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랍니다(1)
과장님, 저 맘에 안 들죠?
"언니, 이제 우리 부서로 오신다면서요?"
다음 주부터 담당업무가 바뀌면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영미와 한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마침 화장실에서 만난 영미가 아는 척을 해왔다.
"어어 영미야, 잘 부탁해. 너네 부서 뭐 어려운 거 없지?"
특별히 어려울 건 없어 보였다.
그런데 한 명,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었다.
"언니! 여과장님한테만 잘 보이면 큰 문제없을 거예요."
여적여 과장.
그녀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걸 몸소 표현해 주는 사람이었다.
자기보다 어리고 직급 낮은 여직원들에게는 그렇게 싸늘할 수가 없었다.
네가 어떻게 하는지 보겠어, 내 맘에 들게 한 번 행동해봐 라는 식이었다.
여 과장이 좀 이상하다고 처음 느낀 건 꽤 예전이었다.
그때는 우리 부서가 일이 많은 시즌이어서 옆부서에서 주말마다 근무지원을 받고 있었다.
마침 그날 근무자가 옆부서에서 근무하던 여과장이었다.
주말이라 집에서 쉬고 있는데,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나야 여적여과장. 노을 씨가 ㅇㅇ담당이지?]
잘 쉬고 있냐, 전화받을 수 있냐 라는 형식적인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본론이었다.
이건 뭐 깜빡이도 없이 냅다 들이미나 싶어서 좀 황당했다.
[내가 지금 보니까 이거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아. 오늘은 오기 어려울 테니까 다음부턴 잘해놔.]
본인 담당부서도 아닌데 굳이 주말에 전화까지 해서 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참 심보가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여과장이 내 직속상사가 된다고 생각하니
참 안 봐도 비디오일 것 같은 미래가 그려졌다.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할 건 없지만
꼭 찍어먹어보지 않아도 그 맛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지쟈스.
급피곤이 몰려왔다.
부서이동을 하고 얼마 안 되어 영미와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영미는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 열심히 핸드폰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영미, 뭐 해? 옷사려구?"
내 물음에 그녀가 대답했다.
"아, 이거 여과장님 거예요. 어젯밤에 갑자기 옷 골라 달라고 url 보내시는 거 있죠?
저번에 신발도 찾아드렸는데 이번에는 옷을 말씀하셔서 보고 있어요."
"에엥 진짜? 아니 뭐 개인 비서 고용했어?"
이런.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와 버렸다.
저런 식으로 지극히 사적인 일에 힘없는 직원들을 부려먹었다.
이렇게 '여과장 맘에 들기'라는 면접에 통과한 직원들은 예쁨을 받았지만,
저런 행동을 극혐하며 그다지 응해주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바로 광탈이었다.
여과장은 본인 마음에 합격하지 못한 직원에게는 일상적인 인사조차 잘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저런 치다꺼리를 하느니 차라리 눈밖에 나는 게 속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남자를 참 좋아했다.
같은 상황이어도 여자에겐 엄격했고 남자에겐 관대했다.
"어우, 준혁씨는 참 몸이 좋아. 그런데 하는 짓 보면 엄청 귀엽다니까. 애기야 애기, 아주."
남직원들에겐 대놓고 저런 말을 잘했다.
말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회식자리에서 한 젊은 남직원의 허벅지를 더듬은 일은 이미 유명했다.
저런 천박한 사람이 상사라니.
현타가 정면으로 덮쳐온다.
저거 남자였으면 벌써 신고 당할 일인데.
이런 걸 역차별이라고 하는 건가 싶었다.
한 번은 그녀와 함께 거래처로 출장을 나가게 됐다.
거래처 실장이 바뀌어서 인사를 가는 자리였다.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이야기하며 앉아있다가, 직원소개에 붙어있는 실장의 사진을 본 여과장이 말했다.
"어머머머, 웬일이야! 실장님 엄청 잘생기셨다아 ~"
저건 예의차원이 아니라 정말 진심에서 나오는 호들갑이었다.
"아하하, 그래요? 실장님께 말씀 전해드려야겠네요. 아하하..."
눈을 반짝이며 침을 흘리는 여과장에게 거래처 직원 한 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씀하신다.
아이고, 저 주책바가지!
옆에 있던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지만,
거래처까지 와서 저 무슨 망측한 짓인가 싶어서 너무 창피했다.
남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었던 집안의 골칫거리를 들킨 느낌이었다.
이런 여 과장을 보고 있자면 슬쩍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저건 도대체 어떻게 승진을 했을까?'라는 물음이 머리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