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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Aug 04. 2023

페미니스트 교사의 교육부 양성평등교육 연수 참여기

학생으로부터 성폭력(교권침해) 후 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겨우 우울증에서 나오게 되었고, 몇 년 전부터 해오던 페미니즘 공부를 좀 더 양지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욕구가 올라왔다. 학교현장에는 분명 성평등 교육이 필요해 보였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2017년 온라인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리부트 운동이 일어나자, 남성들의 백래쉬가 심해졌고 학교에서는 학생간 말하지 않더라도 분명한 갈등이 있어왔으며 교사들도 피부로 느꼈다. 또한 내가 당했던 것처럼 남학생이 저지르는 여교사에 대한 성폭력도 여전하며, 남성 관리자로부터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나는 2019년부터 온라인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다가, 내 수업에서도 성평등을 가르치는 결심을 했다. 참고로 나는 영어과 교사이다. 

 

2019년부터 영어 수업에 성평등 수업을 계기 교육처럼 가르쳐왔다. 2021년에 한 수업 내용 중 하나가 “Where are all the women?” 이라는 활동인데, 시사 잡지를 조별로 나누어주고 사진에 나온 남자와 여자의 수를 세어보는 것이다. 정치, 경제인이 주로 나오는 시사잡지의 특성상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9:1정도 된다. 학생들에게 정치, 경제계에 활동하는 여성의 숫자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토론하는 활동을 했다. 그 이후 나는 남학생들에게 ‘메갈’이라고 불리며 온라인 상에서 마녀사냥을 당했다. 그 학교에는 페이스북에 온라인 익명 게시판이 있었는데 나에게 ‘불평등’을 조장하는 선생님이라는 게시물이 연일 올라왔다. 그 즈음에 담임 학급 학생이 학교폭력 피해자로 따돌림 당하는 사건이 있어, 중재하였는데 가해자편 남학생들이 내 페이스북의 여성주의 글을 염탐하고는 이 게시물이 일파만파 되었다. 가해자 학부모가 내게 “선생님이 워마드라는 사이트 회원이라는데, 그런 폭력적인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이 말이 되나요?”라고 하며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이런 위협을 느끼며 성평등 수업을 근근히 해오고 있다가, 학교 내에서 나와 뜻이 맞는 교사들을 모아서 올해부터 교육청사업인 ‘성인식 개선 교사동아리’에 공모하여 동아리를 운영하여 어떻게 학교 수업과 직장내 성평등을 이룰 것인지 같이 고민하였고, 지역 전교조의 여성위원회에 가입하여 같이 공부하고 있다. 그러다가 좀 더 큰 판에서 하는 성평등 연수는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7월에 교육부와 세종시 교육청이 주관하는 ‘2023년 양성평등교육 현장지원단 양성 직무연수’ 공문을 보고 연수를 신청하게 되었다. 내가 신청한 이유는 일단 교육부에서 주최하고 전국단위 연수이므로 지역보다 더 높은 양질의 수업 연구가 이루어 질것이라 예상했고, 4박 5일이나 하는 연수기간을 봐서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7월 24일 첫째날

오후 2시부터 첫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1시간 반동안 공주교대 사회교육과 교수의 강의였다. 기조 강의이니 만큼 이 연수의 기틀을 잡는 중요한 강의라고 생각되는데, 너무 개념적이고 학교 현장과 동떨어진 개념적인 (즉슨, 하나마나한) 이야기들로 구성이 되어 의구심이 들었다. 한 페미니스트 교사(나중에 주요 인물로 등장함)분이 서구권에서 가져온 gender equality라는 개념의 번역이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소수자를 포함한 포괄개념인 ‘성평등’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교육부와 교육청관계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사실은 질문자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대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두번째 강의는 한 양성평등 시범학교(중학교)의 사례발표였는데, 앞의, 또 뒤의 하나마나한 교수 강의에 비해 시간이 짧고(1시간) 그마저도 앞뒤 강연자의 시간에 밀린 것이 화가 났다. 더 현장의 사례를 듣고 싶은데, 쫓기듯이 강의가 끝나고 세번째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이라는 곳의 연구원의 디지털시대의 청소년의 삶이라는 주제의 강의 였는데, 첫번째 강의보다 더욱 현장과 관련없는 내용이었다. 또 내가 화가 난 이유는 앞의 슬라이드에서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얘기하다가 다음 슬라이드에서 유머짤로 다음 이미지를 공유한 것인데,


‘음란물은 생활의 활력소’라는 학생의 낙서를 차용한 것이 앞의 맥락과 전혀 맞지 않고, 디지털 성폭력 문제가 아직 해결 안된 사회에서 유머로서 이 것을 소비하는 것이 옳은지 묻고 싶었지만 질의응답시간이 없어서 지나가 버렸다. 저녁 시간에는 퍼실리테이터 분의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있었는데 여선생님에게 ‘담배피세요?’ 라는 말을 유머로 쓴다든지, ‘찜질방에 가서 아줌마들이 남편 흉을 그렇게 본다’ 라는 말을 유머로 쓴다든지, 내가 양성평등 연수에서 들을거라고 예상하지 않은 말들을 쓰는 것을 보고 쎄함을 느꼈지만, 내일은 괜찮아 지겠지 하고 참아보았다.

 

7월 25일 둘째날

현장 교사들이 주로 강의를 한다고 해서 상당히 기대를 한 날인데, 오전 강의는 내내 메타버스(ZEP)을 구현하는 기술적인 내용을 배웠다. 메타버스가 평소 궁금하긴 했는데, 만들기에 꽤 시간이 많이 들어, 안그래도 행정잡무에 치여서 수업연 구할 시간이 없는데, 상당히 가성비가 떨어지는 중노동이라고 생각했다. 오후부터 5명의 메인 강사들이 메타버스 프로그램으로 성교육 하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가장 의아했던 점은 그 프로그램을 연수에 참여하는 교사들이 관리자(admin)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이 프로그램을 듣는 의미가 무엇인가? 듣다가 참지못하고 한 강사분(초등학교 보건교사분)에게 내일은 현장(수업)에서 쓸 수 수업 방법을 가르쳐 주냐고 물어봤더니 내일은 현장 수업 기법을 가르치니 기대하라고 한다. 


이 와중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영어라디오방송사 피디분이 내게 연락을 해서 서이초 사건과 관련하여 교권침해에 관해 영어로 인터뷰를 라디오 방송에서 해줄 수 있냐고 부탁을 했다.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첫째날 강의에서 질문했던 페미선생님과 다른 페미선생님(두분은 전교조 지역 여성위 출신이었다.)을 섭외해서 같이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보며 연수에 대한 답답함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 인터뷰 대답 적어가는 토론한 것이 연수 중 가장 뜻깊은 순간이었다. 

 

7월 26일 수요일

아침 8시에서 지역 영어라디오방송 인터뷰를 마쳤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어서 '입이 트이는 페미'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가장 기대했던 현장교사들의 실제 수업 사례를 나누는 3번째 날의 강의는 내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첫번째 강사는 연극수업을 활용한 성교육을 강의했는데, 여남 학생들이 사춘기 이후 서로 몸을 만지는 것에 대해 민감함에 대한 인지가 떨어지는 활동을 하였다. 등을 박박 긁으며 노는 활동이었는데 사춘기 여학생들이 브래지어에 손이 닿는 것을 민감해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 했다. 제일 아연실색 한 강의는 두번째 강의였는데, 남자 보건교사가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수업하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중매에 30번 실패하여, 러시아에 가서 여자를 구해올 생각까지 했다.’라는 말을 하였다. 성평등 수업을 배우러 세종까지 올라가서 들을 소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내가 참지 못하고 “'매매혼 이라고 불리는 사회현상에 많은 여성인권 침해 사건이 연관되어있는데 이것을 이 성평등 연수장에서 유머로 소비하는 것이 불편하다'”라고 지적하니 바로 사과했다. 그랬더니 내 앞에 계시는 50대 여자선생님이 나지막히 ‘무슨 말을 못하겠네…’라고 읊조린다. 세번째 강의에서 보건교사인 강사가 관리자(교장, 교감)이 평교사에게 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례를 이야기 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소통’이라고 하면서 남자 연예인 1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 노래를 튼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연수장을 나와버렸다.


성평등 연수가 있기전에 성차별이 있어왔을 것이고 성차별, 그러니까 여성차별이라는 언급없이, 구조적인 여성 불평등에 대한 고찰 없이, 무슨 성평등을 가르치는지, 이렇게 표면적인 내용으로 가르치는 강의의 수준에 대단히 실망하였다. 마지막 강의도 마찬가지였는데 한가지 장점은 패들렛에 의견을 적으라고 해서 ‘학교내 성 불평등과 갈등에 대해 토론하고 고찰하는 시간조차 없는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더니 돌아오는 답변도 시원찮았으며 대다수의 연수 받는 연수생들 마저도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7월 27일 넷째날

이 즘 되니 별로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는데 또 어디 교수가 강의를 한다고 해서 들어보니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한 슬라이드에 ‘너 페미야?’ 라는 질문에 대한 대처법이라는 것을 소개했는데, 이 남자교수가 이 질문에 대해 얼마나 고찰했는지 수준이 보이는 대목이었다. 

 한번이라도 그는 이 질문에 대한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을까?


오후에는 세종수목원과 대통령기록관에 견학을 갔고 저녁에는 무려 술을 곁들인 마지막 저녁식사를 제공받았다. 4박 5일동안 호텔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견학까지 시켜주는 이 프로그램을 4일째 체험하고 나는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전시행정’이라고 느꼈다. 132명의 혼란스러운, 혹은 호기심있는 교사들을 모아놓고 ‘우린 뭐라도 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쇼라는 생각이 들었다.

 

7월 28일 다섯번째 날

마지막 강의의 강사가 무려 여성단체 출신이라 기대했으나 역시 일정 수준 이하로 깊이 못들어가지 않았다. ‘고딩엄빠’ 프로그램의 찬반토론을 하는데,(그마저도 매우 짧은 시간에 하게 함) 찬성 쪽에서 ‘국가의 출생률’ 같은 이유로 찬성하는데, 제대로 된 피임법부터 가르치는 것도 안되는 한국 사회에서, 콘돔 광고는 불허하고 피임약만 광고가능하고, 낙태하는 여성이 범죄인이 되는 나라에서, 원치않는 임신의 굴레는 여성만 지는 나라에서, 무슨 출생율 타령인지 모르겠지만 이 수준으로 토론한다. 그마저도 성평등 주제와 아무 관련없는 영화 초성 퀴즈 같은 것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5일의 연수는 끝이 났다.

 

내가 크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연수를 신청하는 선생님이 성평등 연수를 신청하게 되기까지 어떤 고충이 있었는지 토론하는 시간이 단 한 시간도 없었다는 것이다. 현장의 어려움과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강사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질문시간 자체가 거의 없었다. 이런 상명하달식 연수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현장에서는 남-여학생간, 동료교사간, 위계속 많은 성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을 들을 수 없었다. 성평등 주제가 왜 뜨거운 이슈이며 왜 132명이나 신청하셨는지, 깊이있는 고민을 하였는지 모르겠다. 성평등 연수가 있기 전에 구조적인 성차별이 있어왔고 2017년 강남역 사건 이후 많은 여성들이 이에 대해 이슈화 하자 남성들의 백래시가 이어졌으며 이것이 표면적으로 성갈등을 빚는 이유이다. 이런 성차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표면적인 차원의 연수를 5일이나 한 것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돌아오는 길에 분노의 강의평가서를 제출하고 전교조 여성위 선생님께 하소연하니, 원래 이 연수가 이렇지 않았는데, 현정부의 페미니즘 백래쉬 기조 아래 여성주의 강사들이 사전검열 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것이 참이든 거짓이든, 윤석열 정부 아래 교육부의 양성평등교육 기조를 잘 보여주는 연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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