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 학보 학생기고 2022.11.14
∆2022년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이 열리고 있다. ©hohophoto
9.24 기후정의행진
3년만에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이 큰 규모로 열렸다. 2019년 9월 혜화에서 열린 첫 기후위기비상선언 집회 참석자가 5000명이었는데, 3년 만에 3만 5000명으로 7배가 늘었다. 하루 내내 진행된 행진 사이사이에 익숙한 이름들과 깃발들이 있었다. 민속문화연구회 탈은 행진 한가운데에서 신명나게 굿을 했고, 농림생태환경연구소 학생모임 빅비즈, 성공회대 녹색당 모임 GPS, 실천환경학회 공기네트워크, 등에서 각자 만든 색색의 피켓을 들고 함께했다. 처음 성공회대에서 기후위기가 이야기된 것은 3년 전 2019년의 가을이었다. 호주의 산불이 크게 지나가고 난 뒤 유독 추운 계절의 끝자락에, 기후위기 비상선언문이 낭독되었다.
∆성공회대학교 기후위기 공동선언문.
“하나의 물음으로 기후위기 선언의 시작을 엽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들은 우리의 터전이고 봄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푸른 들판과 깨끗한 공기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문명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고, 우리는 공멸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다가올 봄조차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 성공회대 기후위기 공동선언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3년 사이 많이 것이 달라졌다. 한국의 대학 중 처음으로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선포했던 이들은 학교를 떠나 기후행동을 시작했다. 몇몇은 청년기후긴급행동(a.k.a 김공룡과 친구들)을 만들어 기후위기를 막기위한 비폭력 직접행동을 수행했고, 지금까지도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지빌리티) 등과 기후재판을 치르면서 한국의 마지막 석탄발전소 건설을 막기 위한 활동 중에 있다. 그밖에 성공회대 안팎에서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치, 연구, 예술 등등 여러 활동이 이어졌다.
3년 사이에 낯설던 기후위기가 국제사회건 한국이건 정부와 시민사회의 핵심의제로 올라왔다. 물론 마냥 좋은 방향만은 아니다. 기업들의 ESG 등 지속가능경영과 정부의 환경정책 대부분이 녹색분칠(Green washing)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고, 정부의 녹색정책은 한편으로 석탄발전소와 신공항 등 토건 개발 사업에 잠식되어 있다. 그마저도 국제적으로는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으로 기후위기 대응 거버넌스가 깨졌고, 한국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등장으로 여성가족부에 이어 환경부까지 무력화될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전환의 골든타임을 모두 놓쳐버리고 가시밭길로 들어서고 있다.’
성공회대와 기후우울
3년만에 코로나가 일단락되고 전면 개강한 성공회대는 활기를 띄는 면이 있지만, 그림자도 엿보이는 듯하다. 실제로 코로나 시간을 거치며 한 해 우울증 치료를 받는 이의 수가 100만 명에 다다르며 큰 폭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얼마 전 성공회대에 기후우울을 노래로 풀어내는 가치가게의 ‘노래하는 지구인’ 워크숍 포스터가 붙었다. 기후우울(Climate grief)은 이제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와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에서도 공인된 심리 질환이다. 기후우울은 소극적 설명으로는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위협적인 미래를 앞둔 세대가 겪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폭넓게 이른다. 기후우울은 일종의 사회적 우울로 경제 사회적 동향에 밀접히 영향을 받는다.
말을 이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지난여름 100여 년 만의 폭우로 관악구 반지하 침수 사고를 비롯해 수많은 사상자가 났고, 한 달 전에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며칠 전에는 SPC의 빵 반죽 공장에서 23살 노동자가 끼어 숨지는 산재 사고가 일어났다. 하나하나 기록적인 비보가 빈곤, 여성, 노동 등 사회적 의제 이전에 참사로서 연일 이어지고 있다. 비극은 늘 교차적 특징을 지닌다. 기후우울은 먼 미래의 걱정으로 인한 것보다, 지금 당장 살고 있는 세상의 사회적 여건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살고 살아온 세상이 도무질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그 속에서 내가 살 방안도 마땅찮지 않을 때, 이것이 기후우울의 조건이 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것은 환경을 지키자는 것을 넘어 기후우울의 국면을 넘어갈 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에 가깝다. 최소한의 안전과 존엄이 있을 수 있도록 사회를 전환하자는 이야기를 기후위기라는 말을 통해 하는 것이다.
전환의 상상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지금은 3년 전과는 달리, 모두가 기후위기를 알고 있고 많은 수가 전환을 열망하는 때에 와있다. 실제로 얼마 전 9.24기후정의행진의 동력으로 5만 명을 모아 국회 탈석탄법 입법청원을 이뤄내는, 작지만 큰 한 걸음을 내딛었었다. 기후위기를 지금까지의 예측이 무색하게 심화시킬 기후 티핑포인트(Tipping Point)가 있다면, 사회를 지금까지의 비관이 무색하게 놀랍도록 바꿔낼 전환의 티핑포인트 또한 존재한다.
김경문 신임 총장은 9월 학보에서 우리 대학이 기후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개인이 아닌 대학 차원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으나, 기후 위기 대응에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당면한 기후위기와 관련해 정보나 담론을 유통하고 우리 대학이 기후 위기의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자기가 있는 자리부터 시작하는 것이 전환의 기본자세다. 선언을 넘어 말이 말만으로 남지 않도록 해야한다. 성공회대는 처음으로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한 대학이고, 대학의 구성원들중 다수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사회적 전환을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이뤄가고 있다. 캠퍼스와 학제 시스템 모두 기후위기 대응에 맞춰 전환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선도와 혁신은 멀리 있지 않고 지금 당장 우리가 처한 문제를 전환하는 상상력의 크기와 깊이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글ㅣ장윤석(사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