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운 목표는 진정 나를 위한 것인가?
지난 칼럼을 통해, 우리는 똑같이 금연을 시도했지만 서로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했다. 다시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남들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가 싫어서 저도 그렇게 보일 것이 염려되었습니다.”
“흡연으로 인해 폐가 너무 아팠습니다.”
이전 칼럼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이 두 사람의 금연 성공의 여부는 서로 정반대의 결과를 보였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일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흥미롭고 놀라웠던 건 그 결과의 차이만큼이나 서로 다른 청중들의 반응이었다.
타인을 의식하여 본인의 금연 의지를 불태웠다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청중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심정을 충분히 공감한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단지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여 금연을 결심했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는 그 반응이 매우 상반적이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고 심지어는 고개를 돌려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군가 궁금하다는 듯 쳐다보기까지 했다.
필자는 순간 청중들이 보인 반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 대답을 들었을 때는 이미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 금연을 결심했던 사람만이 결국 금연에 성공했다는 결과를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필자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남들을 의식하고 그 기준에 맞추어 세운 목표에는 쉽게 긍정하면서도, 왜 자기 자신을 위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쉽게 수긍하지 못하고 오히려 폭소까지 터뜨리며 가볍게 치부해 버리고 마는 걸까?’
혹시 우리는 자신의 주체적인 시각보다 남들로부터 보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 스스로 이해하는 것보다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 생각보다는 남들이 세워놓은 기준을 지키는 것이 더 나은 소양이라고 강요받으며 자라온 것은 아닐까?
순간, 그 두 사람에게 (사실은 모두를 위해) 이런 질문이 하고 싶어 졌다.
“만약 여러분이 무인도에 살고 있었다면, 그런데도 여전히 금연을 결심했을까요?”
필자의 질문에 대한 그 두 사람의 답변이 이러했다.
“아뇨, 그렇다면 굳이 담배를 끊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네, 물론이죠.”
아마도 예상했겠지만, 굳이 무인도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설정하여 질문을 던진 이유는 바로 애초의 목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무인도에는 나 말고는 달리 신경 쓸 사람이 없기에 스스로 그것이 애초에 누구를 위한 목표였는지 명확히 구분해낼 수 있게 된다.
내 인생을 살면서 내가 나를 위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것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목표를 세웠으면 이루어 내는 과정과 결과에서 내가 나의 인생을 산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느끼게 된다. 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항상 그것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인생일 것인가! 하지만 누구나 항상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는 못한다.
분명 목표를 세울 때는 최선을 다하면 분명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목표를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함에도 원하던 결과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자책하며 실천력의 부족, 혹은 의지의 부족을 탓하곤 한다.
의지가 행동을 발휘하게 하고, 그 실천력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게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결국 의지가 목표 달성에 있어 핵심적인 요인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만 본다는 것은 매우 좁은 시각으로 판단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관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의지를 관장하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 봄으로써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 칼럼에서는 우리가 육아하는 아빠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설정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근본적인 본질에 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그 날을 위해, 아빠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