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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Aug 31. 2022

여름이었다

'여름이었다' 로 시작해서 '여름이었다'로 끝나는 글 쓰기

여름이었다. 불과 4시간 전 남짓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을 때만 해도 1월의 한국은 시베리아 고기압 영향 아래 영남지방까지 영하의 날씨였다. 도착한 세부의 하늘은 새까맸다. 공항 건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위해 비행기에서 내리자 덥고 습한 바람이 얼굴에 훅 끼쳤다. 패딩 아래 미리 면으로 된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온 덕분에 공항에서 빠르게 탈의하고 세부 시내로 가는 택시에 올라 탈 수 있었다. 새벽이라 한산한 도시 외곽 도로에 불빛이 고요히 반짝였다. 택시는 빠르게 시내로 진입했다. 




어떤 사람들을 여름을 병적으로 좋아하는데 내가 그 사람들 중 하나이다. 한국의 습하고 더운 여름을 겪고도 겨울에 또 그 여름을 겪기 위해 사계절이 여름인 나라에 간다. 마냥 여행하는 것이 지겨워서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땄고 따는 김에 2단계인 어드밴스드 다이버 자격증을 땄다. 이 자격증만 있으면 어느 나라에 가서도 다이빙을 할 수 있고 여름 나라에 방문할 의의가 더욱 단단해 진다. 그 해 겨울은 필리핀 보홀 섬에 가기로 했고 인터넷으로 적당히 갈 만한 한국인 다이버 샵을 예약했다. 세부에서 보홀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필리핀 도시들은 방콕이나 쿠알라 룸푸르처럼 메트로폴리탄 시티의 느낌은 없고 차분한 어촌마을 같이 느껴졌다. 쇼핑몰은 낙후되어 있었고 치안이 안 좋은지 쇼핑몰마다 무장한 경비원들이 눈에 띄었다. 섬에 도착한 첫날은 과거의 다이빙을 복기하는 리프레시 다이빙 코스를 했다. 다이빙샵 남자 사장님에게 내일 갈 다이빙 장소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오전에 두가지 장소에 다이빙할 것이라고 한다. 이 섬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장소라고 하니 북적거릴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다이빙 샵이어서 당연히 다이빙 강사가 한국인이겠거니 생각했으나 강사는 현지인이었다. 한 명은 30대즘 돼보이는 건장한 남자였고, 한 명은 20살을 갓 넘겼을까 싶은 빼빼마른 남자였다. 30대 남자는 영어가 유창했고 한국어도 곧 잘했다. 20살 남자애는 대부분이 한국사람인 손님들 사이에서 쭈볏거렸다.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자 사람들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8시 반에 우리 다이빙 팀인 5명과 다른 다이빙 팀 6명이 배에 탔다. 6명 팀의 강사가 건장한 삼십대 필리핀 남자였고 우리 팀을 이끄는 강사는 빼빼 마른 청년이었다. 삼십대 남자 강사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능글맞게 농담을 했고 우리는 깔깔대고 웃었다. 깡마른 청년은 좀처럼 말이 없었고 미소만 짓고 있었다. 첫번째 다이빙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다른 다이빙 샵에서 온 배들이 여러 척 떠있었다. 화이트보드에 늙은 강사가 바닷속 지형 지도를 그리며 우리가 들어갈 장소와 나올 장소에 대해 영어로 설명했다. 두명씩 버디를 정했는데 우리 팀은 울산에서 온 남자 둘이 버디, 나와 서울에서 온 여자와 버디가 되었고 경기도에서 온 여자 간호사 한 명과 강사가 버디가 되었다. (버디란 바다안에서 유사시에 안전을 위해 정해진 짝을 의미한다.) 보통 다른 나라에서는 입수하기 전에 장비와 산소탱크를 모두 다이버 본인이 점검하고 설치하는데, 필리핀은 강사가 모두 설치하고 체크하여 다이버는 간편하게 산소탱크와 장비를 착용하기만 해도 됐다. 울산에서 온 남자가 이 시스템을 ‘황제 다이빙’이라고 한다고 했다. 마음이 조금 착잡해졌다. 어쨌든 깡마른 강사가 다 마련해 놓은 산소탱크와 장비를 입고 입수 준비를 했다. 손가락으로 코를 막고 배에 걸터앉아 머리를 뒤로 고꾸라지듯 입수한다. 입수하기 전이 두렵지만 물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 조끼에서 산소를 빼고 천천히 입수한다. 물에 들어간다. 소리가 사라진다. 몸이 가라앉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물이 나를 감싼다. 




물 안 세상은 물 밖과 또다른 세상이다. 그 안에는 그 안을 지배하는 체계와 법도가 있다. 큰 무리의 바라쿠다 떼가 지나가면 먹이를 얻어먹기 위한 몇 마리의 작은 잭피쉬들이 하이에나처럼 따라 붙는다. 크고 작은 산호초들 사이에 수만가지 생물들이 나름의 주택임대법에 따라 거처에 살고 있다. 때로는 솔로 플레이를 하는 바다 거북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는 홀로 몇십년을 그 해역을 떠다니고 있다.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의 단단한 배가 내 머리위를 지나간다. 그의 수영은 언제나 고요하고 우아하다.  




다이빙은 총 45분이었다. 30분을 메인 장소에서 둘러본 후 10미터를 올라가 세이프티 스탑을 한다. 폐가 갑자기 팽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세이프티 스탑을 한 곳에서 5분정도 또 둘러본 후 10미터 올라와서 5분을 머무른다. 그렇게 총 두 번 세이프티 스탑을 하고 강사를 따라 물위로 올라갔다. 물위를 올라가니 가늘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물 밖에 비가 내리고 있을 때 물 안은 이렇게 고요하다는 것이 생경했다.  




배에 올라와서 보니 간호사가 없었다. 입수했을 때 조류가 있었는데 다이빙이 익숙치 않은 그녀가 조끼에 바람을 빼는 것을 제대로 하지 않은 모양이고 몇 미터 즘 내려왔을 때 강한 조류에 휩쓸려 간 것이다. 숙련된 강사라면 계속 팀원을 챙기면서 다이빙 포인트를 이끌어야 하는데 그는 대충 숫자를 세었고 물 안에 있는 45분동안 그가 없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배를 몰고 인근 바다를 돌아다니며 그를 찾았다. 혼자 떠있는 다이버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2시가 되었고 우리를 내려주기 위해 리조트에 다시 돌아왔다. 다이빙샵 사장은 패닉했고, 오늘 다이빙을 나가지 않고 리조트에서 쉬고 있던 간호사의 친구가 울면서 패닉했다. 한국인 사장은 깡마른 강사에게 눈을 부라리고 삿대질을 했다. 깡마른 강사가 울었다. 




우리는 리조트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그녀의 소식을 기다렸다. 샵에 있는 모든 배를 몰고 바다를 뒤질 것이라고 한다.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오후 5시가 되어 하늘빛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더욱 사람을 찾기 힘들어 질 것이다. 6시즘 되어서 그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가 돌아왔고 그녀가 돌아왔다. 얼굴이 새빨갛게 탄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오늘 이야기를 해주었다. 조류에 휩쓸려간 이후 물안으로 내려가도 팀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누군가가 구조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떠있었다고 한다. 9시반에 입수를 했으니 대략 10시경부터 떠 있었는데 멀리 배의 엔진소리가 들리곤 했지만 자기를 구조하러 가까이 오는 배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거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망망대해에 하루 종일 떠 있었다고 한다. 두렵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든 구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수영을 못하니까 그냥 얼굴을 내놓고 떠있었더니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힘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그녀가 씻고 내려와서 우리 팀은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다시 살아난 기념’이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술을 사주었다. 코가 새빨갛게 익은 여자가 우리에게 건배를 청했다. 울산에서 온 남자 둘이 사장에게 항의하여 보상을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삶과 죽음에 경계에 있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고 하면서 자신도 그런 임사체험을 한 한 명에 불과하다고 하며 괜찮다고 했다. 




그 뒤 나는 왠지 다이빙을 하고싶지 않아졌고 그후 6년간 다이빙을 하지 않았다. 여름은 그렇게 나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번 겨울은 다이빙 생각이 났다. 발리의 길리 섬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발리에 도착하여 공항 밖을 나섰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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