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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Oct 12. 2022

내가 질투한 여자들

내가 질투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여성, 그리고 또래라는 점, 그리고 질투 뿐만 아니라 동경과 사랑의 감정을 같이 가졌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이 사람들을 거치면서 나는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감정들이 잘 공존한다면 이상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으나, 어느 한 감정이 우세하여 균형이 깨진다면 관계는 파국으로 가는데, 나는 이 질투-동경-사랑의 삼위일체 균형을 결국 모두 깨버렸고 앞으로 적을 사람과의 일화는 모두 과거형이다. 

1. 초등학교 시절에도 이러한 감정을 어렴풋이 느끼게 해 준 친구가 있었으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P를 만나고서 이 질동사(질투, 동경, 사랑) 감정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친구는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는데 키가 크고 피부가 희었으며 그만의 분위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공부도 잘했다. 이 친구와 음악을 계기로 친해지게 되었고 부산대학교 앞에 있는 인디 클럽에 가는 사이가 되었다. 공연이 끝나면 우리들은 무알콜 칵테일을 홀짝이며 요즈음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가끔 주말에 부모님과 성당에 가는데 미사시간에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 순간 나는 그에게 반해버렸고, 그와 그 전 같은 사이가 될 수 없었다. 그 말은 내가 그 아이 앞에서 말을 더듬게 되고 눈을 피하게 되고 뚝딱거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 아이는 내가 왜 갑자기 서툴어지고 말이 없어지고 재미가 없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빌려준 책을 돌려주는 것을 끝으로 그 아이와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었고 그 관계는 그 것으로 끝이었다. 

2.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만난 E는 꽤 오랫동안 동경, 사랑, 질투, 시기, 혐오, 연민 등의 감정을 모두 느끼게 한 친구이며 나의 오랜 글감이기도 하다. 이 친구와의 파국은 그가 오랫동안 유부남과 동거하게 되면서 차차 멀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30대 중반에도 일정한 직업없이 유부남에 기대어 사는 그녀가 못마땅해 지적질을 해대다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겼다. 결국 나는 같이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미워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그 미움의 이유를 정확히 서술하지 못한다. 우리가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했을 때 그녀는 내가 그녀를 질투한다고 지적했다. 내가 그 친구를 나보다 더 친밀한 동반자가 있다고 질투한다고 인정해도 여전히 석연찮다. 그 미움과 파국에는 질투 이상의 감정이 있었다. 나는 왜 그 친구가 그렇게도 싫어졌을까. 

3. 나는 전혀 만나지 않은 사람을 전통적 의미에서 질투한 적이 있다. 대학교 내내 짝사랑한 남자가 짝사랑한 신오렌지라는 여자를 질투했다. 신오렌지는 우리과 두학번 선배인데, 휴학을 자주하여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나의 짝남 싸이월드를 통해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sinorange는 그녀의 싸이월드 주소 이름이다.) 나는 내 짝남이 신오렌지와 사귀기를 간절하게 원했다. 어짜피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내가 질투하고 동경하는 신오렌지와 사귀길 원했다. 그 짝남에게 내가 그녀를 소개시켜 준다고 허풍을 떨기도 했는데, 나는 그렇게 세명에서 친해지고 싶은 변태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짝남도 좋고 짝남이 좋아했던 그 짝녀도 좋아할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셋이 그렇게 연결되었다면 나도 그들과 같이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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