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개벽 2022년 겨울호 다시뿌리다 2022.12
1. 개벽: 묘한 나의 한국철학 이야기
참 신묘하다. 흐르는 물에 씨알을 뿌렸던 우리의 시도가 언제 자라났는지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다. 다시개벽 잡지를 처음부터 사랑으로 읽어왔는데, 소개가 늦었다. 윤석으로 불러주시라.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파하는 한국철학에 대해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하다. 그동안 가장 쓰고 싶었던 이야기다. 동시에 가장 못 쓸 것 같았던 이야기다.
처음 한국철학을 한 건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이다. 그때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사는 게 뭔지 어떻게 사는 건지. 존재와 무(無)만 있던 어둠 속에서 어떤 정신분열을 겪고 있었던 것 같다. 입시를 거치고 학벌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실존의 영역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나의 고통에 응답을 건넸던 이를 스승으로 삼았다. 철학자 김상봉은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된다”며 홀로주체성을 넘어 서로주체성으로의 길을 보여주었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였고 ‘너’도 ‘나’라 하는 함석헌의 말을 빌려 <너도나라>를 만들었다. 우리철학연습소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의 뿌리와 사회의 기원을 찾아 나섰다. “앎은 앓음”이라는 말을 등대 삼아 배워나갔다. 재개발로 집에서 쫓겨났을 때는 토지공개념을, 기업의 폭력이 잔인하고 노동이 서러울 때는 자본주의와 기업지배구조를, 그리고 남성성의 덫이 버거웠을 때는 페미니즘을 배웠다. 이들이 모두 한국철학이었다. 책도 책이지만 서로의 아픈 이야기들에서 배운 것들은 잊히지 않았다.
가족 같았던 너도나라가 소중해서 한국철학을 깊게 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한국철학이 설 자리는 없었다. 실로 한국철학은 엿도 안 바꿔줄 정도로 값을 안 쳐준다. 가장 진귀한 이야기가 가장 홀대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어쩌면 스펙도 커리어도 먹고 사는 것도 안 되는 학문을 하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 잔인한 땅인지도 모르겠다. 여차저차 너도나라의 막내였던 나를 남기고 모두 서른 즈음에 제 갈 길 찾아서 떠나갔다. 마음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임의 생성과 소멸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가 잘 살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비보가 찾아왔다. 연결된 누군가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함께한 누군가는 우연하게 살았다. 박채영 주연 김보람 감독의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의 마지막에 흐르는 정우의 노래 「양」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내가 더 노력할 테니까 살아만 줘, 살아만 주어요.” 그때 마음이 이랬던 것 같다. 나는 어렸고 주위의 비극을 마주하는 법을 지금보다 몰랐다. 이때 맺힌 한은 ‘앎은 앓음’이라는 말로는 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아픔과 비극에 대한 것들은 확장되어 기후위기가 되었다. 어렸을 적 살았던 인도의 고향 같은 지역이 가라앉아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례식에서 이해한 기후위기를 미래의 추상적인 위기로 생각해본 적 없다. 기후위기는 내가 알고 살고 사랑한 땅과 사람들의 숨을 앗아가는 실재하는 위기이다. 다시 돌아보니 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부서지는 세상 속 평온한 시스템 뒤로는 죽어가는 생명들로 아비규환을 이루었다.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 뒤로 뭔가를 살리겠다는 명목으로 나와 곁을 돌보지 않고 기후활동가로 살았다. 기업과 정부를 대상으로 단상점거, 단식농성, 기후재판 등 할 수 있는 것은 가리지 않고 다 했다. 우울, 불안, 공포, 죄책감, 참을 수 없음 등 온갖 무너지는 감정이 마음에 가득 찼다. 그즈음 받은 엄마의 문자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아마 가덕도 신공항 반대 직접행동으로 부산 경찰서 조사를 받으려 내려가는 기차 안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학생운동을 하다 구치소에 간 날 펑펑 울던 할머니의 표정이 기억난다며 말했다. “우리가 너를 그렇게 키운 것은 맞는데,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고 데리고 다녔던 것 맞는데, 막상 네가 그렇게 가겠다니까 마음이 미어져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의 마지막 석탄발전소를 막으려는 내 마음부터 그걸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까지, 정말이지 기후의 마음은 미치고 환장하겠다. 얼마 전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9. 24 기후정의행진에서 한국사회가 기후위기를 안 지 3년이 되었다는 것을, 내가 미친 지 딱 그 정도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운이 좋았는지 몸 성히 큰 사고 안 나고 지나왔지만 동시에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뜻을 함께하는 소중한 동지들이 있는 수많은 조직과 네트워크에 속하게 되었지만, 근본적인 어떤 뿌리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공허함이 컸다. 내 딴에는 맺힌 한을 승화하려는 시도였는데, 죽은 친구에 대한 애도의 방식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한 사람 못 구하니 세상에 대해서 헌신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안 괜찮은 것 같다. 명분과 사명을 동력원으로 삼는 것이 우리 시대에 괜찮을까. 지속가능성, 탈성장, 돌봄 사회, 녹색 전환 등 내가 말하는 가치와 내가 사는 삶이 엇나가는 것을 어떻게 다시 맞추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 무렵 어쩌다 지리산에 갔다. 문명 전환을 위한 지리산정치학교의 장이 열렸다기에 찾아갔다. 지리산정치학교는 도법, 여류, 남곡, 이렇게 세 선생님이 기후위기의 절박함에 감응해 연 자리로 전국 곳곳에서 전환을 일구는 이들을 모신다. 남원의 절 실상사 선재집에는 불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생명평화 심볼이 그려져 있다. 첫 만남에 여류 선생님은 정부의 가덕도 신공항 결정에 어찌 그럴 수 있냐며 엉엉 울기도 하시고 세상을 꾸짖기도 하셨다. 내가 여기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이제는 자취를 감췄다고 생각한 전설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이들이 있었다. 함석헌, 장일순, 김지하, 김종철, 문순홍 등 지금 나의 조상이 된 선생님들의 친구와 제자들. 그러한 녹색 1세대들을 영적인 지리산 자락에서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국철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떠난 건 아닐까 싶었는데 애당초 내가 한국철학을 놓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후를 말하고 녹색을 품고 살아온 모든 과정이 한국 철학을 연습하는 순간들이었구나.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듯, 한국철학의 색이 어떻게 녹색이 아닐 수 있을까.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하늘이 열린 것 같았다.
2. 살림: 나, 너,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한국철학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여전히 답하기 어렵다. 있는 듯 없는 듯 묘해서 그렇다. 노자의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처럼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사이, 반은 정의할 수 있고 반은 정의할 수 없는 의 모호한 상태로 있는 듯하다. 어디에서 시작할지, 어디까지 나아갈지 정리된 것도 마뜩잖다. 이런 불명확한 지점 탓에 지금까지의 학문체계에서는 한국철학은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묘하고 모호하고 불명확하다고, 존재가 없거나 가치가 없거나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실체가 없기에, 제 자신의 성격이 없기 때문에 다른 것을 자기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제가 타자이기에, 타자 속에서 자신을 상실할 수 있고, 그렇기에 너르게 품을 수 있다. 이는 앞으로 기성의 학문체계를 품어 안고 넘어가는 포월(包越)의 지점이다. 장일순의 말처럼 “보듬어 안는 것이 혁명”이기에.
물론 그럼에도 한국철학을 정리, 정의해보는 것은 중요하기에 오늘도 시도해본다. 나에게 한국철학은 작게는 이 땅에서 우리말로 우리 역사에 바탕을 두고 하는 철학, 즉 한반도 인근의 지역적 특성을 지닌 시공간에서 형성된 언어와 문화에 바탕을 둔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크게는 기후·생태 위기 속에 기성의 모든 질서와 철학이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배제되고 경시되어 왔던 변방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이 발아하는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창할 것 없이 역사와 시대에 바탕을 둔 자연스러운 설명이라 생각한다.
나는 한국철학의 배타적 우위를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종종 국수적 민족주의로 혹은 종교적 확증편향으로 한국철학을 오해하는 이들을 본다. 그러나 한국철학의 문법이 적대의 논리를 띈다면, 그것은 보듬어 안지 못한 것이다. 소박하게, 나는 내가 이 땅에서 나고 자라 우리말을 씀으로 한국철학을 말한다. 만약 인도에서 태어났다면 -분명 그럼에도 한국철학에 관심을 품고 연결되고자 했겠지만- 인도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그저 몸은 한국에 태어나 자랐지만 정신은 서구의 철학에 덮여 살아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 하는 물음이다. 이 간극이 나의 정신분열증을 만들고, 너의 이해와 공명을 방해하며, 우리의 실패와 좌초를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고 자란 지역의 역사와 맥락에 근거하지 않고 사대적으로 사유하는 관성과 버릇을 경계한다. 그런 습(習)으로는 ‘지금 여기’, 나와 너와 우리의 어떤 문제도 풀어갈 수 없지 않을까.
유럽과 미국을 주축으로 한 철학이 –그 안에도 들꽃같이 귀한 철학들이 존재함에도- 보편적인 대문자 철학(The Philosophy)으로 매김한 지 참 오래도 되었다. 그 역사 속에서 남반구(Global South)로 대표되는 비-서구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수많은 지역의 토착적인 철학은 경시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온갖 미증유의 위기는 철학의 전복을 꾀하지 않고서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기후·생태위기 시대의 유력한 대안으로 등장하는 탈성장(Degrowth) 담론이 탈식민주의를 그토록 중시하는 까닭이다. 이미 토착적 철학의 전환은 시작되었다. 좋은 예로 에콰도르의 헌법에는 좋은 삶을 뜻하는 ‘부엔 비비르(Buen Vivir)’가, 볼리비아의 헌법에는 ‘어머니 자연의 권리’가 명문화되어 있다. 이는 선주민들의 생태적 지혜에 바탕을 둔 언어들이다. 자연의 권리(Right of Nature)를 인정하는 이 흐름들이 토착적인 남반구의 철학들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은 인상 깊다. 나는 한국철학이 이런 세계의 많은 토착적 철학들과 더 자주 연결되고 공생하기를 바란다.
그런 연결과 엮어냄을 위해 지금 붙잡은 말은 살림이다. 살림은 나(자아), 너(이웃-관계), 우리(공동체) 여러 각도에서 살피고 말할 수 있다. 해월 최시형은 “살림은 죽임에 반대되는 의미에서 살림이며, 인간이 자기와 이웃과 자연 안에 내재해 있는 우주 생명을 키움으로써 ‘자아’와 ‘공동체’와 ‘생태계’의 공진화를 도모하는 살림이라”하였다. 동시에 살림은 세계관이자 세계감인데, 살림의 세계관은 근대의 독성이 극에 다른 죽음의 문명에서 생명이 살아나는 생태 문명으로 전환을 내다보는 세계관(世界觀)이다. 그리고 죽어가는 문명이 피부의 감각으로 먼저 와닿고 그 연결됨 속에서 상호작용, 물질대사, 피드백한다는 점에서 살림은 세계감(世界感)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죽어가는 지구와 사회를 살려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시대는 경제가 생태를 잡아먹은 꼴이다. 사람이 물과 공기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경제가 생태 속에 묻어들어가(Embeded) 있다는 사실을 잊은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한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의 신화 이면에는 사회와 자연을 ‘투입’해 강한 독성의 경제를 성장시켜온 죽임의 역사가 있었다. 이 역사가 남긴 과제는 명료하게, 생태와 경제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생태(Ecology)와 경제(Economy)를 살림으로, 생태학과 경제학을 살림학으로 다시-번역하자고 제안한다. 이미 생태와 경제는 공동의 집과 관리를 뜻하는 라틴어 오이코노모스(οiκονόμος)에 언어적 기원을 두고 있다. 생태와 경제의 관계는 죽고 죽여야 하는 상충관계가 아니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처럼, 생태가 경제를 품고 있다. 생태와 경제를 살림의 렌즈로 다시 살펴볼 때 실제로 세계를 살리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철학이 그렇듯이, 살림도 참 역설적인 말이다. 죽임의 역사가 살림의 역사를 요청한다. 공기처럼 존재하던 생태와 경제의 붕괴가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기후위기의 심화는 녹색전환 담론을 요청하고, 생태학살(Ecocide)과 같은 비극적 사태는 급격한 전환의 바탕이 된다. 이는 살림이 전환의 동학(動學)이라는 점을 설명해준다. 전환은 생(生)과 떨어뜨려 놓을 수 없이, 내가 살기 위해서, 내가 너와 살기 위해서, 우리가 살기/살아남기 위해서 전환을 말하게 된다. 살림은 그런 면에서 전환을 피워내는 놀라운 흐름(流)의 이름이겠다.
3. 풍류: 아름다운 번(범)개벽파
계속 한국철학을 찾아 여정을 다니고 있다. 먼저 길을 걸었던 이들 덕에 외롭지 않고 수월히 배울 수 있어 감사하기 그지없다. 다만 먼저 다시 개벽을 말해왔던 이들의 깊은 수심이 느껴진다. 다시 개벽을 말하는 그간의 시도들이 ‘가장 정성을 들였고, 가장 반응이 없었고, 가장 오해를 받았다’는데…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분명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그래서 단호하고 단단하고 단아하게 마음먹어야 한다. 우리는 실패한 적 없다. 씨알이 당장 싹트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의 조급한 기대이지 않을까. 하늘만 바라보면서 한탄하다 보면 땅 밑에서 자라나는 싹들을 놓치기 쉽다. 발아되지 못했다고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이 씨알이고 나무인 한에서 우리에게 희망의 영역은 늘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흐르는 물에 씨를 뿌리는 수고스러움을 멈추지 말자.
요새 곳곳에서 싹이 움트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다시개벽』잡지를 시작으로, 『주역』과 『도덕경』과 동학 경전을 바탕으로 곡성에서 발아한 <이화서원>, 원주의 무위당 장일순의 뜻을 이어받은 <생명협동교육관>, 남원의 실상사에서 이어지는 문명 전환을 위한 <지리산정치학교>, 한국사회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가는 <다른백년>, 당면한 지구적 전환에 대응하는 <지구인문학연구소>, 생명사상을 받아 포월하는 <생명사상연구소>, 새로운 삶의 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넥스트젠>과 <지리산게더링>까지 이렇게 다채로울 수가 없겠다. 몇 년 사이에 우리는 여실히 넓어지고 깊어지고 많아졌다. 9.24 기후정의행진 가운데에서도 잠재된 개벽을 읽은 것 같았다. 적녹보라를 가리지 않고 수만 명의 다양한 깃발이 휘날리는 게 보이고, 행진의 앞머리에서 풍물패가 치는 굿이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수만 명이 문명과 체제를 전환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그날 계시를 받은 듯 피켓에 “기후정의, 녹색전환, 생명평화”라고 적었다. 개벽의 때는 슬그머니 범 내려오듯 오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요새 이것만 생각하면 행복하다. 어느 날 번개처럼 뭐가 움텄다. 이름하여 번(범)개벽파다. 나, 희연, 지용 삼총사가 『다시개벽』 잡지에서 글로 스치고 <이화서원>에서 만나 도원결의로 이어졌다. 우리는 개벽 3세대라 할 수 있다. 개벽 1세대와 2세대는 폄하되고 잊힌 개벽의 사상과 운동을 발굴해 혁명과 생명으로 재해석했고, 이런 선배 세대의 학문적 노력과 운동을 계승하여 가고 있다. 우리의 특징은 번개의 시대적 긴급성과 범(汎)의 포괄성을 가져가는 점에 있다. 우리는 각자의 학문을 깊게 알고, 서로의 얽힘을 넓게 가져가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 [다시 개벽 포덕문]개벽, 살림, 풍류의 한국학」의 이름으로 전주에서 열린 한국문화인류학회의 무대에 섰다. 내가 살림을, 희연이 개벽을, 지용이 풍류라는 화두를 살펴보았다. 앞으로도 이 틀을 바탕으로 한국철학을 발굴하고 발전시켜 가려 한다. 연구도 연구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우정이 중요하다. 단순히 같은 시공간에 있음을 넘어서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만남을 통해 새로운 길을 내고자 한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우리가 되고자 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부서지는 지구를 사랑하는 앓음의 마음으로 우리가 처한 시대의 길을 알아가려 하니, 많이 응원해주시길. 비극이 곳곳에 넘실거리는 참 아픈 세상이다. 그러나 겨울은 금방 끝난다. 다시 오는 봄에 천지가 개벽할 것처럼 아름답게 겨우내 죽지 않은 꽃과 나무들이 살아날 것이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말로 긴 이야기를 갈무리한다. “내 한 몸이 꽃이면 온 세상이 봄이리.”
사진. 9.24 기후정의행진 마지막 트럭 위에서 기후정의 녹색전환 생명평화
사진. 지리산에서 번(범)개벽파
『다시개벽』도반들께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물』의 편집위원으로서, 이런 세상에서 좋은 잡지를 펴내는 일을 고민하고 수행하는 『다시개벽』도반들께 깊은 애정과 연대를 느낍니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양 잡지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전환을 위한 양대산맥 같다고(혹은 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바람과물』겨울호를 편집하고, 『다시개벽』겨울호에 기고하면서 그 생각이 더 깊어졌습니다.
이번 겨울호는 가히 양 잡지의 콜라보레이션 특별호라 할 수 있겠는데요, 제 글 “개벽, 살림, 풍류”을 포함해서, 저희 편집인이신 한윤정 선생님의 인터뷰가 실렸지요. 이 만남으로 우리의 우정이 얼마나 깊어질까 설레이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네 글자 이름의 계간지라는 점 외에도 공통점이 많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내건 개벽과 전환이라는 낱말의 어감입니다. 동학에 사상의 뿌리를 두고 개화도 척사를 품어안는 ‘개벽’을 외치는 것과, 생태학(ecology)에 뿌리를 두고 낡은 환경 담론을 넘어 ‘전환’을 말하는 것은 같은 뜻을 다양한 언어로 찾아가는 과정이겠습니다. 생각하면 저희『바람과물』잡지 이름도 개벽사상가 김지하 시인이 지어주셨다고 하니 그 인연이 더욱 깊겠습니다. 제가 애정하는 양 잡지의 소개말을 옮기면 그 공통결이 더 잘 드러날 듯합니다.
“바람은 우리의 숨과 정신이며 물은 우리의 몸입니다.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물』은 기후위기, 생태환경, 비인간존재를 위한 매거진입니다. 기후위기 대응과 생태적 전환을 위해 탈탄소 사회의 미래를 상상하고 제안합니다. 탄소중립을 위해 일상생활을 고민하고 바꿔내는 이들과 연대하면서 친환경적 삶이 정착되도록 노력합니다. 탈탄소 사회는 여성과 미래세대, 나아가 비인간존재의 권리를 확대하는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기에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생태적 전환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 발언, 실천을 모아냄으로써 우리 미래에 대한 담대한 상상을 펼칩니다.” – 한윤정『바람과물』 편집인
“『다시개벽』은 백 년 전 『개벽』의 복간이다. 잠들어 있던 용암이 큰 지진을 통하여 분출하듯이, 억눌려 있던 생명의 꿈은 역사의 위기 속에서 그 본모습을 드러낸다. 백 년 전 『개벽』이 그러하였다. 안으로는 봉건 제도의 억압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지배 이데올로기, 밖으로는 서구에서 밀려오는 근대 물질문명과 제국주의 침략이 인류사적인 위기를 낳았다. 그 안팎의 위기 속에서 『개벽』은 모든 종류의 변화를 모색하는 전 세계 담론의 첨예한 각축장이자 거대한 용광로로 기능하며, 당대의 세계적 위기를 한국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위기의 극복 방향을 한국의 목소리로 제시하였다. 그로부터 백 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인류사의 위기가 안팎으로 닥쳐온다. 이에 『다시개벽』은 『개벽』을 다시 연다.” – 홍승진 『다시개벽』 편집장 바람과 물을 합하면 『주역』의 59괘인 풍수환(風水渙) 괘가 나옵니다. 환 괘는 전환의 ‘환’자로 빛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으로 흩어져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환기되어 “공기가 바뀌면 맑은 공기로 숨을 쉴 수 있고 새로운 공기로 숨을 쉬면서 창의적인 활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전환과 개벽까지는 단번에는 어렵더라도 이를 위한 환기 정도는 『다시개벽』, 『바람과물』양 잡지를 만들어가는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침 바람과 물의 빛깔과 온도가 바뀌는 환절기입니다. 목 따뜻하게 두르고 자주 차를 우리시길 권해드립니다.
『바람과물』 편집위원 윤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