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 학생 기고 2022.11.30
작은 연못
성공회대는 작은 연못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연못 안을 잘 살펴보면 각종 수초들 사이로 물벼룩, 올챙이, 송사리, 소금쟁이, 물방개 등 다양한 생물들을 볼 수 있다. 작은 크기에도 놀랄 만치 높은 생물다양성을 이루고 있다. 돌아보면 한 학기 새 성공회대 안에서도 기후를 둘러싼 다양한 자리들이 있었다. 9월, 김민성 교수의 ‘환경과 사회’ 수업에 수강인원이 꽉 찬 것이 시작이다. 녹색당 공부모임 ‘GPS’의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읽기와 실천환경학회 ‘공기네트워크’의 텃밭가꾸기와 경제학 전공 워크숍 진행이 있었다. 빅비즈와 농림생태연구소가 기후정의 행진을 앞두고 초청한 한재각 집행위원장의 강연, 11월 농림생태연구소와 젠더연구소가 공동주최한 김신효정 연구자의 에코페미니즘 강연, 기후위기기독교신학포럼 주관 『지속불가능 자본주의』의 저자인 사이토 고헤이가 주제강연을 진행했다. 그 밖에도 많은 자리들이 다양하게 꾸려졌다.
녹색 전환의 청사진
기후위기는 모든 질문을 다시 시작하도록 권유한다. 대학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대학도 당연히 기후∙생태위기 등 물리적 조건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자연과 사회 조직 원리와 구성이 바뀌고 있는데 교육이 그대로일 수는 없다. 기후교육, 생태교육, 전환교육 등 무엇이라고 부르던 교육의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다. 주목할 만한 사례로 얼마 전 세계 최초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설립된 탈성장 대학을 소개한다. 바르셀로나 대학은 커리큘럼을 재편해 기존의 분과 학문 체계가 아니라 ‘탈성장(Degrowth)’이라는 문제를 기조로 생태경제학, 정치생태학, 여성학, 인류학 등 학제적 과목을 편성했다. 지식과 내용 위주의 교육에서 경험과 관계 위주의 교육으로 바꾸어 가는 것도 특징이다. 교수가 일방적으로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온 연구자활동가들이 참여해서 문제와 질문을 나누는 수업을 지향한다. 마지막으로 대학이 서 있는 공간과의 관계 및 전환을 강조한다. 고전적인 모범사례로는 영국의 슈마허컬리지와 토트네스 전환마을이 주목받는다. 이 대학은 지역과 공생 관계를 맺고 먹거리와 농업기술, 에너지 전환, 지역화폐 등 전환을 위한 방안을 고민한다. 지금은 마을 단위를 넘어 도시 자체를 전환할 방안이 모색된다. 탈성장 대학이 위치한 바르셀로나는 2020년 이미 기후비상사태선언을 발표해 2050 탈탄소화 목표와 5가지 행동영역 242가지 실전 조치를 꾸렸다. 이 선언과 조치가 200개 남짓단체의 300명이 넘는 시민이 구성한 기후비상사태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집필됐고, 대학도 이 과정에서 궤를 같이했다. 도시의 전환과 대학의 전환이 동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흐름들을 통해서 우리는 성공회대가 기후위기비상선언, 9.24기후행동 이후에 어떤 녹색전환을 해갈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성공회대가 당장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대학에서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려 한다면 어떨까. 이러한 그린캠퍼스 정책들을 학생 단위들을 포함한 학내 구성원이 골고루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수립해서 논의한다면?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중요한 학문으로 정치학에는 정치생태학, 경제학에는 생태경제학 등 학과 커리큘럼을 개편하고 아예 생태학(Ecology) 전공을 개설한다면? 전환마을의 사례처럼 성공회대가 구로 지역에 산재한 다양한 주거, 교육, 교통, 돌봄 등의 문제들을 지역사회 단위들과 논의하는 자리를 계속 만들어 나가면? 그래서 대학에서 졸업하는 학생들도 지역의 녹색일자리(Green Job)와 연결되는 지역의 선순환이 만들어지면 어떨까.
대학과 다양성
다시 연못으로 돌아와 보자. 이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인데, 어떻게 연못에 그렇게 많은 생명이 살 수 있냐고. 질문의 순서가 반대로 됐다. 다양하고 많은 생명이 살고 있기 때문에 연못의 물이 썩지 않는 것이다. 연못과 대학 사회가 다를 게 있을까.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물」에서 조효제 교수는 ‘자연을 자원으로만 보는 것, 단일작물만 재배하고 크기와 색깔이 안 맞는 것은 버리는 식의 단일화 논리가 인간사회에 적용되면 불평등과 차별로 이어지죠. 생물다양성을 말살하면 에코사이드, 사회다양성을 말살하면 제노사이드가 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연못도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붙는다. 연못을 포함한 모든 사회는 기후와 생태계에 묻어 들어가 있고, 자연조건에 의존해왔다. 이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각종 위기를 통해 다시 알게 된다. 누구의 배도 빌리지 않고 태어난 이가 있을 수 없듯이, 생각으로만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학이 기후와 지역사회, 구성원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그 공간 안의 나는 대학과 기후를 포함해 너와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전환의 질문이 다양한 것은 전환 자체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녹색은 녹색만이 아니다. 자연의 색은 잘 보면 계절마다 바뀐다. 봄에 신호등 건너 길의 개나리는 노란색이고, 초가을 단풍 든 담쟁이 잎은 빨간색에다가, 늦가을 수목원 가는 길 코스모스는 보라색이다. 그래서 녹색 전환은 무지갯빛 전환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전환을 말하기에 참 어려운 세상이다. 고작 한 학기 새에 SPC 빵 공장 산재사고 대자보가 붙고, 신당역 여성 살해 추모 공간이 조성되고,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았다. 너무 큰 비극은 말문을 가로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은 늘 전환으로 이어졌다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다음의 세상을 열어왔다고 말하고 싶다. 성공회대에는 서로 죽고 죽이던 한국전쟁을 겪고, 제주 4.3과 광주 5.18을 지나온 이들이 교수가 되어 인권, 생태, 평화를 말하고 있다. 이들에게 배운 성공회대의 학생들 중 누군가는 노동, 젠더, 기후를 더해서 노학연대로 일상을 채우고, 모두의 화장실을 만들고, 기후위기비상선언을 일궈왔다. 결국 연못을 살리는 건 다양한 우리들이다. 이 시대를 겪어낸 우리가 어떤 다양성의 전환을 만들어낼지가 어려운 희망이겠다.
글∣장윤석(사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