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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lnoc May 20. 2018

정의라는 판타지, <비밀의 숲>

감동코드 없이 감동적인 추리 수사 드라마

비밀의 숲 (2017)
감독/작가: 안길호/이수연
출연: 조승우, 배두나, 이준혁, 신혜선, 이재명 등

배두나, 조승우 배우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게 본 한국드라마. 이 전까지 나의 인생드라마는 '나인'이었는데 이제 비밀의 숲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건조하지만 촘촘한 이야기도, 배우의 흡입력도, 대사 하나하나 그렇게 찰 질 수가 없다. 일주일만에 정주행 완료하였는데 아직도 참 여운이 가시질 않고 먹먹하고 그렇다. 드라마보고 이런 감정을 느끼긴 또 처음이라 리뷰를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불분명한 선인과 악인, 그리고 반복되는 악

tvN 네이버 포스트 / 비밀의 숲 스틸컷

보통 드라마에서는 정의를 수호하고, 불의는 참지 못하는 절대 선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표한 바를 이루고마는 절대 악이 존재한다. 그리고 보통은 이 선과 악이 정면 충돌하고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갈등은 격해져 결국 폭발하고 마는 이야기의 형태를 취한다. 비밀의 숲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선과 악은 분명하지 않다. 모두가 악이 될 만한 강력한 동기가 될 만한 사연을 가지고 있고 그 것은 어떻게든 사건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이 이 드라마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 세상에 '완전 착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완전 나쁜 사람'도 없을것 같다.(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완전 착한 사람이 아닌것처럼, 누군가 어떤 사람을 '그 사람 참 좋아, 참 착한 사람이야' 라고 이야기 했는데 내가 직접 겪은 그 사람은 누구보다 약삭빠르고 의뭉스러운 사람이었던 것 처럼. 또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절대 선과 악을 믿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착한것 같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세상 겪다보면 그런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 아닐지. 그래서 비밀의 숲에 더 빠져들었고 여운이 더 길게 남는 것 같다. 억지스러운 인물과 세상이 아니라, "세상이 다 그래, 알잖아?너도 그렇잖아"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드라마는 이런 메세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창준 검사는 살인의 칼자루를 쥐었고, 검사라는 권한을 이용해 강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악인이 되어 정의와 선을 구하고자 한다. 서동재 검사는 황시목 검사를 보고, 이창준의 마지막 당부를 듣고 정의에 서겠다고 잠시 다짐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부정한 접대를 받고 자신의 명예에 목매던 경찰청장은 변호사조차 거부하며 자신의 죄를 달게 받는다. 많은 사람이 땀과 노력으로 지켜낸 한없이 약했던 김가영은 기력을 되찾자마자 안하무인으로 수사에 비협조적이다. 단편적으로 이런 점들을 보여주지만 절대 악, 절대 선은 없다. 

드라마 초반 황검사와 한경위가 차에서 한 대화가 생각난다. 한여진은 경찰이 잡은 범인이 사실은 진범이 아니었으나 자살하였고, 사실은 다른 범인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쥔다. 여진은 황시목에게 이 증거를 밝히게 되면 경찰 뿐만 아니라 사건을 수사한 검찰에게도 치명적일텐데 괜찮겠냐는 질문을 하고 시목은 여기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걸 (증거를) 살리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거는 지금 당장의 상황이 아닙니다.
한여진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가. 거기 달렸죠.


이말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나의 성품, 성향은 매 순간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져 간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들에 의해 벌어지는 상황과 감내해야 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주변 상황들이 나에게 얼마만큼의 불편함을 주는지, 혹은 성취감을 주는지에 대한 경험이 그 이후의 선택들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선을 선택하다가 악을 선택할 수 있다. 그 반대의 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 선택들로 인해 만들어진 상황과 내 느낌들이 그 다음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극중에서 이창준이 그랬고 서동재가 그랬고 영은수가 그랬다. 그리고 황시목은 그 사실을 단순한 말로 이해시킨다.

이래서 조승우, 조승우 하는구나

출처 tvN 네이버 포스트


사실 지금까지 조승우라는 배우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비밀의 숲 중반까지도 배우보다 내용자체에 더 몰입하느라 배우에 대해 특별히 드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중후반부로 갈수록 조승우라는 배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같았다. 조승우가 아니라 진짜 황시목이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감정없이 조용히 치는 대사도, 대사 없이 표정과 눈빛만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장면에도, 크게 호통치는 장면에도 어떻게 사람이 저런 에너지를 뿜어내고 감정을 잘 표현해 낼 수 있는지 정말 놀라웠다. 소름이 끼쳐서 여러번 돌려본 장면도 여러개. (진지한 리뷰인척 하는 본격 입덕 고백 리뷰) 


조승우의 연기를 찬양하는 사람들도, 그를 정말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여럿 봐왔지만 그저 취향이려니 했고, 그가 출연한 수 많은 영화를 보아왔음에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뒷북으로 푹 빠져버려 나도 당황스러울 따름. 비 밀의 숲에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로 나오는 만큼 신혜선, 배두나와 같은 여자 캐릭터를 정말 감정없이 이성적으로만 대하는데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부드럽게, 때론 살벌하게 되 받아치는 장면들이 참 쫄깃했다.

적극적인 한여진 경위, 영은수 검사
이 드라마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그중 눈에 띄는 이유를 꼽으라면 여자캐릭터가 살아 숨쉰다는 거다. 어쩌면 남자들의 세계일 수 있는 검찰과 경찰 사회에서 이 두 캐릭터는 매우 적극적이고 당차다. 때로는 귀찮으리만치 주변 동료들을 닥달하고 악바리처럼 매달린다. 신변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망설임 없이 사건 현장으로 뛰어든다. 수 많은 드라마에서 여전히 여자캐릭터를 민폐, 수동적, 보조적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구시대적인 시각으로 여성을 그려낸 드라마가 제대로 된 주제의식을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권신장이 많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성역할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뿌리깊히 박혀 있다. 모두의 의식전환이 필요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재고해 보아야하는 것은 물론이며 여자 스스로 의존적이고 보조적인 역할을 자처하지 않도록 보다 당당하고 책임감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어느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는 시간낭비보다 할 수 있는 작은 일 부터 고쳐나갔으면 하는 바램.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의 한여진과 영은수 언니는 배우고 싶은 점이 많은 사랑스런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살아 숨쉬는 조연 캐릭터

비밀의 숲은 조연들마저 구멍 하나 없이 정말 완벽했다. 특히 차장검사-검사장-대통령 수석비서관 역할을 한 유재명 아저씨의 연기는 반짝반짝 빛났다. 비밀의 숲 이전에는 응답하라 1988에서 동룡이 아부지, 도봉순에서 아부지로 재미있고 감초역할을 해온 것으로만 기억하고 이름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그의 수트빨과 각잡아 세운 머리 그리고 사투리에 묻어나오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찰진 대사들은 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데 한 몫 했다. 리뷰를 쓰다보니 배우가 좋아 좋았던 건지 이야기가 좋아서 좋았던 건지 불분명해질 지경이지만 이 모두의 박자가 맞아 인생드라마로 기억이 되는 것이겠지. 유재명과 더불어 특검팀 멤버들과 한조그룹일가 출연진도 마치 정말있는 인물들처럼 생생했다. 주연들만큼이나 디테일이 살아있는 조연이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 것은 아닐지.


그리고 궁금한 것들


드라마의 마지막회에 사건 이후의 이야기를 꽤나 자세하게 전해주었다. 결국에는 척결되지 않을 부정부패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월급쟁이들의 이야기. 그럼에도 아직 궁금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한여진 경위는 경찰로서의 사명감을 드러낼때면 어떤 것을 골똘히 생각하곤 했는데, 그녀가 경찰이 된 과거 사건이나 계기라던가, 시목이 병으로 인하여 인생을 살면서 겪은 일들, 영검사 부친의 재직시절 이야기 등 좀 더 설명되었으면 하는 것들이 있었다.

영어제목 stranger
우연히 알게 된 것인데 비밀의 숲의 영어 제목은 'Stranger'라고 한다. 한국 제목과는 너무 다른 의미의 제목. 사건을 파헤쳐가는 과정에서 모두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하고 낯설 정도로 다른 그들의 모습을 알게되는 과정을 의미한 것이리라 짐작해본다.


리뷰 덧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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