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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Aug 01. 2022

로스트 도터/로스트 마더

엄마를 잃어본 적 있는 딸의 입장에서 본 영화 리뷰 


1. 내가 4~6살(유치원생)이었을때 엄마가 6개월 정도 가출한 적이 있다. 엄마가 야반도주(어스름한 새벽이었으니까 새벽도주)하려고 짐을 싸고 있을때 내가 잠에서 깼다. '엄마 뭐해?'라고 물으니 엄마가 몇일 집을 나가 있을 테니 잘 있으라고 한다. 불안감을 느낀 내가 '따라가면 안돼?' 라고 물으니 엄마가 따라오지 말라고 한다. 엄마가 집을 나간다. 내가 따라 나선다. 엄마가 따라오지 말라면서 뛰기 시작한다. 당시 우리 집이었던 주공아파트 38동은 언덕위에 있다. 택시가 잡히는 도로까지는 쭉 내리막길이다. 주황색 박스티를 입은 엄마가 내리막길을 내달리기 시작한다. 네다섯살인 나는 아무리 뛰어도 엄마를 따라 잡을수가 없다. 뛰면 뛸 수록 엄마와 멀어질 뿐이다. 엄마는 사라졌다. 나는 엉엉 울면서 집에 다시 돌아왔다.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를 옆 아파트 단지에 살던 큰아버지집에 맡겼다. 아빠가 새벽일에서 돌아오는 10시즘 우리는 큰아버지집에 맡겨져서 저녁즘에 아빠 오토바이를 실려 집에 간다. 나는 큰아버지 집이 끔찍하게 싫었다. 당시 고등학생, 대학생 자녀가 있던 큰어머니는 나와 한살 어린 연년생 남동생을 짐처럼 싫어했다. 10시에 그 집에 도착하면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고 우리는 거실 끝 베란다 입구에 한 덩어리처럼 뭉쳐앉아 울었다. 그 당시 분리불안이 하도 심해서 등원하는 시간부터 집에 가는 시간까지 울곤해서 유치원을 여러번 옮겨야 했던 나인데, 그 집은 오죽했겠는가. 큰어머니가 우리 둘을 씻겼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계속 울기만 하는 나의 등짝을 때리며 화를 내던 큰어머니. 차가운 물을 바가지째로 머리에 붓고 나는 더 크게 울었다. 그 6개월의 기억은 화상자국처럼 아직도 남아있다. 




나중에 알기로 엄마는 집을 나간 그 길로 율곡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한 두달 폐쇄병동에 있던 것이 그렇게 달콤한 휴식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엄마는 내가 정신적으로 불안할 때 정신병원에 입원하길 권했다. 가정생활때문에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버린 아줌마들이 약을 먹고 자는 곳이며, 편견과 다르게 모두 평화롭게 지내는 곳이라고 했다. 




2. 이 화상자국같은 기억은 인생의 어떤 순간에 갑자기 수면 위에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주로 어떤 순간이냐면 내가 연애를 시작하는 초반이다. 연애를 시작하고 3개월정도 동안 나는 극심한 분리불안을 겪는다. 내가 상대방을 더 좋아하는 연애 관계이면 더 정도가 심하다. 그 사람이 떠나갈까봐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다. 그 사람 연락, 메세지 하나 하나에 신경이 곤두선다. 첫 섹스를 하고나서는 불안이 절정에 달한다. 섹스하고 나서 내가 싫증나지 않을까. 내가 지겨워지면 어떻게 하지. 이런 것들을 신경쓰고 불안해 하면 자연히 상대도 그것을 느끼게 된다. 3개월동안 자기를 집착하는 것을 본 많은 남자들이 나를 떠났다. 자비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내가 먼저 끝낸 관계도 많았다.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관계를 떠났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의 연애는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17년동안 심리상담을 받아오면서 상담사를 바꿀때마다 꼭 나오는 장면이 엄마가 사라진 6개월이다. 


https://blog.naver.com/pharmakon13/221745295174



이 장면에 대해 상담할 때 마다 씻김굿을 하는데도 새 상담사를 만나면 여지없이 고름이 쭉 나온다. 언제즘 이 고름이 안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3. 작년 아내를 만나고 연인관계에서 느끼는 분리불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불안은 늘 도사리고 있다. 꼭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친구 관계에서도, 내가 집착하는 어떤 상대가 생기면 언제든 분리불안은 생길수 있다. 그러던 차에 이 영화를 보았다. 로스트 도터. 모순적인 이름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잃어버린 딸', '잃어버린 인형'은 서스펜스를 위한 기믹에 불과하다. 실제로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로스트 마더'(사라진 엄마)이다. 




48세의 대학교수인 레다는 20대 두 딸이 있다. 여름 휴가로 그리스의 한 섬에서 혼자 휴양을 즐기는데, 그리스인으로 추정되는 한 무리의 가족 손님과 같이 리조트에서 지내게 된다. 그 중 한 젊은 엄마와 어린 딸에게 관심이 가는데, 어느 날 그 딸아이가 사라지게 되고 레다도 역시 그 가족과 함께 딸을 찾으러 나선다. 레다가 아이를 찾게 되고 그 젊은 엄마와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젊은 엄마와 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엄마가 된적이 없고 아직 되고 싶지 않다(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나의 엄마가 정신병원에 제 발로 입원할 정도의 육아의 진통을 겪으며 나와 내 동생도 머리속에 화상자국같은 것들을 남기며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레다는 잃어버린 딸/엄마 시절을 3년 보냈다고 하는데, 두 딸인 비앙카와 마사에게 그 3년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지 인터뷰하고 싶다. 그들도 화상자국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위안되는 부분이 있다. 엄마가 그때 떠난 것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떠난 것이 아니라는 것. 그저 대부분의 엄마들은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으며(모성애는 주입받은 것이고 부성애는 태만에 가깝다.) 고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 사실을 감추고 있으며 육아가 힘든 엄마들이 자기를 부정하게 만든다. 아마 나의 엄마도 육아도 힘든데 자기를 부정해야하는 이중고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을 것이다.




내 가슴속에 화상자국을 남긴 엄마의 가슴속에는 어느 정도의, 어떤 종류의 죄책감이 있을지 항상 궁금했다. 영화 마지막에 젊은 엄마가 휘두른 비녀에 찔려 피를 흘리며 해변에 누워서 노숙을 하는 레다를 보며 '사라졌던 엄마'들도 저 정도의 속죄를 할 만큼의 마음의 짐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 평화로워 졌다. 엄마입장의 이야기를 이제서야 들을수 있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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