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때 연봉으로 치면 중간에서 살짝 높은 편이긴 했다. 주말출근도 많이하고 야근도 자주 했으니 뭐, 많이 일하고 조금 더 받았다.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 없기에 백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의 이유 겸 변명을 정리해 봤다.
거울보고 찍은 사진 아님 ㅋㅋㅋ 내마음은 호수요 아니고, 내 눈깔은 동태요-_-+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건강 때문이었다.
출근을 해서 거울을 봤는데 웬 동태 한 마리가 흐리멍텅한 눈알을 하고서는 힘없이 서 있었다. 정말 사람이 아니라 여름 햇빛에 녹아내린 동태였다. 생기도 없고 기운도 없고 열 받는다고 작작 먹어서 살은 통통했다.
동태가 초점 잃은 눈으로 도마 위에 불쌍하게 있으면 무지막지한 생선가게 할머니가 와서 지 맘대로 손질을 해버렸다. 나의 삶이 남의 손에 의해 마음대로 손질됐고 가라는 곳으로 팔려갔고 제멋대로 요리됐다. 정말 더 다니다가는 쉬어터진 동태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퇴사를 결정했다.
주인의식은 돈과 비례합니다 사장님들 !
두 번째로 이일을 나이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항상 물음표였고, 내 일이 아니라 회사의 일을 대신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남들 쉴 때 쉬고 싶고 내 사업 하기 싫어서 직장 다니는 건데 자꾸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한다.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의식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
프로그래밍이 잘 된 노예로서 시키는 일을 미친 듯이 해놓으면 돌아오는 건 정해진 월급, 불편한 술자리에서 고생했다는 공치사, 거기에 선물처럼 더 많은 업무를 준다.
마치 ‘오 너 이 정도는 버티는구나’하면서 한계테스트 하듯이 말이다. 물론 이런 게 쌓여서 승진을 하면 업그레이드 노예가 될 텐데.. 윗분들 하는걸 보니 승진하면 더 힘들 것 같았다. 상사분들도 정말 힘들어 보였고 나이 먹어서 까지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어느 순간 그냥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슬펐다. 내 시간, 에너지, 업무능력 등 내게 주어진 소중한 자원들을 들여서 이룬 것이 정해진 월급, 책임만 막중한 승진이 아니라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면 좋겠다라는 욕구가 강해졌다.
미래는 인공지능의 시대니까, 나도 인공지능!(인공지능을 이용해야지 왜 내가 인공지능이 되어가고 있냐-_-ㅋ)
세 번째로 회사의 문화가 나와 맞지 않았고 사람스트레스가 정말 컸다.
문화차이라는 것이 어디 아프리카 부족들 만나서 언어가 다르고 인종이 다른 나라에서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걸 회사에 와서 알게 됐다. 같은 한국 땅에서 한국말을 쓰고 산 게 맞나 싶게 굳건한 문화의 장벽을 느꼈다.
회사가 정년이 보장되다 보니 오래 다니신 분들도 많고 조직문화 자체가 보수적이고 수적적이었다.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은 잘 반영이 되지 않았고 자율성도 별루 존중받지 못했다. 회사에선 하다못해 점심 메뉴도 내 맘대로 못 정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AI요 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또한 성과주의나 경쟁은 물론 사람들 사이에서 눈치게임, 정치질이 너무 힘들었다. 나는 술 먹고 하는 눈치게임도 싫어하고 잘 못하는 인간인데 출근하는 순간부터 게임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했고 나는 그 속에서 외줄타는 광대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줄타기 무형문화재로 지정해도 될 정도로 얄밉게 잘 다녔지만 난 이런 게임에 전혀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이 싫어졌고 누가 나를 부르는 게 너무 싫었다. 좋은 일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50번에 1번 정도는 먹을 거 주는 거고 나머진 다 골치 아픈 일시키는 거였다.
회사가기 싫다고하면 엄마가 밭이나 매라고 했는데 ㅋㅋ 진짜 그렇게 됐다 (안쫓겨나려고 열씸)
네 번째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 항상 불안했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인데 정년까지 다닐 생각을 하니 어디로 증발해버리고 싶었다. 남들은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나는 항상 불안하고 불행했다. 회사에선 어떤 업무가 주어질지 알 수 없고 이거해라 저거해라 내 의견과는 상관없이 내려지는 오더들을 수행해야하며 인사발령도 내 통제 밖의 영역이었다. 인사이동이 있을 땐 거의 우시장의 소가 된 느낌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들어왔는데 항상 불안했으니 정말 아이러니였다.
출근 전날에 내일이 오는 게 죽고 싶을 만큼 너무 싫은 건 직장인이면 많이 느껴봤을 것 같다. 쌓아놓은 일 생각, 보기 싫은 사람생각 이런 것들이 쉬는 날에도, 잘 때도 머릿속에 항상 둥둥 떠다녔다. 쉬는 날만 기다리며 나에게 주어진 정말 소중한 자원인 ‘시간’이 빨리가기를 거의 성직자급으로 기도하고 있는 내 모습을 좀 바꾸고 싶었다.
정말 근본적인 고민을 계속했다. 일이 나와 맞는지,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에 대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30대니까 사표내도 한 번 잡는 거지 4,50대 되면 저거 사표안내나 하고 더 일 던져주고 더 못살게 굴 것 같았다. 회사에 휘둘리면서 회사만 믿고 한달한달 월급노예로 사는 삶을 벗어나서 더 나이 먹기 전에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스스로 먹고사는 법을 터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하기까지 정말 너무 힘들었지만 내 발로 나갈 수 있는 것도 너무 행복한 일이었다. 그만두고 싶어도 돈 때문에 나이 때문에 남들 시선 때문에 두렵고 막막한 마음 때문에 못 그만 두는 사람들이 많다. 걱정이 아예 안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마음에 없는 일을 하며 마음에 없는 사람들과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돼서 행복했다. 그 무엇도 아닌 정말 나를 위해 살아보고 싶다. 항상 해야 할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며 놀듯이 즐겁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었던 닉네임 ‘놀마드’의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