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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Aug 10. 2023

대구 퀴어 퍼레이드와 유의미한 순간들

여자친구 덕분에 대구 퀴어 퍼레이드에 올해 처음 참가하게 되었다. 유의미하게 좋았다. 한 뼘 정도 되는 길거리 안에서 퀴어들이 밀도 있게 모여서 손잡고 포옹하고 춤추고 뽀뽀한다. 이렇게 퀴어들이 밀집한 것을 처음 보았다. 마치 선진국의 도시에 가면 길거리에 장애인들이 많아 '이 나라엔 유독 장애인이 많구나' 라고 오해할 때 처럼 생경한 감각이다.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는 짧은 동성로 거리를 세 시간 동안 스무번 정도 왔다갔다 하는 동안 두 번 울었는데 첫번째는 보라색으로 염색한 나이든 레즈비언 언니와 같이 길거리에서 춤췄을 때이고, 두번째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비비안 님과 프리허그 할 때 였다. 보라색 머리의 언니는 얼굴에 기쁨만이 가득했다. 처음보는 나이든 레즈비언의 표정이었는데,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비비안님은 영화에서 보다가 직접보니 반가웠고, 또 그렇게 아무나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모습이 뭉클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우리나라에서 유독 성공한 커뮤니티 같은데, 혐오세력(반동성애주의자)들도 부모라는 말에는 애틋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5시에 시작하는 퍼레이드도 참가하고 싶었는데 아내가 그 전에 예약해 놓은 뮤지컬이있어서 3시반즘 빠져나왔다. 대략 부산까지 2시간 즘 걸릴 걸로 예상하고 고속도로를 달렸는데 청도에서 막히기 시작하였다. 5시 반에 겨우 톨게이트를 빠져나왔는데, 6시까지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 해 보였다. 또 엎친데 덮친격으로 마지막에 잘못된 도로를 탔다.  5시 55분이었다. 순간 이성을 잃고 차 안에서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겨우 6시 15분에 도착하여 기다린 후 들어가긴 했는데, 1부 내내 공연은 눈에 안들어오고 마음이 힘들었다. 가끔 그런 이성 잃은 행동을 여자친구 앞에서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마다 마음이 엄청 혼란스럽다. 나의 부모와 같은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절망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마음을 가다듬으니, 내가 왜 정신을 잃었는지 보였다. 여자 친구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할 때 비슷한 패턴이 있는데, 항상 시간에 쫓긴다는 것이다. 시간에 쫓길 때 나는 굉장히 예민해진다. 특히 시간에 못 맞추면 이성을 잃고 패닉 상태에 빠지는데, 직장에서는 주로 공황이 오고, 여자친구 앞에서는 화를 낸다. 


더 깊이 들여다보니 아빠가 보였다. 큰아버지 집에 가는 날이었다. 엄마는 늘 그렇듯이 그 날도 아팠는데, 아빠가 현관에서 준비하고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힘없이 머리를 대충 슥슥 빗고 대충 입고 나가려고 했다. 그때 싸움이 시작됐다. 아빠가 '왜 늦냐?, 나를 무시하냐?' 같은 시비로 시작된 것이 나중에 폭력으로 번졌다. 아빠는 엄마의 머리를 쥐고 벽에 박고 엄마가 마룻바닥에 쓰러지자 발로 배를 걷어찼다. 쓰러진 사람을 사정없이 발로 밟고 있었다. 엄마가 아빠의 바짓 가랑이를 잡고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6살 즘 이었던 것 같다.


뮤지컬의 1부와 2부 중간 인터미션 시간 15분 동안 아내에게 이것을 울면서 이야기 했다. 시간에 쫓길 때 나는 매우 예민해 질 수 있으니, 나를 이해해 달라고. 시간에 쫓겨서 제 시간에 준비되지 않으면 죽도록 맞을 수도 있다는 걸 눈 앞에서 봤다고.  


여자친구가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여보, 아버지 한번 패러 가자. 아버지 병들어서 치매 걸리면 방에 가둬 놓고 누워 있을 때 패자. xx이(아내의 남동생, 양아치)가 그런 걸 잘해. 걔 시켜서 방에 가둬 놓고 때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반즘 죽여 놓을 수 있어" 


그때였다. 개인 심리 상담 100회기 즘 했을 때 일어날 법한 힐링 체험이 일어났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는 마음이 매우 개운하고 산뜻해졌다. 아, 내가 찾던 것이 이거였구나. 내가 그토록 찾아 헤멘 트라우마 치료방법이 아빠를 쥐도새도 모르게 반즘 죽여놓을 정도로 패는 거였구나. 아 이렇게 간단한 거였구나.

여자친구와 평생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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