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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May 26. 2022

한호흡 두호흡


위 사진은 내가 3살 때 아빠가 당시에 하던 ‘단전호흡’을 따라하는 것을 찍은 것이다. 누가 찍어줬을까? 아마 내가 자주 저 포즈를 취하니 엄마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너 잘하는 거 해봐라’ 해서 쑥스러워하며 가부좌를 틀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저 무렵 아빠는 단전호흡이라는 명상법에 푹 빠져있어서 집에 돌아오면 30분, 1시간 동안 저렇게 명상을 하곤 했다. 그때 아빠가 얼마나 진지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집안에 돌아다니는 ‘도인되는 법’, ‘공중 부양하는 법’에 관한 책들이 아빠가 그때 꽤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여간 아빠는 저 무렵에만 바짝 명상하더니 이후 정신적 문제는 다시 술로 해결했다.




이제부터는 내 이야기다. 그 때 아빠와 비슷한 나이에 명상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시달리면서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 종교, 영성의 힘에 기대어 보고자 한 때가 있었다. 잠깐이나마 열심히 단전호흡을 하던 아빠, 절에 다녔던 외할머니와 엄마 때문에 영성에 관한 것은 동양적인 것이 더 익숙했다. 힘겹게 문을 열고 들어가보았던 교회와 성당은 영 어색했다. 그렇게 불교, 원불교, 사이비 종교에 발을 들이게 된다. 법륜 스님이 운영하는 정토회의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을 수련하고 불교대학을 수료했다. 또, 원불교 교사 집단상담회에 들어가서 3년 넘게 매주 수요일 저녁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거기에 모자라서 사이비 종교 집단인 ‘마음 수련’에 들어가 계룡산에서 두번째 코스까지 체험했다. 그 중 가장 돈과 에너지를 많이 쏟은 것은 사이비 종교 단체인 ‘사실 학교’이다. 사실학교는 경남 양산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작은 영성 공동체인데, 위의 ‘깨달음의 장’에서 만난 ‘물고기’라는 친구가 소개해준 곳이었다. ‘그 곳에 가면 걱정과 고민들이 해결된대’. 우울증의 가장 밑바닥에서 나는 친구의 말을 덥석 잡고 양산의 한 마을에 갔고, 그 후 매주 거기서 생활하게 된다. 내 나이 또래 ‘청년부’가 주축이었던 그 공동체에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2014년 12월 31일을 밤을 꼬박 새고 2015년 1월 1일 통도사에서 함께 108배를 하며 맞이 하던 새해의 시린 새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거기서 함께하는 명상에 대한 맛을 알게 되었다. 이후 시덥잖은 연애사에 휘말려 사실학교를 관두기 전까지 나는 공동체 생활안에서 같이 명상하며 영성이 흘러넘치는 삶을 꿈꿨다.




여러가지 영성 공동체 생활에 신물이 날 때 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명상앱 ‘마(음)보(기)’를 다운 받아 셀프 명상을 체험했다. 짧게 3분씩, 10분씩 혼자 앉아 명상했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명상에 빠지게 된 것은 Y언니때문이다. 요가 강사이던 언니가 내게 한 스님의 100일 명상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었다. 매주 토요일엔 명상의 기초를 배우고 나머지 요일엔 명상을 자습했다. 그렇게 호흡 명상에 눈을 조금씩 떠가기 시작했다.




몇 년의 시간과 수천만원을 쓰고 터득한 호흡명상의 원리는 정말로 간단하다. 의자나 바닥이나 아무데나 정자세로 앉는다. 눈을 감는다. 코끝에 문지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들숨과 날숨을 지켜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동물원의 원숭이 쇼라고 생각하고 지켜본다. 생각이 나면 그저 지켜볼 뿐이다. 그 생각이 내가 아님을 알아차리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저 지금 여기에 이 자리에 앉아서 숨을 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현존’하게 되고, 명상은 ‘현존’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부처님이 이 사실을 2천년도 훨씬 전에 터득하여 후대에 전승했는데 그 중 어떤 데는 돈을 높게 매겨 팔고, 어떤 곳은 이 것으로 사람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그저 호흡을 지켜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간단하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깨달음에 도달하게 만드는 부처는 인류의 성인이 되었다.




올해 초 격무와 부장의 잔소리에 시달릴 때 퇴근즘 되면 머리가 늘 미세먼지 낀듯 뿌옇고 아팠다. 오랜만에 유투브의 3분 호흡명상을 켜고 호흡하니 마치 신선한 산소통으로 다시 호흡하는 듯 머리가 개이고 두통이 가시는 경험을 했다. 위급할 때 쓸 수 있는 하나의 카드를 손에 쥐게 된 것 같다. 몇 년의 시간과 돈이 헛수고는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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