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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Aug 03. 2022

[아내의 일기] 언니의 진로고민

허구헌날 진로고민하는 나에게 쓴 일침

일을 안하고 있을때 많이 하는 진로 고민(공상)을 하는 나를 보고 자기도 글을 쓰고 싶다고 해서 써보라고 부추겼더니 아내가 글을 완성하여 주었다. 통렬하면서도 웃겨서 허락을 받고 가지고 와봤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



어제 저녁 언니는 진로고민을 이야기 하였다. 블로그 이웃과 블로그로 진지하게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조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어떤 진로 고민인지 안 들어도 알았다. 교사를 그만두고 영화감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 영화 내용은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할 꺼라고 했다. 교사가 자기의 영혼을 갉아먹는다나 뭐라나… 





할 말이 많았지만 등을 돌려 자는 것으로 대신했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삶이 언니의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나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복지관에 근무하면서 영화제작반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 독립영화를 만든 감독들을 강사로 채용했고 노인들에게 영화에 대한 이론강의와 짧은 영화를 만들도록 하였다. 몇 푼 안 되는 강사비를 주고 내가 원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도록 오지게 부려먹었다. 나로썬 그래야 결과가 좋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그 분들이 얼마나 대접받지 못하면서 일하는지는 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 




나는 언니가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자신의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걸 숱하게 지켜봤다. 그렇지만, 부동산 전세계약을 할 때,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 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본인의 직업을 말하는 것 또한 지켜봤다. 전세계약에서 교사라는 직업을 말하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되는 지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신분보장이 세입자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말하곤 했다. 안정감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 전세계약을 성사하는 것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알 수 있었다. 일종의 직업에 대한 본인의 자부심? 뭔가 그런거 같았다. 한국사회에서 교사라는 직업이 무시 당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쉬지 않고 일 한 사람이 이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고 싶은 마음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직업의 자유와 해방이 얼마나 큰 불안과 동행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될 것이다. 




직업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시간을 주고 그 시간의 노동력을 돈으로 돌려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돈을 많이 그리고 돈을 오래 받는 직업이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직업 같은 직업이라 이야기 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이런 의미에서 언니의 진로고민은 대책이 없다. 가끔 현실과 동 떨어진 이야기로 본인의 삶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말 그대로 현실도피다. 




나는 언니의 직업이 언니의 인생에 꽤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언니는 정신과 의사가 되어 환자를 돌보고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삶, 경제적으로 넉넉한 그 삶을 가끔 꿈 꾸기도 하고 그 때 의대를 가지 않은 것을 몇 번이고 후회하며 글을 쓰기도 한다. 그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현재 언니의 삶에서 교사의 직업이 의사보다 나쁠 것도 없다는 말이다. 죽겠다는 얘기를 매번 듣는 것보다 창창한 미래를 열어 갈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본인의 삶에 더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피를 나눈 가족, 언니를 둘러 싼 모든 관계에 단단함과 안정감이 결여 된 성장 환경에서 보수적이고 변화가 없는 직장은 자신을 삶을 보다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자아실현은 안전의 욕구가 실현 될 때 가능하다. 

언니의 선택, 언니의 삶을 언제나 응원하지만 가지지 못한 면에 몰두되어 쥐고 있는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피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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