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아빠가 나여야만 하는 이유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목표들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그 목표를 세우는 이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거나 스스로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필요 때문에 하는 경우들이 많다.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설득이 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주체성을 잃고 설득이 된다는 것은 바로 남이 만들어 놓은 죽은 지식을 아무런 필터링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누군가 시키는 공부를 하고,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는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채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이어온 결과, 우리의 아이들을 지켜줄 방법에 대해서는 좀처럼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쩌다 어른이 되고 어쩌다 남편이 되고 어쩌다 아빠가 되어 버린 우리. 게다가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 아빠들은 이전 세대에 비교해 빠른 속도로 달라진 '아빠의 역할'이라는 부분에 있어 여전히 적응기를 거치는 중이다.
그리고 그 적응기를 지나오는 과정에 있는 우리 아빠들의 양상은 크게 둘로 나뉘고 있는 듯 보인다. 딸바보, 아들 바보 등으로 불릴 정도로 아이와의 애착 정도가 남다른 아빠이거나, 혹은 그냥 아빠로서 주어진 ‘임무’를 다 하는 정도로 양분되는 것. 그 중간 정도의 단계에 있는 아빠들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칼럼을 처음 시작하면서 필자가 제기했던 세 가지 질문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1. 아이에게 육아는 왜 필요한가?
2. 아이에게 아빠의 육아는 왜 필요한가?
3.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아빠는 왜 꼭 나여야만 하는가?
아빠의 육아가 아이에게 있어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발달 등 많은 측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이제는 많은 아빠에게도 익숙한 내용이다. 또한, 아빠가 육아하는 시간은 단지 아이만이 아닌 아빠 자신의 힐링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는 말 또한 자주 들어온 얘기이다. 따라서 1, 2번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3번 질문은 다르다. 결코, 누구나 자신 있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세 가지 질문에서 모두 ‘왜’라는 의문사를 썼지만, 마지막 질문의 ‘왜’가 갖는 그 깊이는 나머지 둘과 크게 다르다. 바로 제삼자가 아닌 내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풀어내야만 하는 것이며, 또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풀어내야만 하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경험 부족으로 여전히 엄마들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아빠들에게도 역시 엄마들 못지않게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그리고 그만큼 각자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 수월하지 않다. 몸이 움직이는 것이 마음 같지 않다. 분명한 인식을 통해 의지를 다지고 노력하는데, 왜 수월치 않은 걸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실천을 해야 하고, 그 실천을 이끄는 것이 의지가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거기까지만 본다면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결국 의지의 문제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의지가 목표를 이룬다는 것은 분명 거짓이다. 왜냐하면, 그 의지를 결정하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이 ‘동’한다고 한다. 더 이상의 의문을 찾을 수 없을 때까지 질문의 꼬리를 물고 들어가면 그 일을 왜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명분이 생긴 이상 그것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된다. 그 어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어진다. 설령 누군가가 나를 막아선다 해도 어떻게든 할 방법을 찾게 될 정도의 강력한 당위성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마음이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방법을 생각하는 과정이 된다. '과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그렇게 방법을 찾게 되면 이제 그것을 실행에 옮기면 그만이다. 마음먹고 생각까지 마친 이상 실천에 옮기겠다는 의지를 따로 먹는다는 것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이미 강하게 형성되어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의지가 실천을 이끌게 되기 때문에 결국 목표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왜 나는 이것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가?’
위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 노력하면 그 과정에서 나의 본질을 찾을 수 있게 된다. 항상 존재했지만 분명하게 느끼지 못했던 나 자신을 스스로 격렬하게 느끼게 되고 마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 그리고 나와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어떠한 것에 대한 갈망의 당위성을 찾게 된다. 그렇게 목표를 이룰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명확해지면 온 정신과 육체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긍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자, 이제 아까의 세 가지 질문 중에서 마지막 3번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 보도록 하자.
이 질문의 답을 찾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필자의 칼럼을 읽는다는 것이 어쩌면 그저 시간 낭비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아빠로서 육아를 하는 데 있어 겪게 되는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는 자체 동력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짜 멋진 아빠라면, 우선 우리 자신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그 날을 위해, 아빠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