지 않아서 살이 찌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커서는 나름대로 음식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맛있을 경우에는 많이 먹기도 하는데도, 살이 찌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의문은 아들이 먹는 것을 보면서 말끔히 해소가 되었다. 아들은 처가와 친가 집안을 통 털어 유일하게 오동통한 몸을 가졌다. 주말에 하루 동안 아들이 먹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잘 먹네..'

    '더 먹네.. '

    '또 먹네..'

    '와 계속 먹네..'

    그렇다. 아들은 쉬지 않고 먹는다. 뭔가를 먹지 않을 때는 물을 마신다. 사람들이 왜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하는지 이제 나는 그 비밀을 안다.

    어느 날 아들이 정수기에서 물을 따르며 말을 걸었다.

    "아빠. 나는 물을 많이 마시는 것 같아. 계속 목이 말라."

    "아니야. 물도 많이 마시는 거야."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아들은 물 한 컵을 싹 비우고 사라졌다.


    아들이 10살이 된 후 오후 4시쯤이 되면 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아빠. 소고기 사와.'

    일하느라 바로 답을 못했을 경우에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카톡 메시시가 왔다.

    '아범아. 곰곰이가 올 때 소고기 사 오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아들은 엄마에게는 다른 메뉴를 주문을 하고 있었다.

    '엄마. 아이스크림 초코맛 콘으로 세 개, 감자깡 두 개, 고래밥 두 개 사와."

   

    소고기 문자를 받은 그날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소고기를 샀다. 물가가 너무 올라 한우는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호주산 안심이 할인을 하고 있고 저렴했다. 큰 것을 한 덩어리를 샀다. 우리 집은 맞벌이 집이다. 시간도 부족하지만 피곤해서 손이 많이 가는 요리는 잘하지 않는다. 보통 고기를 굽고 찍어 먹을 소금과 양념 몇 개를 준비해서 김치와 같이 밥을 먹는다. 가족들 모두 고기를 좋아해서 이 정도로도 충분한 한 끼가 된다. 매 끼 고기를 먹다 보니 가족들 모두 고기 맛을 잘 안다. 아이들에게 지금 먹는 고기가 호주산 소고기라고 알려주고 고기 맛이 어떤지 물어봤다.

    "향이 세고 특이한 맛이야. 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평소 호기심이 많고 이것저것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딸이 한참 동안 호주산 소고기 맛에 대해 말했다. 그 와중에 아들은 밥 한 그릇을 다 먹고는 재잘 대느라 밥에 관심이 없는 누나의 밥그릇에서 밥을 한 움큼 덜어가고 있었다.

    “곰곰이는 고기 맛이 어때?”

    아들에게도 물어봤다.

    "겁나 맛있어."

    아들은 몇 개 남지 않은 고기들을 전부 자기 밥그릇에 옮겨 담으며 말했다.


    밥을 먹고 난 후 소파에서 기타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나는 기타를 좋아해서 짬이 날 때마다 기타를 가지고 논다. 아들은 옆에 앉아서 탭으로 게임을 했다. 잠시 후 아들이 물었다.

    "아빠. 사람도 맛이 달라?"

    문득 누나의 소고기 맛에 대한 일장 연설이 생각났나 보다.

    "아마도 사람마다 먹는 것이 다르니.. 맛도 다르지 않을까?"

    타에 광을 내기 위해 여기저기 닦고 있던 중이라 대충 떠오르는 것 답을 했다. 아들도 게임을 하느라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소파에서 각자 한참을 놀고 자리를 떴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 내 방으로 와 책상 앞에 앉았다. 아까 소파에서 아들이 한 질문이 떠올랐다.  바빠서 건성으로 대답한 게 조금 걸렸다. 

    '사람의 맛이라..'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사람의 맛이 아닌가 싶다. 고기 품종에 따라 맛이 다르고 같은 품종이라도 자란 환경이나 먹은 것에 따라 맛이 다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타고난 기질과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 쌓여 고유의 분위기를 풍기게 된다.

    나에게 어떤 분위기가 풍겨 나는지 내가 남이 되지 않는 이상 알 길 없다. 다만 고기맛으로부터 힌트를 얻자면, 좋은 인간 맛을 가지기 위해서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좋은 책을 한 권 골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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