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에헤이]
숨 - 2
2020.10.7. 수(水)
노 마
붕앙-2
붕앙-2는 베트남 하띤성에서 BOT(Build-Own-Operate-Transfer) 형태의 민관협력으로 진행되는 총 2조 5000억 규모의 1200MW 석탄화력발전사업이다. 세계적으로 탈석탄 바람이 불어, 정당성과 경제성(수익성) 모두를 잃어버린 탓에 주주인 중화전력공사를 비롯하여 설비 납품사인 제너럴일렉트릭(GE), 대출기관인 영국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등 세계 각지의 눈치빠른 여러 기업이 이 사업을 버리고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를 ‘팀 코리아’가 채우고 있다. 이번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에 들어가는 팀 코리아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한국전력, 수출입은행, 하나은행,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한국전력은 2200억 원을 지분투자 형태로 투자한다. 한국전력은 10년간 적자 5000억 원이 해외석탄투자에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달 전에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발전 추진을 결정한 바 있다. 수출입은행은 8000억 원의 금융을 보증, 제공한다. 자금출처가 명확하지 않으나 대외경제협력기금(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EDCF) 일 경우 이 사업은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중 유상원조가 된다. 즉,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위한 국제개발협력의 일환으로 석탄화력발전을 수출한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은 5년간 베트남 Mong Duong·호주 Millmerran·Loy Yang B 등에 837억 원을 약정하고 실행한 전력이 있다. 두산중공업은 설계·조달·시공(EPC) 사업자로 참여한다. 두산중공업의 사업부문의 60~80%는 해외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차지했는데 세계가 탈석탄으로 향하니 이에 따라 경영이 악화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올해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을 통해 2조 4천억 원의 ‘두산 살리기’ 자금을 제공해 ‘스마트 산단’의 그린뉴딜 기업으로 포장지를 갈아치우며 살리는 중이다. 삼성물산도 설계·조달·시공(EPC) 사업자로 참여한다. 얼마 전 같은 계열사인 삼성증권은 호주 환경단체와 청소년들의 불매운동을 의식해 “해당 석탄 사업에 대한 추가 지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삼성물산이 붕양-2 사업 눈치를 보자 세계의 온갖 연기금 주주들로부터 각종비판을 들었다. 그런데도 눈치만 슬금슬금 보다 결국 참여를 선택했다.
사실 이 사업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정부는 그린뉴딜을 발표하고 IPCC, 유엔기후변화총회, Cop25 등 각종 세계기후기구에 참여해서 기후변화 대응을 약속했다. 심지어는 ‘푸른 하늘의 날’까지 제창했고, 국제여론을 의식해 탈석탄 기조를 내보인지는 꽤 됐다. 이번 붕양2에 관련해서는 앨 고어 미 전 부통령,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UNFCC(유엔기후변화협약), 수많은 해외 환경·시민단체 등이 극명하게 반대를 표했다. 삼성의 연기금, 투자회사 주주들도 모두 성화를 냈다. 심지어 KDI(한국개발연구원)는 한국전력의 이 붕앙-2 사업이 약 1000억 원가량의 ‘손실’이 나리라 예비타당 평가를 냈다. 보수적인 추정치로 이름 높은 KDI에서조차 이리 평가했을 정도면 국제적으로 석탄은 이미 끝나 ‘좌초자산’이 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깜냥으로 정부(청와대, 산업자원부, 기획재정부)와 공적금융기관(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대기업(삼성물산, 두산중공업)은 이걸 강행하겠다는 걸까. 무엇 때문에.
민낯
풀리지 않는 질문들이 많다. 한전이 갖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는 까닭은 뭘까. 국제 평판을 그토록 신경 쓰는 삼성이 참여를 선택한 까닭은 뭘까. 신남방정책을 표방하는 정부가 아시아 개발도상국과 맺는 경제협력은 이 사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설마 정부는 신남방정책의 성과로 이 석탄화력발전소 계약을 내밀 생각인가? 그린뉴딜을 외치면서 해외 석탄을 강행하는 내적 모순은 왜 그들에게 자각되지 않나. 석탄으로 망한 두산을 정부는 왜 공적자금을 지원해가면서, 그린뉴딜 기업으로까지 선정해가며 살렸나.
곳곳에 산재한 모순들, 밝혀지지 않은 이유들, 나는 계속 무언가를 추적하는 심정으로 있다. 퍼즐이 다 맞춰지지는 않았다. 빈 곳을 채울 조각을 찾아낼 방도를 찾는 중이다. 다만 알고 있다. 증명되지 않았을 뿐.
석탄으로 더러운 수입을 올리던 두산은 급속한 탈석탄 흐름을 읽지 못해 악화되자 흠칫 놀라 정부에게 로비를 했을 것이고, 몸집이 커진 기업이 나라 경제를 떠받친다고 믿는 정권은 기업 중심의 그린뉴딜을 펴면서 자금지원의 명목을 만들어 두산을 살렸을 것이고. 3P(People, Prosperity, Peace)를 내걸고 진행되는 신남방정책의 기조에서 사람과 평화는 온데간데 없어진 채 번영만 ‘성장’으로 인식되어 한국과 아시아 개발도상국 양국의 경제목표가 되었을 것이고. 석탄발전소는 그런 GDP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기둥일 거고. ODA할당 비중 채우면서 국가 간 협력한다는 이니셔티브 쌓고. 한국과 일본 말고는 모두가 손을 뗀 석탄에 들어가면 두산에게 먹잇감 물어다 주고 수출실적을 쌓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거고. 삼성도 눈치 보다가 정부가 한다는데 하고 솔깃했고. 어쨌거나 석탄 쪽은 단기 벌이가 쏠쏠하니까. 정부 산하에 있는 구시대의 관료들은 그냥 하던 대로 석탄투자 했을 뿐이고. 반대 여론에는 대강 ‘친환경 석탄발전소’, ‘그린뉴딜은 국내정책’, 등 게으른 논리 만들어 워싱하면 그만이니 그냥 했고. 뒷일 생각하기에는 생각도 없고, 정년도 얼마 안 남았고. 기후는 뭔 소린지 모르겠고.
설마. 그럴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가장 역겹다는 사실. 이건 어두운 이면도 아니고 그냥 우리가 사는 세상의 민낯일 뿐이다.
*덧 하나
나로 돌아와. 그러나 돌아오는 법을 잊어버린 슬픈 짐승은 그냥 뒤섞여 살아간다. 빌어먹을, 이 차가운 심장아. ‘나’를 주어로 쓰는 일이 두렵다. 내보이고 싶은 마음을 차치하고서, 아까운 지면을 나로 채우다가 소명을 다하지 못할까 봐, 나에 매몰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릴까 봐, 나를 생각할 수 있는 것도 특권이라는 생각에, 나를 빼게 되었다. 그러나 이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연과 원을 비롯한 동지들에게 건네는 말과 나에게 건네는 말이 달라진 지 조금 되었다. 나를 살펴야 함을 안다. 나를 살뜰히 살피지 않는다면 망가지는 것도 안다. 다만 글쓰기건 삶이건 연구건 활동이건 나의 문맥을 넘어서고 싶다. 비좁은 자아에 갇혀버리기에는 해야 할 것이 많다. 오래 살아야겠다. 이를 아득바득 갈아서라도 마음을 잡지 못하면 나도 흐뜨려져 버릴 것 같다. 원래는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너를 나 앞에 두고 싶다, 그러나 가능한가?
알려야 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모두가 모르고 넘어가서는 안 돼서 말을 하고 글을 쓴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런 거라니, 하고 드는 허탈함도 있고. 적당히 균형을 잡고 언젠가 다 끝났어, 하는 사실을 여러분께 먼저 알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나는 다른 거 다 차치하고서라도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홀로 삭여야 할까. 이미 우리는 문턱-값에 진입 중이다. 망해가는 세계에서 얼마 전 태어나 견고한 체제에 상상력도 가능성도 제약당한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하나?
한스러울 만큼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럽혀지더라도 나는 괜찮다. 정말 괜찮다. 내 임무는 기록이니.
**덧 둘, 권하는 음악
조성진, Chopin Prelude in E minor Op. 28 No. 4
***덧 셋, 권하는 책:
비자이 프라샤드 엮음(2017), 추선영 옮김(2018),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 - 자본주의 시대 기후변화에 대한 단상』, 두 번째 테제
카트린 하르트만(2018), 이미옥 옮김(2018),『위장환경주의 – 그린으로 포장한 기업의 실체』, 에코리브르,
이안 앵거스 엮음(2009), 김현우·이정필·이진우 옮김(2012),『기후정의 –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에 맞선 반자본주의의 대안』, 이매진
볼프강 작스 외(1992, 2009), 이희재 옮김(2010),『반자본 발전 사전(Development Dictionary)』, 휴머니스트
자크모 달리사 외(2018), 강이현 옮김(2018),『탈성장 개념어 사전』, 그물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