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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Jul 09. 2023

영어교사 없는 영어교사모임

나는 올해로 전교조 영어교사모임(이제는 사단법인으로 분리됨)에 소속된 지 19년째이다. 교직 경력이 19년째이니 교직 시작하고 바로 가입했다는 말이다. 교사 노조는 내가 첫 임용되었을 땐 딱 두 가지밖에 없었는데 전교조(전국교직원조합)와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였고 대충 우리나라 양극화된 정치판과 비슷하다. 나는 90년대말 사립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강성 전교조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다양한 사상교육을 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수업을 할 수 있다고? 라고 생각할 정도로 좌편향 정치색이었고 나는 그것에 대한 좋은 환상을 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수의 강성이 있었다는 것은 그 사립재단의 대단한 갑질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번은 사회 선생님이 시중의 신문사설을 모두 오려서 공책에 붙이고 분석하는 수행 평가를 내주었는데 그게 세상 보는 눈을 바꾸어 주었다. 사회 교육과를 가고 싶었지만 수능 점수가 잘 나와서 영어교육과에 갔고 23살에 교직에 임용되고 전교조 동료들을 만나고 역시나 하는 생각에 바로 가입했고, 나는 좋은 수업을 하고싶었기 때문에 ‘전국영어교사모임’에 가입했다. 지역  영어교사모임에 연결되어 나와 비슷한 정치색과 수업 연구 동기를 가진 선생님 10명 정도가 2000년대 중반에 매주 월요일 저녁에 전교조 사무실에 모여서 정말 열심히 연구했다. 



지난 주 모임(이제는 한달에 한번 모인다.)에서 40대 중반의 회장 선배가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40대 초반의 나에게 말했다. 2년 뒤가 걱정된다고. 그녀는 교감승진을 준비중이고 2년 정도 안에 교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교감이 되면 더 이상 연구모임을 계속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회장을 맡는 것은 상관없고 이전에도 수차례 했지만(10명남짓 소수멤버들끼리 오랫동안 모임을 운영하게 되면 돌아가며 중책을 맡을 수 밖에 없다.) 언니의 걱정은 이제 그 2-3년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이 거의 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10명중 3명은 이미 은퇴하거나 명예퇴직 준비하는 분들이고, 나머지 7명 중 나 빼고 모두 승진(혹은 진로 변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날 저녁은 현타가 진하게 왔다. 나는 참고로 2014년에 심각한 교권침해 사건을 겪고 거의 10년간 우울증을 앓아서 30대 내내 진로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9년전 열정적으로 수업을 잘 하고 싶었던 교사들은 왜 지금 조기은퇴와 다른 진로로 가는 걸까. 그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 모임을 창립했던 전설적 카리스마의 L선생님이 있었다. 그 분은 전교조에서 단체로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냈다가 교육청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회의를 느껴 전교조를 탈퇴하고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60918.html) 부동산 전문가가 되었다. 그 분 덕에 모임 안의 5명의 비혼 여교사들이 집을 샀고 그것이 그들의 큰 자산이 되었다는 것은 웃픈 아이러니이다. 그 분 연배의 세명의 선배는 명퇴를 했거나 명퇴를 앞두고 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과 영어 원서를 읽는 다른 공부 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 분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영문을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인데, 그 분도 정년까지 일하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그분들을 제외한 7명은 모두 40대 중반~30대 후반인데(그간 전교조 인기 추락으로 인해 새로운 멤버가 오지 않았다.) 모두 열심히 교감 승진 혹은 과목 변경 길을 모색 중이다. 왜 그럴까?



내가 생각하는 첫번째 이유는 2015년 공무원 연금법 개악이다. 공무원 연금법은 2차례 개선이 아닌 개악되었는데, 그때 우울증이 너무 심해 덮어놓고 지나와서 지금 들여다보니, 원래 받던 연금의 1/3이 날아갔고 받는 시기 또한 늦춰져, 내가 조기 은퇴하거나 심지어 62세인 정년을 채워도 65세까지는 연금을 받지 못한다. 이 연금법에 의하면 내가 정년을 다 채우고 3년이 지난 2048년즈음에 2백만원 정도를 받는다. 물가반영도 되지 않는데 심지어 지금보다 1백만원이 삭감된 것이다. 지금 명예퇴직하는 50대 후반 선생님들은 올해 퇴직하면 평생 매달 3백만원씩 받는데, 나는 20년뒤 2백만원을 받는다. 우리 모임 선배들을 존경하지만 위화감과 억울함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684433.html) 이런 환경속에서 내 나이대 혹은 저경력 교사들은, 특히 비혼일 때, 노후를 위해 어떻게든 정년을 채워야 하는데 그나마 교직 말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교감/교장이 되는 것이다. 한 교사에 의하면, 승진계산법에 따라 계산할 때 교장을 할 수 있는 해수가 7년정도 되어야 승진을 위한 노력이 가성비가 있다고 한다. 승진을 하기 위한 그 개고생을 했는데 교장을 할 수 있는 해수가 적으면 말짱 황이라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교직노동환경의 질적 저하이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내가 존경하는 두 선생님을 인터뷰하여 글을 쓴 적이 있다.(https://alook.so/posts/PvteGBz?utm_source=user-share_QPtKza)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단언컨대 교사의 노동환경은 확실히 더 나빠졌다. 교권침해는 부지기수인데, 돌봄 노동의 강도는 세지고 그에 대한 합당한 대우는 없다. 담임 수당은 수년 간 매달 13만원에 머물러 있다. 각종 행정노동의 강도 또한 세졌다. 지금 같은 학기말에 근무하다 보면 내가 교사인지 행정노동가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당장 다음주에 있을 국제교류 행사를 위해 하루 종일 물건 사고, 식사비 결재 올리고, 협의장 꾸미는 일(동시에 성적 처리와 담임 출결처리도 하고 있다)에 매달리다 보면 수업 준비할 시간은 없고 수업하다가 잘 안 풀리면 학생들에게 화만 낸다. 19년전 수업을 잘하고 싶었던 신규교사의 꿈은 이렇게 바람 빠진 풍선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직을 못 놓는 이유가 뭘까. 참고로 나는 위의 L선생님이 점지해주신 재건축 아파트가 있어 연금이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는 있다. (7년전 애인에게 차이고 울고 있는 나에게 L선생님은 ‘으이그 바보야, 너는 그러다가 도시빈민 소녀가장이 되겠지’ 하고 내 등을 떠밀어 3일만에 아파트를 사게 했다.) 어제 미국 일류대학에 전액장학금으로 합격해 학부-석사-박사까지 돈 받아가며 공부할 수 있게 된 제자가 찾아왔다. 그렇게 만든 게 나 때문이란다. 나는 그 당시 중3 아이들에게 미국 가라고 부추긴 것 밖에 없는데. 여기 말고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 밖에 없는데. 영어도, 성적도 대단하지 않았던 그 아이는 나의 말을 동아줄처럼 잡고 큰 결심을 하고 도전과 도전을 거듭하여 자신의 길을 일구어 냈다. 이런 소소한 보람으로 앞으로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지 앞이 안보이지만, 일단 어떤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또 다음 준비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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