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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Jun 26. 2023

영화 엘리멘탈과 뮤지컬 빨래에서 보여지는 이민자들

사랑이 만병통치약이다?

트위터에서 엘리멘탈이 너무 좋으니 꼭 보러가라는 영업을 당했다. 픽사의 전작인 소울과 인사이드 아웃에서 보여지던 ‘추상 개념’의 의인화가 여기에서도 나오는 것 같아서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생각하고 개봉날 바로 여자친구를 끌고 갔다. 소울과 인사이드 아웃은 너무 재밌었는데 엘리멘털은 그렇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인사이드 아웃에는 감정이 의인화 되어 나온다. 기쁨, 슬픔, 두려움, 경멸, 분노가 주요 캐릭터로 꼬마 아이의 머릿속에서 한바탕 난리를 친다. 그 사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쁨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감정 스펙트럼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소울에서는 영혼이 의인화 되어서 인생의 가치를 논한다. (알고 보니 두 영화 모두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



영화 엘리멘탈에서는 불, 물, 흙, 바람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며, 그 중 불과 물이 더 비중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불, 물, 흙, 바람이 엘리멘트 시에서 살아가는데 주인공 불 엠버는 게토 같은 불 동네에서 아버지의 식당을 도와주며 살아간다. 세관에 신고를 안하고 불법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노후된 식당 배관이 터지면서 시청 공무원 웨이드(물 사람)을 만나게 되고, 식당을 폐업시키지 않고 배관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험하는 것이 주요 스토리 라인이다. 인사이드 아웃과 소울과 다른 점은 주인공 불과 물이 성별과 인종이 뚜렷해 보인다는 것이다. 주인공 불 캐릭터인 엠버는 여성 캐릭터이며 아무리 봐도 한국계 미국인이다. 아무리 모국어로 외계어를 쓰고 인도풍 비지엠을 깔아도 그렇게 보인다. 불같은 성미, 매운 것을 좋아하는 취향, 부모에게 순종적인 문화, 가업을 물려받고 같은 인종끼리 결혼해야 하는 모종의 규칙, 만나고 떠날 때 큰 절하는 관습이 있고 또, 불은 묘하게 김장 김치를 닮았다. 물 캐릭터인 웨이드는 곱슬 머리 남성인데 돈 걱정 없이 살아가며 눈물이 많으며, 하찮은 것에 호들갑을 떨고 그의 부모는 엠버에게 시혜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백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목소리 배우는 흑인이다.)

문제는 이 뚜렷한 성별과 인종의 은유가 로맨스 서사를 만났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불네 커뮤니티는 불법 장사(식당)를 하면서 살아가는데, 엠버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예술가로서 성장하는 것)을 숨기고 가업을 물려받으려고 한다. 엠버의 자아실현을 도와주는 웨이드는 엠버를 사랑하고 금기의 사랑을 이루어 낸다.



영화의 중후반부에 엠버는 웨이드네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하게 된다. 불의 특별한 능력으로 깨진 식기를 녹여 새로운 유리공예 작품을 내놓는 것을 보고 웨이드와 가족들은 감탄한다. 그리고 웨이드와 식구들은 엠버가 정말 하고싶은 일을 하도록 이끈다.  



이 지점에서 내가 불편했던 것은, 웨이드와 웨이드네 식구는 엠버가 왜 가업을 물려받는데 목숨을 거는지, 또 왜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는 지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 개인적인 트라우마들도 떠올랐다. 내가 연애했던 미국와 영국의 남성들은 아시안들이 왜 자아실현과 관련없는 일(먹고사니즘)에 목숨을 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OECD 국가중 가장 노동강도가 세고, 휴가일수가 적은 한국의 노동 환경에 대한 무지이다. 또 부모가 어려서부터 아래로부터 효를 강조한 것은 부족한 노인 복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이것에 대한 이해가 없이, ‘고분고분한 아시안들’을 백인들의 렌즈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멘털의 감독은 한국계 미국인 남성인데, 인터뷰에 의하면 다른 인종의 부인과 연애담을 녹였다고 한다. 그런데 왜 자캐(창작자를 대변하는 캐릭터)를 여성으로 했는지가 의문이다. 자신의 순수성을 무해한 여성 캐릭터로 녹이고 싶었던 걸까. 가뜩이나 아시안 여성에게 성적판타지를 품는 타인종(특히 백인) 남성이 많고 이 현상을 옐로 피버라고 부르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이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근 미국의 아시아 이주민에 대한 컨텐츠가 많이 있었다. ‘H마트에서 울다’, ‘마이너 필링스’ 같은 서적에서부터 넷플릭스 시리즈 ‘비프’,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에서 아시아 부모에 대한 애증을 대부분 다루고 있는데, 엘리멘탈 역시 부모(전통)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나오나, 이것의 해결 방법이 다른 컨텐츠보다 나이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아시아인들의 분노에 대해 다루고 있는 ‘비프’가 시즌1의 마지막 화에서 두 주인공 남녀의 공통된 트라우마를 사고 후 정신착란 상태에서 나열되는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일품이었다. 또한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에서는 백인의 환심을 사기위해 집과 학교에서 교육 받은 자신의 모습을 또한 한국과 아시안 독자를 뒤돌아 보게 만든다. 가수 리나 사와야마의 곡 STFU! 에서 아시안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마이크로 어그레션을 쏟아내는데, 엠버는 이러한 서사의 반대 지점에 서있다는 생각이 든다.

리나 사와야마의 STFU! 뮤직비디오



여자친구는 뮤지컬을 무척 좋아하는데, 여자친구의 취향으로 한국 창작 뮤지컬인 ‘빨래’를 보러갔다. 빨래의 주요 캐릭터는 서울에 사는 몽골인 노동자인 솔롱고와 강릉 출신의 서점 알바생 나영이다. 이외에도 셋방 주변 캐릭터로 셋방 주인 할매, 희정엄마, 필리핀 노동자 마이클이 나온다. 서울의 하층민들의 이야기들인데 이 또한 솔롱고와 나영의 로맨스 서사가 주를 이루고 엘리멘탈 처럼 마지막에 두 주인공이 결혼하며 막을 내린다. 솔롱고와 나영은 클리쉐적인 인물로 솔롱고는 불법체류 노동자인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나영 또한 비정규직으로 사장의 한마디에 해고되는 파리목숨 노동자다. 사글세방 옆방에 살면서 연애를 하는데, 한가지 특이한 점은 솔롱고가 몽골출신이어서 얼굴이 한국인과 같다는 정도. 이 뮤지컬에서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셋방주인 할매로, 세입자들에게 강자이지만 40세 지체장애 딸을 보살피는 약자라는 면에서 가장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십 몇 년전 영화 동호회에서 만난 남자가 동호회 멤버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한 적이 있다. 자기 아버지 공장에 노동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어디서 짝을 구하고 어디서 성욕을 풀어야 할지 그 사람들이 안쓰럽고 걱정된다는 것이다. 이 고민은 남성 장애인 성욕 논쟁을 떠오르게 했다. 비장애인 헤테로섹슈얼 좌파 남성의 걱정의 범위는 여기 정도선에서 끊기는 것 같아서 씁슬했다. 여성 이주 노동자와 여성 장애인은 성욕 해소가 아니라 삶의 안전을 끊임없이 걱정해야 하는데, 그들은 누가 걱정해주나?



엘리멘털에서 이주민 여성 엠버의 자아실현 소망은 백인남성인 웨이드를 만나 실현된다. 이주민이자 여성이라는 두개의 모래주머니를 찼기 때문에 웨이드와의 결합이 더 절실하고 그 결합의 예시 또한 현실에서 흔하다는 것때문에 이 서사가 진부하게 느껴진다. 빨래에서 또한, 이주민 노동자 솔롱고는 나영을 만나 결혼하므로서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나는데 이 결말 또한 썩 새롭진 않다.



이주민, 이주노동자의 사회 경제적 차별을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으로 다루는 것은 어렵다. 이주민 혼자서 성공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다. 그래도 결혼이라는 패스트 트랙 말고 다른 방법으로 성장하는 스토리를 바래본다. 지금은 2023년이고 그렇게 해보려고 힘든 외국 생활을 혼자서 감행하는 이민자들 또한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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