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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Nov 06. 2022

쓰는 내가 우는 나를 대변해 줄 때까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살다가 말문이 막힌 적이 많았다. 심부름하고 돌아오는 길에 동전을 흘려서 엄마한테 두들겨 맞고 울었는데 엄마가 ‘억울해서 우는거야?’라고 했을 때. 아빠가 술을 먹고 집에 와 밥상을 뒤엎고 엄마를 발로 밟고 때렸을 때. 장롱 속에 숨겨진 포르노 테이프를 발견하고 몰래 그 비디오를 틀어봤을 때. 외할머니 집에서 놀다가 안방에서 자다가 이상한 느낌에 일어났더니 외사촌오빠가 내 팬티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내 치마 속 영상을 찍은 학생들을 학생부장에게 인도했더니 내게 앞으로 치마를 입지 말라고 했을 때. 




어려서부터 숨이 막히고 말이 막히는 공간에서 자라다 보니 나는 말보다는 글의 나라로 가곤 했다. 엘렌 식수는 진정한 부모를 찾는 유일한 방법은 어두운 곳에서 책을 고르는 것이라고 한다. 엘렌 식수 말 대로 책 속에는 계모 같은 나의 부모를 떠나 진짜 부모를 찾는 모험이 있었다. 글을 읽고 있는 순간 내 육신은 주공아파트의 작은 방을 벗어나 총천연색 열대우림 속에 있다. 글 속에는 모험과 꿈이 있고 이국적인 나라도 있고 또래는 못가지만 나만 갈 수 있는 어른들만의 은밀한 세계도 있었다. 부모가 데려다 주지 않는 곳은 책으로 여행했고 그곳을 상상하면서 머리속에서 놀았다. 그리고 점점 입으로 하지 못하는 말을 일기로 쓰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백스트릿 보이즈에 대한 나의 열렬한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미국에, 혹은 영국에 가고 싶다고 부르짖기도 했다. 어느 날은 섹스에 대한 궁금증을 잔뜩 적어 내려가기도 했다. 사실 엄마나 아빠에게 하고싶었던 말을 선생님이나 학교, 더 나아가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둔갑하여 적은 적도 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글로 표현하며 터져버릴 것 같은 머리속을 정리하곤 했다. 어려서부터 생존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셈이다. 




엘렌 식수는 글쓰기는 원초적인 그림,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그림을 복원하고 발굴하고 다시 찾으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2014년에 제자에게 성범죄를 당함으로써 시작된 우울증때문에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일기에 다시 나를 괴롭히는 기억들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우울증은 인지능력을 퇴화시킨다. 취미 중 큰 부분을 차지하던 독서가 내게 버거운 훈련이 되었다. 원래 말주변이 없었는데 우울증 이후 말하기 능력이 더 많이 떨어졌다. 사람들이 나보고 과묵하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능히 말로 전달하는 이를 보면 부럽고 배가 아프다. 우울증에 걸리면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 너무 깊고 많은데 말로 전달하기가 번번히 실패하기 때문에 내면은 열받은 압력밥솥이 된다. 압력밥솥이 터져서 엉망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한 일이 매일 블로그를 쓰는 것이었다. 다 퇴화되어 스러져가는 인지능력 중 하나 덜 파손되어 내 손에 잡힌 것이 쓰는 능력이었다. 가물가물해지는 기억을 다시 내 손으로 다듬어 만질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 또 변태 같이 뒤틀린 욕망을 블로그에 썼다. 심리상담을 받고 깨달은 바를 최대한 상세하게 기억하려고 적었다. 쓰고 있으면 쓰는 자아가 우는 자아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그의 감정을 차분히 대변해 줄 수 있기도 했다. 우는 나는 쓰는 나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나의 글은 나를 더 나아지게, 성숙하게, 교훈을 얻도록 유도할 만큼 거창하지 못하다. 쓰기는 나를 완전히 구원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나의 학생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그들에게도 말문이 막히고 숨이 막히는 상황이 왔을 때 꺼내 쓸 수 있 응급 구조 키트로서 기본 생존 글쓰기를 가르친다. 어쩌면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나를 잘 대변할 완벽한 도구를 찾기 전까지 버티며 쓴다. 쓰기 능력이 향상되어도 인지 능력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읽고 기억하고 말하는 능력이 영원히 퇴화되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근근이 기록하며 기억을 조형한다. 쓰고, 그리고, 조각하고 찍고 올린다. 글을 쓸 때 나는 존재한다. (엘렌 식수,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밤의책, 202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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