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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수 May 28. 2022

레즈비언이 되고나서 보는 여자의 몸

중성적인 소녀에서 요부로 다시 탈코르셋으로...어느 몸에 정착하게 될까?

헤테로였을때 주로 ‘보여지는’ 몸 신분이었다가 레즈비언이 되니 주로 ‘보는’ 몸 신분이 되었다.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나는 ‘탈코르셋’이라는 과정을 한번 겪었다. 더 이상 전시할 것이 없는 몸이 되었는데, 그 이후 만난 아내는 여전히 내 몸이 ‘보여지는 몸’이 되길 원한다. 나는 어떤 몸에 정착하게 될까.




유치원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쭉 어수룩하고 중성적으로 보이고 싶었다. 가슴이 싫었다. 깡마른 소년같이 보이고 싶었다. 깡마르진 않았지만 그런 스타일링 때문에 고등학교때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여고에서 인기를 얻는 전략 중 하나다. 그러다가 대학교에서 와서 헤테로 섹슈얼 문화에 쓰나미처럼 휩쓸려 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우리를 지배하던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처럼 시끄럽고 과감한 옷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것 또한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나는 클리비지가 깊게 파인 딱 붙는 상의에 푸시업 브라를 하고 허벅지가 드러나는 스커트를 입고 토요일에 내 몸을 술집과 클럽에 전시했다. 주체적 섹시함이 그 전략의 이름이었다. 주체적으로 섹시하게 보여서 내가 상대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과는 그 반대였다. 나의 몸은 번번히 비웃음당하고 평가당했다. 남자중학교 교사면서도 그렇게 입고 다님으로써 나는 스스로 내 몸을 희롱의 대상이 되게 했다. 30대 후반이 되어서 탈코르셋 전략을 만났다. 다시 소년이 되었다. 이번엔 친환경주의와 경제논리까지 덧붙여졌다. 나는 최대한 예전 옷을 돌려 입으면서도 소년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끄러운 패턴을 좋아하는 경향은 계속 남아 결국 하와이언 셔츠가 내 교복이 되었다. 아내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의 외형이 너무 마음에 안들어서 삼고초려 했다고 한다. 아내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예쁜’ 여자다. 나도 레즈비언이 되기 전에 그런 유형의 사람이 있는 지 몰랐다. 




탈코르셋을 할 때, 나는 어디까지 남자같이 보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여름엔 시원한 원피스가 좋은데 이것도 대상화되려고 하는 나의 숨은 욕망의 발현일까?’ 머리속이 시끄러웠다. 스스로 자신과 타인의 몸을 검열하는 통에 페미니스트들끼리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글쓰기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소위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 나는 아직 ‘루키즘(외모지상주의)’을 못 벗어났다고 비판받았다. 여전히 체중에 신경쓰고 외모가 매력적인 여자에게 끌린다고 고백하였기 때문이다. 레즈비언으로 정체화 하는 과정은 또 다른 안경을 쓰는 과정이었다. 스스로 글래머러스한 여자가 되려고 노력했던 헤테로 시절에서 레즈비언이 되는 과정에서 나는 다시 단단하고 마른 몸을 욕망하게 되었다. 김연경의 몸을 선망하다가 또 김서형을 좋아하다가 또 이주영의 몸을 좋아하기를 반복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아내를 만났다.     




‘여보는 어깨에서부터 가슴까지 이어지는 선이 정말 예뻐.’ 아내는 내 몸을 좋아한다. 부치들에게서 절대 볼 수 없는 여자의 선이 내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부치 흉내를 내도 나는 부치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아내의 마음에 들기 위해 네번째 데이트엔 나시 원피스를 입었었는데, 그때 내게 반했다고 한다. 아내는 내가 화장을 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한다. ‘여보, 나는 그걸 졸업했어.’ 라고 말해도 아내가 예쁜 나를 원하는 것은 여전하다. 그래서 기념일에는 아내를 위해 화장하고 힐을 신는다. 




반면, 아내는 내가 욕망하는 단단한 몸과 거리가 멀다. 풍만한 뮐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몸이다.  내가 좋아하는 몸에 대해 질문을 받고 답했을 때 아내가 시무룩 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여전히 그런 몸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내의 몸도 좋아한다. 마음이 포근하고 따뜻해지는 몸이다. 아내의 몸을 맞대고 잠을 자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아내가 어떤 몸이 되라고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나는 내 몸과 친해질 수 있을까. 청소년기에 엄마는 내 몸을 늘 통통하다고 비하했고 나도 같이 비하했다. 그 뒤엔 요부가 되려다 실패했는데, 탈코르셋 정신도 완전히 장착할 수 없었다. 단단한 복근을 가지고 싶지만 내 정신력으로는 일과 병행하여 그 몸을 만드는 것은 무리다.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상담 프로그램에 발레리나 김주원이 나와서 발레리나가 되는 것은 끊임없이 거울을 보고 몸의 못난 부분을 고쳐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나는 발레리나도 아닌데 왜 내 몸을 평생 부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떨 땐 건강이라는 개념으로 교묘히 가려 내 몸을 싫어하기도 한다. 내 몸을 언제 그대로 허용할 수 있을까. 완전한 탈코에 이르러 남성 욕망의 대상화에 완벽하게 벗어난 몸이 되었을 때 내 몸을 인정 할까. 48키로에 이두와 삼두가 발달하고 빨랫판 복근을 가진 사라 제시카 파커가 되면 내 몸을 사랑하게 될까. 아직도 그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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