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단어
빚져있음, 단식, 붕앙, 녹색당, 녹색전환연구소, 긴급행동, 한계, 가능성, 한맺힘, 갈등, 평화, 중재, 신념, 현실, 믿음, 동지, 선, 투쟁, 운동, 활동, 변화, 연구, 기후, 정주, 사회, 경제, 순환, 돌봄, 먹물, 무력, 깊음, 기성, 기우, 우정, 사랑, 성찰, 성숙, 성장, 탈성장, 나태함, 관대, 히스테리, 내로남불, 마음공부, 서로주체성, 녹색전환, 조화, 균형, 조급함, 조바심, 혜안, 지혜, 연찬, 문명전환, 생태학살, 생태경제학, 끝까지읽기, 기다리기, 여유챙기기, 느긋하기, 감내하기, 호흡하기, 애틋하기, 모두를 소중히 대하기, 자연스러움을 바라기, 자기전환을 앞에두기, 내탓이오 하기, 잘 갈등 하기, 공동의 꿈을 나누기, 10년의 생각하기, 생명을 존중하기, 타자되기, 얼굴을 먹지 않기, 명상하기, 요가하기,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기기, 효도하기, 돈을 돌로 보기, 자존심 민주당 앞에서만 세우기, 정치적으로 사고하기, 그물 걷어내기, 돌봄왕되기, 생명 중심 관점을 경시하기, 연대의 월요일 정하기, 지각 그만 하기, 마감 그만 미루기, 평가하지 않기, 손톱 물지 않기, 하루 한 책 읽기, 시읽기, 편지쓰기, 생일 잘 챙기기, 자기 한계 웃으며 인정하기, 잘 토닥이는 사람 되기, 열정은 필요할 때만 태우기, 호언장담 줄이기, 믿음과 약속을 소중히 여기기, 사랑하기, 너무 우울해 하지 않기, 우는 이 옆에서 같이 울기, 연대하기, 몸 못 가면 마음이라도 보내기, 언어 익히시, 성실하게 하기, 심란과 집중 구별하기, 당사에서 밤 새지 않기, 부모에게 자주 전화하기, 전화음 켜놓고 잘 받기
00. 여는 말
해가 간다. 험한 시기를 모두 잘 지나보내고 있으려나. 우리는 같은 차원에 있다는 점에서는 동인인데, 왜 하나이지 못하나. 내가 사는 세상과 낯설어지려고도 친숙해지려고도 해봤다. 활동과 연구의 간극은 늘 일어난다. 단일하지 않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괜찮을까. 모두를 주어로 올리는 것은 괜찮은걸까. 나를 바꾸지 못하면 세상을 주어로 변화 운운 하는 것이 쉬이 무색해진다. 사랑은 마음의 넓이, 깊이, 높이로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강조점은 제각각이지만 우리 모두 저마다의 사랑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외양의 차이와 벽을 넘어서 어떤 조화로운 맥을 찾고 싶다. 문제를 풀고 싶다. 우리를 만들고 싶다. 소진대신 가능성이 우리의 입에서 더 말해졌으면 좋겠다. 암울은 해석이다. 그것이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하든, 장면과 경향에 기반하든 해석이다. 앎은 늘 앓음의 영역이지만, 우리의 앎이 푸르르게 피고 지고 잘 피고 했으면 좋겠다. 너무 많이 은혜입은 해였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함께 아파오며 지나온 우리여, 수고에 사랑을 보낸다.
0. 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스스로의 발전에 관한 것인 동시에 세상의 전환 체계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꽤 오랜 시간 이 물음을 반복해오면서 동반되었던 감정들은 다양했다. 절망, 우울, 무력과 같은 것이기도 설렘, 용기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 감정사의 우여곡절을 시각화해보려는 시도가 이 글이다. 매 순간마다 기로에 놓인다. 이제부터는 이 물음에 연결되는 여러 축에 대해서 써보자 한다. 삶 혹은 시공간의 지표설정에 대한 것이다.
올해의 나는 여러 시공간에서 그저 일하고 듣고 말하며 열심히 심란해했다. 지나고 보니 무언가 정리되지 않는 것을 배웠는데, 그것들이 일관된 서사와 체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정리할 길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다양한 체계로 해석하는 것 뿐이겠다. 일종의 전환론/발전론을 쓰고 싶은 어설픈 욕망의 발현이기도 하다.
1. 축
[1] 주체(혹은 관계): 이것 – 이것을 글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 필자인 나는 얼마만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것일까. 독자를 상정하고 길이와 문체와 친절함과 솔직함을 조율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다. 읽는 시간 대비 효용을 생각하는 순간 글은 명을 잃는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라고 일컫어지는 것에 갇히는 순간 그것은 글이라 보기에 민망한 것이 된다. 독백을 문서화하는 것이 일기 이상으로 가치 있기란 쉽지 않으므로 말이다. 이는 비단 글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 자기로 살아가는 것을 목적하여야 하는가? 혹은 타자를 깊게 삶으로 들여 살아가야 할까. 어디까지가 자유이고 어디부터 만행인가. [2] 시간: 어떤 시대에 살고 있으며, 나의 유한한 생에서 얼마만큼 생각하고 내려야 하는가? [3] 공간(): 어떤 공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무엇을 만들어가고자 하는가? [4] 우선순위(가치부여): 무엇에 역점을 둘 것인가? [5] 돈(물질적 조건): 물질적 조건은 어떻게 되고, 물질적 구현 방안은 어떻게 되는가? [6] 사랑(관념적 조건과 지향):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사랑을 지향해갈 것인가? [7]돌봄/평화: 갈등을 어떻게 여길 것인가,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8]비판과 형성: 부술 것인가, 만들 것인가? 등. 이상에서는 근본적으로 물어지지 않는 전제들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다. 한국어로 작성하면서 비롯되는 관행, 한글 문서로 작성하면서 발생되는 언어의 균질화 정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작성되는 관행, 1월 1일이 미치는 영향, 필자의 심리상태 등 많은 것을 괄호치고 작성하였다. 이것을 작성하는데 드는 전력량, 커피값, 무지막지하게 커피를 재배하면서 드는 물질사용량, 혹여나 난해함 탓에 읽는 사람들의 피로도 등은 외생변수로 취급되었다. 이 많은 전제와 변수들을 모두 고려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SNS에 무언가를 올리기 힘들어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이상을 종합하여 물음을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나는 왜 있으며, 이것을 퉁치더라도, 이 시대의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배태되어 여러 조건 속에서 나의 뿌리와 조건을 감안하여,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에 가치를 두며 살아야 하는가. 잘 정리된 물음을 잡스러운 수고를 곁들여 파헤친 것은, 어떤 물음/의제/방식/방법/선택/결정이 구성된 것을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2. 툴
이것은 기본적으로 차원/층위의 문제이자 분석툴(tool)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성격을 MBTI이론은 4단계로 분류한다. I(내향)/E(외향), S(현실, 감각)/N(이상, 직관), F(감정, 마음)/T(이성, 머리), P(즉흥, 우연)/J(계획, 필연)로 각각 관계성, 현실성(방법론의 발걸음 수), 인식론, 반응체계, 실행체계를 이루고 있다. (타고난 것, 사회화 된 것, 숨겨진 것, 지향하는 것이 섞여있다.) 주역은 건곤감이를 바탕으로 64괘로 설명한다. 기원 이전 역사를 분류 혹은 해석한 체계로 상징성과 해석의 여지를 넓게 열어놓았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이라는 필연을 기반으로 인과체계에 믿음의 영역을 연동시켜 놓은 듯하다. 사회학에서는 갈등론/기능론의 이분화체계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은 이 모든 체계 중 가장 명료하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시간, 비용(화폐투입), 산출(생산, 물질량에 화폐를 곱한 값, GDP가 대표적). 화폐를 측정단위로 삼은 순간 이 인식론에 불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진다. 세상을 수리화해낼 수 있는 인식체계를 발명한 것이다. 그렇기에 경제학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물음에 가장 명료하게 대답을 할 수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화폐로 변환되는 최대의 효용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면 된다. 문제는 그것이 단지 하나의 해석/설명/가치체계 임에도 그 정도의 지위를 넘어서버렸다는 데 있지만. (*이상의 단순화된 요약이 저지르는 한계에 대해서는 미리 사과를 구합니다.) 그리하여 이는 일반적으로 주류라고 불리는 삶의 방법 체계를 사회적으로 이룬다. 연말정산, 신년노동계획, 신년재태크계획, 트렌드코리아2022 등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사회체계 하에 있다. 이것을 자본주의라고 부르던 서울방식 새해맞이라고 부르던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관성이자 결과이다.
그렇다면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현실성/급진성(현실적으로 살 것인가, 이상적으로 살 것인가?), 관계성(자유냐 헌신이냐), 윤리성/목적성(선을 추구할 것인가?, 선 같은 것은 없는가?), 보편성/특이성(보편적으로 살 것인가, 특수하게 살 것인가?) 어떤 기준을 위에 놓을 것이고 가중치는 얼마나 부여할 것인가? 우리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까.
3. 시사점
이상의 혼란함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들이 함께 남았다. 나는 사회와 자연과 분리될 수 없다. 분리하여 사고하는 관행은 많은 경우 습관적으로 익혀진 것이며, 서구성에 편향되어 있다. 그렇기에 나의 실천은 사회의 전환과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뇌가 하나인 탓에 주로 어느 하나에 역점을 찍기가 너무나 쉽다. 육식주의와 소비주의에 빠진 자본주의 기후활동가와 제로웨이스트과 비거니즘 실천에 최선인 에콜로지스트 같은 식상한 구분이 그 좋지 않은 예이다. 나오미 클라인과 아르네 네스를 같이 아는 이를 잘 보지 못했다. 우리는 발자국과 발걸음을 자주 잊지만 이것은 각각 큰 의미를 지닌다. 유한한 물리적 행석 속에서 (한계를 넘어갈 지경으로) 찍고 마는 온실가스 배출 혹은 생태발자국의 중요성은 두말할 것 없다. 이상주의자도 현실주의자도 아무래도 좋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상이 현재의 이 시공간과 열 발걸음 멀찍이 떨어져 있는지 다섯 발걸음 떨어져 있는지는 감안해야 한다. 자기의 말과 상이 이상적인지 현실적인지 정도는 알아야 안주하고 있는지 공허한 꿈을 꾸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대개 편 갈라 언성을 높이느라 자기의 주장이 가진 실현가능성 혹은 기성의 재생산도를 간과하는 것 같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가치지향성이 돌봄과 평화의 지향보다 늘 앞세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숨과 형성을 헷갈리는 것도 쉽다. 전환을 위해서는 악습은 부셔야 하고 새로운 습관은 길러야 한다. 석탄발전소를 막으려면 기업을 혼내주고 대안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주어를 우리라 쓴 것은 사실 모두 내 이야기다.
4. 철학
나의 다짐 이상으로 이것은 새로운 철학체계에 대한 요구다. 기후위기를 몇 년째 붙들고 있으면서 이것이 욕망, 사회, 경제, 기술, 정치, 심리 등 모든 것의 문제라는 것을 나날히 알아갔다. 당장 해당하는 부문만 해도 [녹전연ver]정의로운 전환, 에너지전환, 건물주거, 교통이동, 지역자치분권, 농업먹거리, 돌봄복지, 생물다양성, 문화예술, 사회적경제, 순환경제이고 [녹색당ver] 기후정의, 플랫폼기술, 주거이동, 젠더소수자, 국제평화, 농업먹거리생물다양성, 탈핵탈석탄에너지, 돌봄복지건강, 노동일자리기본소득, 지역순환경제화폐금융민주화, 청년청소년, 동물권으로 나뉜다. 즉 모든 것의 문제라는 것이다. 모든 것의 문제라는 것은 철학의 문제라는 것이다. 철학을 총체성의 학문 혹은 세계관의 학문이라 설명하는 정의에 따른다. 이상의 것들을 총체적으로 우려내어 새로운 체계를 설정하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머리카락 한 올 같은 부분의 변화에 한정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일었다. 결국 2022는 다시 철학으로 돌아왔다. 2021 앞에서 철학을 버리겠다고 다짐한 지 한 해 만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속 생각하며 살게 될 것 같다.
5. [별첨. 회고록] 2021톺아보기
2021의 결산은 아래와 같다.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 에반게리온
웹툰: 도롱이
음악: 도마 2집, 스텔라쟝 Stair
책: 최은영 <밝은 밤>
논문: 안아름
공간: 길담
시간: 정책대회 마지막 날
선물: 머플러(사유: 너무따뜻함, 출처: 주현)
가치: 안정
상실: 붕앙 착공
기쁨: 집나간 친구 돌아왔을 때
깨달음: 단식 농성장 마지막 날 돌봄왕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함, 정책대회 마지막 날도 같은 생각함.
팀: 붕앙팀, 정책소위팀, 정책운영위팀, 녹색오리팀 (결론: 다 잘함)
단상: 조직되지 않은 풀뿌리는 잡초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잡초는 없다)
올해 가장 힘들었던 글: 바람과 물 1호 <그들의 마지막 석탄발전소(원제: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막는 마음)>
놀랐던 순간: 지리산 정치학교
가장 많이 생각한 단어: 녹색전환
미안하고 고마운 이들: 일단 안시 노수 노주 아가들
6. [별첨. 선언문]2022나아보기
올해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돌봄의 원칙: 자기돌봄은 서로돌봄과 연결되어 있다. 돌봄왕이 된다. 말보다 설거지.
2. 안정의 원칙: 내가 안정되어 있어야 우리가 안정될 수 있다.
3. 여유의 원칙: 여유는 시간의 문제 이전에 태도이다. 바쁜척보다 나쁜 게 없다.
4. 자기전환의 원칙: 자기 전환 없이 세상 전환 없다.
올해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지각 벌금(5만원)의 규칙: 신뢰 회복 메커니즘
2. 양치하고 불 끄고 밤안새고 자기의 규칙: 제발
3. 샤워 10분의 규칙: 노 실천 노 전환
4. 언어카드의 규칙: 언어를 성실히 익히는 시스템
5. 하루 한 책의 규칙: 책 읽고 좋은 것은 나누기
7. 맺으며
실은 새해라는 거 별 거 없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버렸다. 모두 짐짝처럼 연말과 연초로 밀어두고 살았는데 이리 금세 흘러갈 줄이야. 다들 수고하셨다. 함께 살아가요. 넓고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