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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May 26. 2022

내가 애증하는 나의 성격

ENFP로 교직에서 살아남기

사주를 취미로 보는 친구가 나의 사주를 보고 한 말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것이다. ‘교사치고 너무 안 보수적인데?’ 맞다. 나는 교사치고 너무 E-외향적이고 N-직관적이고 F-감정적이고 P-즉흥적이다. 대학교 2학년때 심리학 개론을 들었을 때 나 빼고 영어교육과 동기들 모두가 나와 정 반대인 ISTJ여서 놀랐다. 교사로 근무한지 16년차인데 내가 보아왔던 대다수의 교사들은 T와 J형들이었다. 교사들은 대부분 보수적이고 꼼꼼하고 체계적이다. 원래 안 그랬던 사람들조차 오래 연차가 쌓일수록 더 그러한 성향이 되는 것 같다.




그러한 동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교생실습을 할 때부터 적성에 안 맞다고 생각하였던 직장을 올해 16년째 다니고 있다. 또 다른 친구가 나보고 어떻게 직장을 16년째 다닐 수 있냐고 물어봤다. 이 직장에도 나름 메리트가 있으니까 붙어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니다. 나의 어떤 성격적 특성이 이 직장에 맞는 것이 있으니까 오래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직장에 있으면서 나를 수렁에 빠뜨리면서도 또 살려주는 나의 성격은 드글대는 호기심과 빠른 실행력인 것 같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만 아는 사람들이 있다. 권위가 없는 부모 대신 내가 기준이 되어 살아와서 그런지 호기심이 생길 땐 그 길로 꼭 실행을 해보고 체득해야 내 것이 되고 안심이 된다. 그리하여 가보았던 나라가 22개고 3개월 이상 살았던 나라가 3개이다. 연애했던 사람들도 50명 이상은 되는 것 같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만 한다면 똥을 먹을 확률도 높아진다. 나는 남들이 굳이 가지 않은 길을 가서 개고생을 한 적이 꽤 많다.




지금 애인과 같이 살면서 나와 애인의 라이프 스타일이 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스케줄은 애인에 비해 빡빡하다. 교사연구회를 2주에 한번, 원서 스터디는 1주일에 한번, 글쓰기 모임은 2주에 한번, 배드민턴 모임도 1주일에 한번, 심리상담 2주일에 한번, 그 외 잡다한 비정기 모임들이 5개 이상이고 그런 것들도 포함하면 일주일에 온전히 쉬는 날이 하루도 없다. 그런데다가 매년 방학때마다 역마살의 저주로 해외를 가야한다. 한마디로 내 삶은 애인의 삶에 비해 시끄럽고 정신이 없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오랜 심리상담의 여파로 나를 또 ‘고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주 글쓰기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성격이다. 나는 정신없이 뭔가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좋아해야 한다. 사실 이미 좋아하는 것 같다. 증거는 이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의향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쓰고 싶었던 이유도 이 성격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살면 뭐가 좋냐고? 먼저,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하게 된다. 내 호기심이 불러일으킨 참사도 지나고 보면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위안이다. 학생들에게 내 실패담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에게 나는 선구자로서 선례를 남기기도 하지만 똥 밭에 먼저 들어가 똥칠갑을 하면서 반면교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최소한, 교훈은 남긴다는 말이다. 둘째, 다양한 사람들과 잘 지내게 된다. 교사로 지내다 보면 하루에도 수백명의 사람을 만나며 그 인간군상들 사이에서 파도를 탈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 중 가장 나를 열 받게 하는 아이들은 바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가진 아이들이다. 똑똑하지만 어른들을 무조건 싫어하고 의심하고 보는 아이들!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경험들은 다양한 아이들을 인정하고 넓게 바라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가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변화가 교육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난 3년간 우리 학교 현장은 숨가쁘게 변화했다. 새로운 시도와 공부 속에서 세상과 나 사이의 속도를 줄여보려고 노력했고 아직은 간신히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쓰고 나니 거창한 것 같지만 나는 쉴 줄 모르는 평범한 한국인이다. 동거인이 생기고 나니 집에서 그와 편안하게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결론은 역시 중용이다. 가만히 천천히 꼼꼼하게. 이 것이 내가 중용의 덕을 쌓기 위한 주문이다. 내가 기안한 공문의 숫자는 오늘도 틀렸고 부장샘은 오늘도 나 때문에 열받았지만, 나는 또 살아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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