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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Oct 20. 2020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을까?

고정관념을 깨면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태어나서 팔팔한 청춘으로 살다가 점점 노화되어 일생을 마감하는 게 순리이다. 인류는 그 철리를 거역하고자 불로초니 불사초니 세상천지를 찾아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한 역사만 기록하고 말았다. 요즘 안티에이징 화장품이 유행이고 최근 발견한 줄기세포(Stem Cell)는 죽지 않고 끝없이 반복해 분열하는 ‘불사조’라며 ‘꿈의 치료제’ 실현이 가능할 거라는 섣부른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필자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옛날 놀던 가락을 살려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동심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옛 놀이들을 소환해서 어렸을 적 추억 속으로 빠진다. 이때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놀이가 꿈틀거리면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도 이내 동심으로 돌아간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며 행복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놀이는 동심(童心)이라고 하나보다. 이걸 반복하면 젊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가 만든 놀자학교에서는 호시탐탐 놀 핑계를 만드는 게 일이다. 봄가을엔 무슨 일이 있어도 노는데 진달래꽃 따서 지짐이 부쳐 먹는 화전놀이와 가을에 하는 건 대박 터뜨리기 등 추억의 운동회인데 올해는 코로나 돌림병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 

예전 공동체가 살아있을 때 봄이 되면 엄마들이 바구니 끼고 가서 참꽃 따다가 꽃전 해 먹고 노는 모습을 보았기에 시도해보았고 운동회는 어린 시절에 만국기 날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청군 백군 나누어 온 마을 사람들까지 응원전을 펼치며 떠들썩하게 즐거웠던 그리움을 붙잡고 싶어 만들어본 축제다. 돌림병이 사라지면 이들을 다시 불러낼 생각이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를 다른 측면에서 시도한 사람이 있었으니 미국의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엘렌 랭어 교수라는 사람이다. 그는 1979년에 오하이오주에서 70~80대 노인들만을 초대하여 일주일간의 추억여행을 시켰는데 여행이라고 해봐야 아무도 찾지 않는 수도원에 고립된 가운데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려 59년도를 연출하고서는 노인들에게 그 당시의 신문을 제공하고 그 당시의 야구중계방송을 틀어주면서 생활하도록 하였다. 

걷는 것도 뒤뚱거리던 노인들은 처음엔 화분에 물 주는 것은 물론 설거지하는 것조차 힘겨워서 불만이 가득하다가 점차 익숙해져 1주일이 지나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눈이 좋아졌고 듣는 귀가 좋아졌으며 기억력은 물론 생각하는 지능이나 악력(손의 힘)도 좋아져 마음도 몸도 20년 전의 50대로 돌아갔다는 놀라운 실험이다.           


엘렌 랭어는 그 뒤 '마음의 시계'라는 책을 펴냈는데 실제 노화에서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과 우리의 의식이 결정하는 것이 있다는 걸 증명해냈는데 저자는 ‘노화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젊음과 늙음, 건강함과 건강하지 못함과 같은 구분은 사회적인 구성물일 뿐 그 의미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늙음과 건강함에 대한 고정관념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 고정관념은 상식이란 이름으로 그리고 의학의 권위를 입고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주입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늙음이란 이런 것이다 노인은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고정관념들에 대해 반박한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가 진짜 가능할까?



지난 2012년 할머니가 된 엘렌 랭어 교수가 나타났다. EBS 다큐 <<황혼의 반란>>에서 한국판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를 재설계하여 실험했는데 놀랍게도 엘렌 랭어 교수의 말처럼 그들은 모두가 젊어졌다. 

이번에는 20년 전이 아닌 시계를 30년으로 되돌렸다. 70년대보다 신체 나이가 훨씬 젊어졌기 때문 같다. 자신의 나이에 0.7을 곱하면 50년 전쯤의 신체 나이가 될 것이다. 1982년 당시의 음악이 나오자 참여자들은 리듬에 맞춰 몸이 들썩이며 춤을 춘다. 여기서 중요한 거는 참가자들이 ‘현재가 1982년’ 이란 거에 의식을 집중시키는 것이라 말한다. 참가자들을 보면 당시 유명했던 사람들로 하연남 56세(배우, 실제 나이 86세), 남성남 52세(코메디언, 실제 나이 82세), 오승룡 48세(성우, 실제 나이 78세), 김한용 59세(사진작가, 실제 나이 89세), 한명숙 48세(노란 샤쓰 가수, 실제 나이 78세), 천규덕 51세(프로레슬러, 실제 나이 81세) 등 70대 후반 2명과 80대 4명으로 말 그대로 노인들이다. 이들에게는 먼저 개인별 맞춤 과제를 주어 행복 정서를 자극하고 지금의 상황과 감정에 주의를 기울여 궁극적으로 자심의 삶에 더 집중하도록 ‘의식의 집중(Mindfulness)’을 꾀하였다. 또한 주변 환경 및 사건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힘, 즉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의 근거를 갖는 통제력(Control)을 키우도록 하였다. 긍정심리가 작용하도록 유도하여 새로운 것을 인식하게 될 때 뇌에서는 뉴런이 활성화되고 새롭게 인식한 것들에 더욱 전념하고 열중하게 된다고 알렌 랭어는 설명한다.        


        

86세인 하연남(전 배우)의 실험 전(좌)과 후(우). 성형수술을 해도 이렇게 예뻐질 수 없을 것이다. 


1주일 뒤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지팡이에 의지하던 한명숙, 하연남은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계단을 오른다. 청력이 안 좋아 대화를 멀리하던 김한용은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모든 참가자들은 훨씬 밝아지고 웃음이 많아졌다. 엘렌 랭어 교수는 실험 결과에 대해 “시력 회복과 같이 어느 나이 대에서 기대할 수 없는 변화들이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청력, 인지력 그리고 행동이 활발해지는 등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노화를 역행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의학계에 알려진 심리적 자신감과 긍정감이라는 플라시보 효과가 있는데 일상생활에서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등 긍정마인드는 유연성 등 신체기능까지 좋아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시력을 측정할 때 맨 위 잘 보이는 글자나 그림으로부터 아래로 내려갈수록 잘 보이지 않는 걸로 배치되어 있는데 맥락을 바꾸어 거꾸로 시력판을 보여주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잘 보일 거라는 기대감으로 시력이 실제로 잘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긍정적 마음이 건강에 영향 미치고 건강이 긍정적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은 맥락을 바꿔주면 효과적으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위와 반대되는 상황을 필자는 친구 어머니를 통해서 목격하였다. 홀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사는 게 계속 마음에 짐이 되었던 친구는 어머니 연세가 80이 되자 이제는 모셔야겠다며 함께 살기 시작하였다. 이제 어머니는 밥을 스스로 지어먹는 번거로움이나 청소하는 수고로움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TV나 보면서 소일하게 되었다. 그동안 애써 하시던 일을 아들내미나 며느리가 대신해주니 세상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딱 3개월 뒤에 큰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며느리가 집을 비운 사이 청소 좀 하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허리가 삐끗한 것이다. 병원에 실려 갔는데 일반 병동도 아닌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병원에서도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갔다. 입원 3개월째가 되자 급격하게 치매 끼가 온다는 것이었다. 

<<황혼의 반란>>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이뤄졌는데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며 도와드리니 점점 의존성이 커지더란 것이다. 그래서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에서 누군가가 자신들을 도와주는 것에 익숙했던 참가자들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가능성에 도전하도록 하여 실제로 마음도 신체도 젊어진 것이다.  북유럽의 어떤 나라에는 요양원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이런 방식이 노인을 훨씬 자존감 높고 마을 공동체가 건강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다가 죽는 건 우리의 꿈!


필자는 놀자학교에서 ‘시계 거꾸로 돌리기’와 같은 실험은 못하지만 놀이를 통해 참가자들을 동심 속으로 빠져 들게 하기 위해서 '놀자학교 나이'를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46세이거나 55세이면 앞자리 숫자와 뒷자리 숫자를 더하여 10살이 되게 하는 것이다. 거의 10살 차이가 나지만 여기서는 똑같은 10살이다. 그리고 10살 때 무슨 노래를 배웠고 어떤 놀이를 했는지를 서로 이야기하고 놀이를 해보는 것이다. 동심으로 돌아가면 우선 체면이나 쑥스러움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들끼리 금방 친해지고 훨씬 자유롭게 놀이 활동을 할 수 있어 좋다. 그다음 심리치료에서 활용되는 ‘회상기법(Reminiscing Technique)’을 활용하는데 이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과거 경험을 생각하거나 그 경험을 현실의 문제와 연관시키는 것으로 구술 방법이나 명상법을 사용하여 치유하는 것을 말하는데 놀이 활동과 연관된 걸 끄집어내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고 연수 기수별 지지집단(연대의식이나 소속감)이 형성되도록 한다. 이런 건 누구에게나 전 생애와 세대를 초월해 “난 결코 그때를 잊을 수 없어”라고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나눌(공유) 수 있다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걸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다.  

어르신들을 보면 노인들이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과거 추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흘려듣는데 이는 과거 사건을 기억하고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 노인들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편안해진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해진다는 증거다.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을 공유하였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다시 기억’하고자 매년 봄가을로 꼭 놀아야 될 이유를 필자는 여기서 찾는다. 필자도 언젠가 저렇게 노인이 될 거고 그러다가 언제 어디선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할 ‘놀다가 죽는’ 꿈이 이루어지겠지.   



歸天(귀천)     

                _ 천상병 지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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