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상사 쪽글

by 노마 장윤석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2019.3.12


언젠가부터 철학자를 공부할 때 사상보다 생애를 눈여겨보고 있다. 번지르르한 말에 가려 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놓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대부분이 오래전에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라 몇 년도에 태어났고 어딜 입학했고 뭘 출간했고 정도만 남아있지만 이 대강의 생애 윤곽에 각종 소문과 설과 뒷이야기들이 겹쳐지면 사람이 보인다.

베이컨은 서양철학사를 통틀어 최고위 관직에 올랐던 인물이란다. 20살에 의회에 진입해 남다른 떡잎을 보였고, 영의정 격인 ‘옥새상서’로 국왕의 최측근에 등극. 이뿐이랴, 대법관에 국왕의 법률고문에 기사작위까지 그는 탄탄한 출세길을 걸었다. 이 바쁜 나날들 속에서 그는 과학적 세계관과 방법론의 기초를 닦는 학문적 업적까지 세웠으니 실로 이례적인 일이겠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학문을 하는 선비라면 돈과 명예를 쫒아서는 안 된다고 하거늘, 베이컨은 평생을 권력을 추구하고 돈을 밝혔지만 학문에도 게으름 없었으니 이것이 동서양의 간극인가.

그의 『학문의 진보』 첫 부분을 보면 약간은 사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온통 폐하를 칭송하는 문장들로 뒤덮여있어 오글거려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어려울 정도다. “폐하를 몇 번이나 제 마음에 그려보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현존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폐하는 플라톤이 생각하는 인간의 가장 좋은 예가 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폐하의 말씀 솜씨는 참으로 왕자다우시고, 셈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으시며, 더욱이 흘러나오면서 나뉘어 자연의 질서를 이루시고, 평이하시면서 교묘하시며, 아무런 흉내도 내지 않으시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습니다.” 일체의 인간적 감정과 우상을 배제하려 했던 그의 사상과 약간은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사상으로 넘어와, 그의 귀납적 방법론이 과학의 지평을 드높인 것은 확연하다. 신학의 지배를 과학이 엎는다는 것은, 절대적 명제 –이를테면 신의 명(命)- 에서 도출되는 연역법이 인간의 경험·관찰으로 비롯되는 귀납법으로 전복된 것을 의미했다. 방법론의 전환이 혁명을 야기한 것이다.

네 가지 우상에 대한 이야기는 사뭇 흥미롭다. 인류의 지적 진보를 위해 베이컨은 과거로부터 얻은 잘못된 지식과 편견을 지우고 싶어했고, 네 가지 우상은 이를 위한 하나의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겠다. 절대적 ‘객관성’의 추구를 위해 일체의 ‘주관성’을 배제하려 든 시도로 보인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동굴의 우상이 흥미로운데, 서있는 곳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는 ‘위치성’ 개념과 흡사하지 않나. 개개인의 습성, 취향, 지위, 생활환경에 따라 주관적인 경향을 가진다는 이야기다. 물론 베이컨은 이 일체의 주관성을 지우고 싶어했지만, 근래의 논의에서는 위치성을 지운다는 건 불가능하다 전제한 채 흘러가지만 말이다.



데카르트

2019.3.19


베이컨 수업이 끝나자 찝찝함이 감돌았다. 방법서설을 읽다가 이 찝찝함이 하나의 불편함이었음을 알았다. 이번 쪽글에서는 초기 사회-과학 사상가들이 나에게 남긴 불편함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베이컨과 데카르트가 이루어낸 과학혁명을 성과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다. 현대에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자리잡은 과학주의 인식론이 ‘그’때에는 혁명이었음을 부정할 수도 없다. 다만 그들의 사상에 악의 씨앗을 품어져 있음을 말하고 싶다.

베이컨의 말 ‘방황하고 있는 자연을 사냥하여 노예로 만들어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해야한다.’에서 악의 씨알이 두드러진다. 자연을 도구적으로 바라보는 인간중심주의 자연관이 현대에 와 어떤 파국을 초래했는가. 자연을 정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본 그의 시선은 역사의 시공간에서 처음 나타난 것 같다. 아직까지도 자연 속에서 무해함을 내적 원리로 더불어 살아가는 수많은 소수민족과 동양의 전반적 자연관은 그러지 않았다.

때로 혁명과 진보와 성장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한다. 얼마 전 스마트폰을 새로 샀다. 512GB의 용량, dslr에 버금가는 카메라, 선명한 화질.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이 엄청난 진보에 나는 괴로워했다. 처음 핸드폰을 쥐었을 때를 상상한다. 완벽주의 기질 탓인지 나는 핸드폰에 있는 모든 기능을 알고 싶어했다. 그리고 하루만에 모든 기능을 익혔다. 설정이 몇 개 안 되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열에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가는 속도보다 기술이 나가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어지러웠다. 더 이상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은 없다. 이제는 쉬는 시간에도 운동장은 비어있다. 베이컨에게 묻고싶다. 과학의 진보가 우리를 구원할 것 같아?

혁명이라는 단어에 도취되어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올 영향에 대해 무감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힘’이라면. 전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만’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데카르트가 보는 자연은 하나의 기계다. 그의 작업에서는 인간의 이성이 신의 완전함을 본받은 것임을, 코기토 에르고 숨이라는 명제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최종심급으로 상정했다. 자연의 법칙을 설명하는 시도는 과학의 기본을 탄탄하게 다졌으나 ‘대상화’의 한계를 생산해냈다.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시선으로 자연세계를 연구하는 관행이 그에게서 출발했지 싶다.

자연과 인간의 구분. 인간이 자연에 포함된 존재라 이해하던 지난 수천년의 사상-문화를 역전시켜 분리해낸 그들. 얻은 건 눈에 확연히 보이는 기술과 과학문명의 발달이지만 잃은 건 미래다. 언젠가 침몰하는 지구를 떠나는 방주에서 눈물을 흘리며 방법서설을 찢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만만투, 홉스(Hobbes)

2019.3.21


한편으로,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던 사상가들의 명저를 일부나마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만약 이 쪽글(홉스의 ‘법’처럼 일종의 아노미를 방지하는 규율)이 아니었다면 리바이어던은 평생 도서관 지하서가에나 놓여있었을 것이다.

‘홉스는 인간을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질문을 품고 텍스트를 읽었다. 만만투,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인간의 본성은 선하되 – 아니, 선하고 악하고 그런 것 없이 그 자체이되 – 인간 모두를 두렵게 하는 힘이 없다면 전쟁상태로 변한다. 홉스에 따르면 전쟁도 투쟁으로의 지향일 따름이니 그가 설정한 태초의 사회는 혼돈의 도가니 그 자체였겠다. 인간의 본성을 ‘경쟁(competition), 망설임(diffidence), 명예(glory)로 보는 홉스다. 성’악‘설로 치환하기에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음도 맞다. 실제로 어떤 조직과 구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허구한 날 전쟁을 치러댔으니 홉스의 생각에 반발심이 일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홉스가 황금률을 인용하는 것은 흥미롭다. 제2의 자연법, 평화와 자신의 방어를 위해 권리를 포기해야 함을 말하며 유명한 명제를 복음서에서 꺼내온다. “타인들이 너에게 해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을 너는 그들에게 행하라.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의 법이며, ‘네가 너를 위하여 바라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행하지 말라.” 홉스가 이루고 싶었던 사회는 완벽한 개인의 분리로 이루어진 사회는 아니었나보다.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안전이다.’ 2부 국가론의 서두를 여는 이 문장은 오늘날의 시대에도 유효하지 않은가.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곳곳에 넘쳐나고 아이들이 수장되며, 여성의 안전 또한 바닥을 가르킨다. 개인의 안전이 최우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국가를 이루고 사는 이유니까.

‘광야에 홀로 선 개인들’은 구 봉건 공동체의 해체를 의미했다. 이전의 종교가 선악을 그름짓고 공동체로서의 결속을 분명히 했다면, 홉스는 파편화된 홀로 선 개인을 상정하며 구 질서를 해체했다. “자신의 고독한 신앙에 기초하여 양심을 믿는다.” 문제는 개인의 권력을 떼어 사회를 만드는 것에 대한 근거가 ‘사유재산’과 ‘교환관계’였다는 것. 개인들간의 관계가 교환관계이고, 교환관계의 합이 사회라면 사회=시장의 등식이 성립하게 된다. 질문은, 개인들간의 관계의 합을 사회라 볼 수 있는가?



애덤 스미스(Adam Smith)

2019.4.9


모든 사상은 나올 때는 급진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화 된다. 애석하게도 애덤 스미스를 말할 때 이 말은 더욱 자명해지는 것 같다.

후세의 손길이란 게 참 무섭다. 학자의 ‘사상’은 후세의 필요에 의해 선별적으로 남겨지는 것만 같다. 중세의 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중 일부만 끌어왔듯이, 필요에 부합하지 않은 것들은 버려지고 만다.

겨우 한 번 나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얼마나 많은 스미스의 사상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는가. 국부론을 읽었던 소감을 간략히 상기하자면, ‘자본주의의 앞잡이’로 애덤 스미스를 바라보는 것은 책을 안 읽어서 그랬다. 내가 책을 읽으며 직접 마주한 스미스는 ‘앞잡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도 열정적인 학자였다. ‘그의 첫사랑이 도덕이었음을 명심하자’ 스미스는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있었다. 특히 노동자에 대한 그의 언급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노사관계에서 사용자 측이 유리하다 말했고, 노동자가 파업을 하는 것도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라 설명했으며, 중상주의가 그들의 이익만을 챙기느라 노동자를 쥐어짠다고 한탄한다. 그의 글 곳곳에서 이러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국부론에는 노동자의 상황적 불리를 인정하는 부분도 있고,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개인의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부분도 있다.

한편, ‘부의 성장’이 최고의 가치로 상정되는 것에는 의문을 품는다. 스미스의 모든 문제의식은 “어떻게 해야 국부가 성장할 것인가.”였으니. 경제성장이 안 된다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 하는 말이라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지만, 지금의 경제성장 신화에는 분명히 스미스가 기여한 바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의 순수한 마음과 열정에 품는 존경은 유효하지만 말이다.

스미스가 시장을 말하고 지지한 까닭은 ‘보통 사람’을 위해서임을 기억에 담고 싶다. 도덕감정론을 읽고 싶어졌다. 사놨는데, 먼지만 쌓여간다.

지금의 주류 경제학이 저지른 가장 큰 오류는 윤리와 철학을 제거하려 들었다는 것이다. 맨큐는 실증과 규범의 구분으로 경제학자와 정책조언자를 구분하는데, 그가 정의하는 경제학자란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냉혹한, 실증적 주장만을 하는 인간이다. 신고전학파가 맑스를 “개는 철학자야” 하며 경제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 인간을 다루는 학문 주제에 차가운 수식만 남기려 하다니.. 그러니 따뜻한 경제가 되겠어? 스미스가 무덤에서 살아나온다면 두꺼운 도덕감정론을 휘두르며 분통해할 게 분명하다.


루소

2019.5.9


어떤 토지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것은 내것이다.”라고 선언할 것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그대로 믿을 정도로 얌전한 사람들을 맨 처음에 발견한 자는 정치사회(국가)의 참된 창립자였다. 그 말뚝을 뽑아 버리거나 도랑을 매우면서, “그런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말게. 과일은 만인의 것이며 토지는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그야말로 자네들은 신세 망치네.”라고 동료들을 향해 외친 자가 있었던들 그 사람은 얼마나 많은 범죄와 전쟁과 살인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 얼마나 많은 참상과 공포를 인류에게 면하게 해 주었을까.

한 사람이 떠올랐다. 같은 말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세미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내내 말이 없던 그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감추질 못하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누가 놓여진 땅에 울타리를 친 걸까요. 누가, 도대체 누가 맨 처음에 가만히 놓인 땅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내 땅이라고 말했을까요. 그 때, 옆에 있던 다른 누군가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흠씬 혼내주었다면 세상은 이렇게 되지 않았겠죠? 그 때. 그 때 누가 옆에서 말렸더라면..”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이 사유제산제도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 유명한 문장을 자기 속에서 우러낸 그의 말에 곰곰이 나를 돌아보았다. ‘사회의 기초를 검토한 철학자들은 모두가 자연상태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를 느꼈다.’ 적어도 그 순간, 그이는 철학자라 부르기에 한 점 모자람 없었다. 세상의 부조리는 어디에서 기원한걸까. 우리는 부조리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이 언제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물음을 던질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 아닐까.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실은 일개 자본주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빈곤이라는 게 원래부터, 자연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처럼.

그러니 물어라. 뭔가 꺼림칙하고 찝찝한 것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마르크스

2019.5.9


지금의 나를 형성한 선생님 중 한 분은, 언젠가 전화에서 젊었을 적 이야기를 해주셨다. 야밤에 몰래 입수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고나서 촉촉이 젖어온 감동에 대해서. 고삼 때 읽어보긴 했지만 별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은 달랐다. 확실히 아는만큼 보인다고, 마르크스가 가졌던 통찰력이라 할 수 있는 것에 감탄케 된다. 더군다나 인상적인 문체와 비유란. 왜 맑시스트가 그렇게 넘실거리는지 알 것도.

맑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지금와서도 거시적인 문맥으로는 하나 어긋난 것이 없다. 그가 꿈꾼 이상사회와 단계적 낙관은 이상으로 남았더라도, 그 기조의 분석은 어긋남이 없다. 부르주아지가 발전하고 자본들을 증식시키면서 중세의 계급을 밀어내고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 이는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신랄하게 비판당한다 - , 목가적 관계를 파괴한 것에 대하여. 사람을 묶어 놓고 있던 잡다한 색깔의 봉건적 끈들을 무자비하게 끊어 버렸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노골적인 이해 관계, 냉혹한 ’현금 계산‘ 이외에 아무런 끈도 남겨 놓지 않았다는 점’...

때론 중세를 그리워한다. 살아보지 않은 곳이라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진업쌤이라면 분명 그 때는 자연에 잠식당하고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봉건적 잔악함이 도사린데도, 자본주의의 폐혜는 없으니 말이다. 장애라는 개념조차 없었다는 그곳. 생산성과 효율성의 원리에 지배받지 않아도 되는 그 곳. 이상하게 그 곳을 그리워하게 된다.

공산당 선언에서는 ‘생산의 끊임없는 변혁, 모든 사회 상태들의 부단한 동요, 항구적 불안과 격동이 부르주아 시대를 이전의 다른 모든 시대와 구별시켜 준다.’고 말했다. 항구적 불안과 격동,,, 나는 안정이 그립다. 곳곳에 넘실거리는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소외 현상은..

제 아무리 세상이 발전하더라도 소외가 있다면 발전일까. 온갖 공산품과 생산재에 둘러싸여 있더라도 그것이 나를 풍요롭게 하지 않는다면.,....

“한마디로 그들은 종교적, 정치적 환상에 의하여 은폐되어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거무미 건조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나의 걱정은 자본주의의 태동이 구 봉건질서 – 왕권신수설&독재를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진보시켰다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불가분의 관계인가? 벤담 발제 이후 특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이에크의 사회주의 비판에서도 맥이 같았다. 사회주의가 전체주의로 흘러갈 가능성. 자유를 넓게 보장하는 시장경제체제에서야 말로 민주주의는 꽃피리라.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의 지배 아래 복속시켰다. 부르주아지는 거대한 도시들을 만들고, 도시 인구의 수를 농촌 인구에 비해 크게 증가싴ㅆ으며, 그리하여 인구의 현저한 부분을 농촌 생활의 우매함으로부터 떼어 내었다.”

생태주의를 공부하면서, 도시화의 폐혜 및 지역사회로의 복귀. 이 모든 영역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식견이 겹친다. 마르크스와 생태주의는 깊은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가 생태를 망치기에 그렇다. 비판의 맥이 닿는 부분이 있다.

“즉 그토록 강력한 생산 수단과 교류 수단을 마법을 써서 불러내었던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주문을 외워 불러내었던 저승의 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마법사와 같다.” - 이 문장 인상깊다.

마르크스주의 생태학을 깊게 공부해보고 싶다.



하버마스

2019.5.21


의사소통에서 대안을 찾았다는 점에서 그는 사람을 굳게 믿었던 것 같다. 진보의 가능성을 논의에서 찾았다니. 계속 말을 나누다 보면 만족스러운 사회질서를 만들 수 있다니. 대게의 사회과학자가 구조의 측면에서 대안을 제시하는데 비해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은 좀 더 섬세한 대안인 듯하다.

근대이성의 문제가 비판태도의 상실, 성찰의 부재에 있다는 점에서는 깊이 동감한다. 아직도 그 훌륭하다는 철학자-사회과학자들이 있어왔음에도 세상이 고작 이 모양이라는 게 낯설게 느껴진다. 근대 이성의 강한 주체성이 타자를 배제화 하고, 강한 나르시시즘이 이를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철학적 담론은 일단락 하더라도, 자신이 저지르는 짓-자신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성찰이 사회-일반의 면에는 부재해온 게 아닐까. 가만보면 논리의 전개와 이를 통한 ‘성과’는 늘 ‘성찰’보다 앞서왔다. 과학자들이 성찰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성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발명해내는 일에 묻힌다. 성찰, 은 출가한 분들이나 하는 낡아빠진 소양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의사소통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리라고는 확신키는 어려운 것 같다. 일단 자기를 내려놓고 들어야지 뭘 하니까. 하버마스는 정치적 공론장 - 토의 모델이 정당성을 창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정치적 의사소통 소집단 연구에서 제출된 예들로 이를 뒷받침한다. 논의 참여가 성찰적 의견의 형성에 유리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집단 토론이 의견을 모으는 쪽으로 참여자들을 변화시켰다는 것, 의견불일치의 감소와 서로에게서 기꺼이 배우려는 자세에 있어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 털어놓지 않은 오류와 그릇된 해석들은 암묵적으로 철회되었고, 토론이 진행되면서 독단적인 선입견들은 뒤로 물러났다는 것이 그 논지이다.

그러나 뒤쪽에서 등장하듯 정치적 의사소통의 ‘병리현상들’ 또한 무수히 많다. 백악관의 거창한 전쟁 팔아먹기가 가장 큰 예이지 싶다. 사회적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버린 정치가와 자본의 이해관계가 얽혀 전쟁을 만들어냈다. 지금도 어떤 합당한 의사소통 과정을 거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충분히 일어나고 있다. 책임있는 언론이 없는 사회에서, 공론장이란 이상적인 허구일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푸코의 비판은 유효하다. 근대 이성 자체가 문제다. 뿌리부터 잘못되었다. 어떤 합리화를 통해 권력구조는 늘 정당화된다. 의사소통도 그 정당화의 한 논리다. 이성의 짙은 허구성, 허무성..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하는가. 다만 푸코를 공부하면서 어떤 대안-없음의 공허함이 감돌았던 것도 맞다. 열심히 구조를 해체해놨는데 어떻게 봉합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랄까.

하버마스의 이상적인 공론장 건설과 의사소통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희망을 걸게 되는 이유다.



* 김진업 교수의 <사회사상사> 과제로 제출한 쪽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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