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야기
허스토리 (Herstory, 2018)
브런치 무비패스 #4
감독 민규동
출연 김희애, 김해숙, 예수정, 문숙 등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아주 어렸을적부터 학교에서, 그리고 TV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들어왔다. 그리고 분노했다. 그게 전부였다.
위안부 문제가 우리나라의 역사라 나의 일 같다고 느꼈지만 내가 한 행동을 돌이켜보았을 때 한 조각 뉴스거리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를 보고나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위안부'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직접 내 손으로 찾은 위안부 관련 역사와 논쟁거리들을 찬찬히 읽어볼 수 있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분노하기만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금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아니 아마 그때 당시에도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은 꽃같은 할머니들. 그리고 당시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오랜 시간 이야기 하지 못하고 혼자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그 아픔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억울함 한 번 토로하지 못하고 말도 안되는 아픔을 끌어안은 채 죽어간 그 수 많은 셀수 없이 많은 생명이 슬펐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있는게 쪽팔려서 그런다
90년대 초,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이슈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잔인하게도 그런 할머니들을 더럽고 불경하다고 여기는 사회분위기였나 보다. 영화 속에서 할머니들의 재판을 오랜 기간 도운 문정숙 (김희애)도 처음에는 그런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를 모으는 일도 등떠밀려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과 가까운 인물이 위안부 할머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사연을 점점 깊이 알게 되면서 일본 정부와의 재판에서 반드시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목표를 뚜렷이 세우게 된다.
이 영화는 위안부 보상관련 재판에서 유일하게 보상판결을 받아낸 '관부재판'을 다룬 영화이다. 관부재판은 1992년 12월 25일을 시작으로 6년간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이루어졌으며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으로부터 받은 일부 승소 판결은 1998년 4월 27일에 있었다. 애석하게도 일본 정부의 항소로 열린 히로시마 고등재판소에서 2001년 패소했으며, 2003년 대법원에서 항소를 기각하면서 패소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무척 안타까웠던 것은 전쟁의 상처가 깊은 이들에게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필요했던 자금과 인력이 민간으로부터 조달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들이 상처를 나서서 이야기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을 끝까지 도왔던 이들이 없었더라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아픔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답답하고 먹먹하다.
이 슬픈 역사의 당사자인 할머니들은 몇 분 밖에 남지 않으셨다. 할머니들이 이 역사를 세상에 알리기 이전에 아무도 위안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처럼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우리의 뜨거운 분노와 슬픔도 무뎌질지 모른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이 역사에 능동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 역사의 현재와 과거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한 이야기만으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닌 아닌 뜨겁게 타다 사그라질 분노만이 남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정확한 상황판단을 통한 논리적 주장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가슴 뜨거운 투쟁과정을 찬찬히 그려낸 이 영화가 이성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의미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명한명 꾹꾹 담아낸 개인사에 더해 재판부의 양심을 뒤흔들만한 차가운 이성적 논리가 있었기에 의미있는 승리가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영화도 말할 수 없이 잔인하지만, 그 것이 현실만큼 가혹했을까. 그 잔인한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 할머니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좀 더 현실을 잘 알아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신념을 세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개개인이 다양하고도 올바른 신념을 지켜나갈 때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나도 그런 개인이 되어야겠다. 그러기 위한 한 걸음으로 이 영화가 무척 의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