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부가 까맣다. 체형도 아주 마른 편이다. 그래서 어릴 적에 '에티오피아 난민'이라는 별명을 가진 적도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봐도 닮긴 했으니. 피부가 검은 데다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해서 여름철에는 더 까맸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뒹굴며 놀고 나면 나 혼자만 흙먼지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검은 차에 내려앉은 먼지가 더 잘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의 검은 피부와 마른 체형은 살면서 많은 흑역사를 남겼다. 흑역사라는 것은 겪을 당시에는 안습이지만 좀 지나고 나면 피식하고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많은 에피소드 중에 하나를 소개하자면 이런 것이 있다. 대학원 시절 연구실 선후배들과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개최되는 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태국 도착 후 입국 심사를 하는데 줄이 상당히 길었다. 20분쯤 지난 후 내 앞으로는 열 명 남짓 서 있었고 뒤로는 아직 한참 긴 줄이 남아 있었다.
잠시 후 저쪽에서 인상이 좋은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뭐라 뭐라 떠들고는 비어있는 입국 심사대를 가리키며 내 옷을 잡아끌었다. 나는 얼떨결에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 입국 심사를 하는 곳이었는데 비어 있었다. '새로운 게이트를 열었나 보다.' 생각했다. 아주머니가 게이트를 나간 후 내 차례가 되었다. 입국 심사원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나를 쳐다봤다. 손가락으로 아주 멀고 먼 줄의 끝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여긴 현지인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쪽으로 줄로 가세요.'
친절한 아주머니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현지인으로 착각한 것이다. 일행들은 한참 전에 먼저 나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일행들은 학회 기간 내내 나를 놀렸다.
더 황당한 것은 같은 에피소드가 터키에서도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피부색은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두 번 당하지는 않지.'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I am a foreigner. (저 외국인이거든요)‘
딸과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이 되었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 다 같이 모여 잔다. 그래서 자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침대에서 딸이 말했다.
"어릴 때는 남자들은 크면 모두 아빠처럼 까매지는 줄 알았어. 근데 아빠만 까만 거였어. 우리 집에서 아빠만 까매. 왜 그래?"
"너희들 까매질까 봐 아빠가 깜장 색을 전부 가지고 간 거야."
"별로야."
라는 망언을 남기고 딸은 돌아 누웠다.
딸은 아주 어릴 때부터 내 피부색으로 요상한 질문을 종종 했다. 딸이 여섯 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 생각이 났다. 엄마와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딸이 말했다.
"아빠. 아빠는 왜 그 색으로 했어?"
"무슨 색?"
"얼굴색 말이야, 왜 그 색깔로 한 거야?"
딸은 당시 그림을 배우는 중이었다. 얼굴색을 물감 색처럼 고를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몰라 어릴 때부터 이 색이었어."
"별로야."
라는 망언을 날린 딸은 거실로 사라졌다.
내 피부가 검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준 딸은 금세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