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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May 26. 2022

유랑과 정착 사이에서

나는 애인을 만나기 전 온 지구를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바다가 있는 도시에 나고 자라서 바다가 있는 곳을 좋아했다. 유럽에 살 때는 영도가 생각나던 포르투에서 향수병에 걸리기도 하고 LA에 살 때는 베니스 비치에서 벌거숭이들과 파도에 부딪혀서 빛나는 웃음을 가진 친구들을 감상했다. 뭐니뭐니 해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곳은 열대 지방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시파단에서 다이빙,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스노클링, 태국의 코팡안에서 밤새 레이빙. 기후가 맞으면 해변의 모레를 덮고 잤다. 요세미티에서는 별을 보기위해 노숙했다. 싱가폴의 짭조름한 락사누들과 카야토스트, 티후아나에서 먹은 튀긴 타코들, 인도네시아의 른당은 어떠한가. 길 위에서 마주한 위험한 일도 많았다. 내가 머문 기간에 내전이 생긴 네팔을 탈출하면서 겪은 일, 마추피추에서 지독한 고산병에 걸린 일, 필리핀에서 다이빙하던 버디 한 명이 휩쓸려가서 저녁에 겨우 구조한 일. 런던에서 처음으로 공황발작을 겪은 일. 그 모든 일을 겪고도 나의 역마살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3개월살이 후, 마지막 떠돌이 생활을 하기 위해 3년전 지금 근무하는 특목고에 전략적으로 지원했다. 목표지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에서 2년 해외근무를 하기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동안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가 터진 직후 이민경 작가를 만났다. 그가 했던 ‘몸에서 뻗어내는 글쓰기’수업에서 페미니스트 레즈비언들을 만났다. 비혼주의 작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집을 내어주고 2주일에 한번씩 친구들과 합숙했다. 1년을 그렇게 살고 내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원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하고 교류하는 생활을 30대 내내 해왔다. 30대의 끝자락이 되자 좀 더 작은 원에서 내밀하게 소통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는 동안 애인을 만났다.




애인을 만나 처음으로 나도 가정을 꾸리는 것을 욕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인과 살을 맞대고 침대에 누워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는 시간은 나를 급속충전 시켜주어 내일이면 멀쩡한 사람이 되게 한다. 애인의 가족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아한다. 애인의 부모님이 입양한 동생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그런 분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설날을 계기로 나도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애인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내 삶에 들어온다. 6개월안에 각자 친구와 동료들에게 커밍아웃했다. 나의 엄마도 애인을 만나고 좋아한다. 두 세계는 이렇게 합쳐진다. 1년이 채 안되어 우리는 합칠 집을 알아보았다. 집은 여자의 욕망을 함축하고 있어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합의하는 것을 배웠다. 2년은 도심의 새 집에서, 또다른 2년은 바다가 보이는 해변 마을에서 살기로 했다. 함께하는 미래를 꿈꾼다.




같이 살면서도 나는 또 혼자 훌쩍 떠날지도 모른다. 아니면 애인이 나와 함께 세계를 여행할 수도 있다. 레즈비언 결혼식을 성대하게 올려 부산시교육청 최초로 결혼휴가와 상조회비를 받는 레즈비언 교사가 될 수도 있다. 레즈비언 커플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거리를 나갈지도 모른다. 또 아니면 애인의 모부님처럼 아이를 입양하거나, 사유리처럼 정자기증으로 임신을 하여 아이를 기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두명의 파트너십으로 내 삶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로 인해 나는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마냥 유랑하는 삶이 아니라 지금 내 밑에 있는 땅에 발을 단단히 딛는 삶을 살아 보기로 한다. 그동안 정착이 왜 그렇게 두려웠는가 생각해본다. 유랑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회피로가 아니었을까. 현실을 지긋이 직시해본다. 옆에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두렵지 않다. 현실이 어떠한 모양이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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