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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Jan 29. 2023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고

여성이 자신의 성적욕구에 대해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가기

하미나 작가의 글쓰기 수업반 중 성에 관한 글쓰기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멤버가 여성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매주 섹스에 대해 누구는 열정적이고 게걸스럽게, 누구는 담담하게, 누구는 억압을 견디며, 누구는 관심없고 지겹다고 적었다. 익명의 여성들로만 모인 이 그룹에서 시원하게 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은 나에게 분명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여성이 하는 성에 대한 발화는 왜 이렇게도 시원한 쾌감을 줄까. 

어릴 때부터 성에 관심이 많았다. 부모가 하는 성관계를 목격하기도 하고, 부모가 장롱속에 숨겨둔 포르노를 몰래 보기도 했다. 모순적이게도 어릴 때 사촌에게 당한 성추행도 내게 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한 원인이기도 했다. 도대체 그게 뭔데 사람들은 집착할까. 뭐길래 저렇게 목을 멜까. 여고생이던 나는 일기장에 빨리 어른이 되어 섹스하고 싶다고 적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하는 성미의 나에게 섹스는 빨리 체험해야하는 퀘스트 같은 것이었다. 



아니 에르노가 이 자기고백서를 쓴 시기는 90년대 초이다. 1990년대 초반의 어떤 ‘쿨한 여자’의 연애 이야기이다. 이혼녀에 대학교수인 프랑스 여자인 내가 30대 후반의 잘생긴 동유럽(러시아?) 출신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연애하는 동안은 그와 섹스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자기 독백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그 연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그려져 있지 않다. 그 사람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의도적으로 삭제했을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니 남는 것은 사랑과 섹스에 거리낌이 없이 내 감정에만 오로지 순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독백뿐이다. 에르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연애 당사자인 그 남도 필요하지 않다. 오직 이렇게 사회적 의식과 시선에서 벗어나 내 감정에만 솔직한 나에 취해 있을 뿐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매체에서 여성이란 남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바치고, 자기 몸이라도 팔고, 목메다가 버림받는 사람들이었는데, 이 글에서는 에르노가 자신의 상대를 철저히 익명화 해버려서 자신의 책(감정)을 위해 남자를 이용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내가 성인이 된 시기가 2000년대 초반이니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적 시차가 10년정도라고 한다면 90년대에 에르노가 프랑스에 충격을 줬던 쿨걸 문화가 한국에는 2000년대 초에 슬슬 들어오고 있었다. 온갖 매체에서 젊은 여자들이 앞뒤 재지말고 남자와 빨리 자라고 재촉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단지 한 성별만 이득을 보는 프로파간다였다고 생각한다.) 이효리는 남자를 꼬시는데 10분밖에 안 걸린다고 했는데, 어떻게 들으면 10분뒤에 너랑 잘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치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당연히 남들처럼 앞뒤 안재는 섹스를 했고 후회했고 실망했다. 이거에 목숨을 건다고? 나는 내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데이트 앱으로 한남에서 양남으로 갈아타고 생각없는 섹스를 하고 글을 썼다. 그리고 남성들에게 내 이야기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했다. 단 한명도 빠짐없이 남자들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철저히 자기 욕구의 필터로 나를 바라보았다. 듣고나선 '저렇게 헤픈 애는 내가 충분히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시대가 지나 조금 퇴색된 것 같긴 하지만, 아니 에르노의 자기독백이 아직도 독자들에게 와닿는 것은, 성에 대해 쓰는 글쓰기방에서 쾌감을 느꼈던 감각과 일맥상통한다. 에르노는 좀 더 담담하고 호들갑 떨지않는 태도로 상대방을 지워버리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수많은 남자들의 섹스 서사들 속에 자신을 끊임없이 타자화 해야했던 여성독자에게 (어릴 때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삼국지 시리즈의 초선 이야기를 읽고 자위해야만 했던 어린 나에게) 단순한 열정 같은 작품은 여성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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