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란 자신의 힘을 긍정하는 인간이다
"아빠, 우석이네 아빠는 의사 선생님이래!"
만약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이런 얘기를 한다면, 아빠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그 날 저녁 아빠의 머릿속은 분명 어딘가 모르게 평소와는 다른 복잡 미묘한 상태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뭘 잘못한 거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썩 개운하지도 않은 느낌…….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뭔가 확실치는 않지만, 아무튼 그다지 건강한 상황이 아닐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사회 전반에 걸친 이런 식의 비교 문화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누구네 남편은 이번에 승진했다던데….’, ‘누구네 딸은 이번에 대기업에 입사했다던데….’, ‘누구네 아들은 이번에 반에서 1등 했다던데….’ 등등 주로 우리 일상에서 ‘스펙’이라 불릴만한 것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 친구 아들에게는 관심이 하나도 없지만, ‘엄친아’라는 단어를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어떤 것들을 서로 비교할 때 우리는 보통 각각의 과정보다 결과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된다. 결과가 어떻건 그 과정이 무시된다는 것은 지나온 노력의 시간을 생각하면 참으로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무인도에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인생을 살면서 ‘비교’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는 내가 남들과 나를 스스로 비교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알아서 비교해 주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든 아니든, 그 비교 자체에 의도적인 악의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말이다.
능력자 아빠의 기준은 무엇인가
비교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놓고 승패를 판가름하는 것이다. 항상 이길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누구든 남과 비교당했을 때 지고서도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아빠라면 이런 결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자신이 이뤄내는 결과에 따라 아이의 등수가 함께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아빠는 열심히 뛸 수밖에 없게 된다. 아이의 학교 운동회에서 단지 체면치레를 위해 적당히 뛰는 아빠는 없다.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아빠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리고 이기고 난 뒤에 맛보게 되는 성취감은 달콤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다음은 무엇일까? 챔피언에게 남은 것은 방어전이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점점 더 큰 성취가 필요하게 된다. 이뤄야 하는 덩어리가 커질수록 그것을 성취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반대로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패배감은 더욱 느끼기 쉬워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기준을 세우는 건 나 자신이다
한 번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보자. 지금 당신의 눈앞에 볼펜 하나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볼펜의 위치는 높은가? 아니면 낮은가? (질문에 대답을 마친 다음 넘어가기 바란다) 분명 어떠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아마 당신은 이미 볼펜의 높낮이를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기준을 제시한 것은 과연 누구인가? 필자인가? 아니면 당신 자신인가? 주어지지 않았던 기준은 처음엔 그 자체로 허상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자신의 인생 안에서 실제가 되어버리고 만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의사 아빠’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는 내용은 그저 한 직업의 명칭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만약 신경이 쓰인다면, 그것은 실체가 없는 허상의 기준에 흔들리는 것과 다름없다. 좋은 아빠는 ‘엄친아’와 같은 객관적인 스펙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집 아빠보다 좋은 스펙을 가진 아빠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단어는 ‘아빠’이고, 바로 그것만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유일한 가치이다. 인생의 가치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세우는 것은 결국 아빠라는 인생의 주인인 우리 자신이다.
내 아이에게 어제보다 더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아빠라면 누구나 좋은 아빠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이미 충분히 좋은 아빠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빠 노릇도 처음엔 누구나 어려울 수 있다. 실수도 할 수 있따. 하지만 괜찮다. 오히려 실수를 통해 더 좋은 아빠로 성장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빠로서 육아하는 것에 있어 그 목표가 무엇인지만 기억하면 된다. 아빠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줄 수 있다.
아이들은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짜 멋진 아빠라면, 우선 우리 스스로 자존감을 바로 세워야 한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그 날을 위해, 아빠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