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9
1.
인생에서 잊지 못할 배움과 금방 잊힌 배움은 무엇인가? 함께 읽은『나의 덴마크 선생님』에 나오
는 IPC(International People College) 차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생각해본다. 그중 금방 잊힌 배움은 이미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잊지 못할 배움하면 장면 하나가 바로 떠오른다. 학교의 중앙에 놓인 이층 원형 도서관 ‘지혜의 숲’에 재단 교장과 이사장, 교사, 학부모, 학생 등 구성원 모두가 모여있다. 야심 한 시간까지 고성도 오가고 눈물 섞인 발언도 오갔다. 결론은 나지 않고 정적이 흐르는데 철학자 할아 버지가 손을 들었다. “우리 여기서 잠깐 쉬고, 다 같이 티타임 한 번 가질까요? 나는 우리가 대화로 우 리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차는 내가 끓일게요.” 이 소박한 제안은 결국 받아들여지 지 않았고 학교 재단과 전교조 교사들은 법적 절차에 들어섰다. 나는 해고 위험에 처한 교사들의 편에 서는 게 맞다고 생각해 언론사와 정당과 함께 재단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데 함께했다. 교무가 되려던 가장 친한 친구를 그 뒤로 몇 년간 보지 못했다. 인가형 대안학교라고 불리는 곳이었지만, 대 안교육을 하기에는 외부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녹록지 않았다. 학벌사회의 체제 속에서 학생들 대학 을 잘 보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모습과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원불교에 기반해 전통적 질서로 공동체 를 강조하는 재단과, 교육자로서 교육권을 지키고자 했던 선생님들의 갈등은 시작은 작았지만 미룰 수 없는 국면으로 흘러갔다. 공동체로 스스로를 생각했던 학교는 그 뒤로 절반 정도는 무너진 채 오래 후유증을 겪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섣부른 요약이다.
얼마 전에 학교를 다녀왔다. 졸업 이후에는 거진 처음이다. 선생님이라고 불리고 나서 왠지 모르게 가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떠나고 싶었는데 벼가 누렇게 익은 지평선이 펼처진 전라도 에 도착하자,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내 유년시절을 보냈구나 하는 감동이 일었다. 선생님들은 체 게 바라와 장 폴 사르트르를 외치던 내가 평화라니 많이 순해졌다고 놀라며 놀렸다. 학교를 나오는 길 오 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 원불교도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학문과 활동 모두 열심히 했는데 영성이 남은 것 같다고, 지금의 나에게는 사회보다 수행이 먼저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다시 뵐 수 없었던 전 교장 교무님께 법명을 받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오묘한 놀람의 표정으로 참 좋다고 고맙다 고 그러자고 했다. 무엇보다 곧 다가오는 연말을 맞아 나의 철학자 할아버지, 야옹 선생님을 뵈러 일 본 교토에 간다. 선생님 댁에서 며칠 묵으며 그때 갖지 못한 티타임을 가지자고 할 예정이다. 꽃피는 학교에 한 해 동안 오면서 내게 생긴 변화들이다.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 시작인 것 같다. 아무래 도 학교는 세상에 눈뜬 내가 가족 다음으로 접하는 첫 공동체가 된다. 그 관계들의 무수한 엮임 속에 서 있었던 일들은 평생 가져가게 된다. 사랑이자 상처다. 공속하는 이 경험은 나를 어떤 길로 이끈다. 좋은 교육,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교육 등 온갖 이야기를 꺼냈지만 사실 모두가 알듯이 완벽하고 이 상적인 교육 같은 게 있지는 않다. 좋은 부모, 좋은 친구도 마찬가지다. 내 부모이고, 내 친구일 뿐이 다. 이 영역은 선택을 넘어서는 것 같다.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우리가 있는 그 자리가 절이지 여기 가 수행터다. 나는 무수히 그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갔던 것 같다. 후회도 꽤 했다. 내가 친구들에게 할아버지의 티타임 제안을 공식적으로 우리 학생들이 받아서, 안에서 풀어볼 수 있는 것들을 한번 시 도해보자고 했으면 뭐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시간은 거스를 수 없지만, 시간이기에 앞으로 흘러간다. 지금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고 내가 오는 학교가 있다. 아픈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면 서 내가 과거의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을 앞에 있는 여러분과 나눌 수 있다. 교육이라는 건 그런 점 에서 자기교육이면서 서로교육이지 싶다. 시간의 차이를 가지고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장으로 서 학교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가깝든 멀든 학교에서 떨어져 있을 수 없는 것 같다.
꽃피는학교에서 강의를 해줄 수 있냐고 김진 선생님이 제안을 건네주셨을 때 이 생각들이 스쳐갔다. 내가 짧은 생에서 풀지 못한 나의 숙제들을, 내가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것들을 나누면서 풀어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스쳐가서 하겠다 했다. 단순히 마음과 기억에 대한 것뿐 아니라 활동가이자 연구 자로서의 과제도 있다. 학교가 남긴 상처는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기에, 내가 했던 첫 운동은 학벌사회 폐지를 위한 교육운동이었다. 대학 입시 위주의 경쟁 시스템이 실제로 아이들을 죽이고 있었고, 죽어 가는 이들에 나 또한 포함되었다. 사회를 인지하고 사회에 나서는 첫 기억이 서로의 서로에 의한 경쟁 과 상처들이라면 그것은 만병의 근원과 같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열심히 학 벌사회와 입시 위주의 경쟁시스템 구조를 깨려고 했지만, 몇십 년간 지속되온 이 체제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었고 넓게는 한국형 자본주의에 연동되어 있었다. 1998년 IMF 이후 자리잡은 경 제 체제는 생존을 위한 경쟁을 기본으로 하며 사회적 신뢰도를 약화시켰다. 칼날 같은 비판으로는 바 꾸어낼 수 없다는 고민을 이르게 했다. 보다 구 세상을 엎기 위해서는 새 세상을 보이는 것의 필요를 느껴 다시 대안교육으로 마음을 옮겼다. 정리하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꽃피는학교에 오면서 대안교육 이 거쳐온 지난 과정들을 톺아보고 한계와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정리하면 한국의 대안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히피 혹은 엘리트, 왜 특수한 인재 혹은 낭만주의 예술가만 길 러냈는가? 10년 단위로 생각하면 대안학교는 2000년대 초의 1세대, 2010년 대의 2세대를 지나 얼마 전부터 3세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대를 구분할 것 없이 공속하겠지만, 1세대 대안교육 은 제도에 반하여 나온 반(反)-공교육의 성격이 강했고 2세대 대안교육은 사회체제에 동화된 반 (半)-공교육의 성격이 강했던 것 같다. 주류의 문법에 반대하나 닮아가나 그것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 에서 엇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안교육의 제도화를 크게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인가형으로 전환하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초기의 사회문제에 강하게 연결되던 흐름은 쇠한 면이 있다. 주목하 고 싶은 것은 후자의 친구들, 각종 감수성이 드높게 자라나 이상 사회를 꿈꾸나 사회를 벗어날 수 없 는 슬픈 운명을 지닌 이들이다. 이 교육의 과정에 있어왔던 이로서 묻게 된다. 대안교육은 학생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는가? 혹은 살릴 수 있었는가. 한국의 높은 자살율은 비극이다. 세월호도 이번의 참사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이다. 나는 대안학교를 휘감았던 질문, 공교육을 두고 이상적인 이념과 함께할 것인가, 체제 속에 안주할 것인가의 진보의 질문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초기 교육 을 했던 70~80년도에 민주화운동을 바탕으로 했던 그 세대는 모 아니면 도와 같은 이분법적 ‘진보’의 세계관을 대안교육 전반에 드리웠던 것 같다. 사회가 진보해왔다는 것, 완벽한 대안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큰 실망과 대립의 선택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 역설적인 세 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어려운 세상에서) 나와 너와 우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의 살림의 질문 이다. 어쨌거나 시간은 흘러 이제 3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나오는 것 같다. 924 기후정의행진 때 대안 학교 기후정의 연대선언을 발표한 이들이 있었다. 2019년 일찍부터 청소년 기후행동을 준비하면서 현재의 위기를 절절하게 받아들였던 이들이 계속 연결되고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슬픈 한계와 가능 성을 동시에 보게 된다.
상처와 갈등을 다시 사유하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상처는 안 받는 것이, 갈등은 없는 것이 이상적 인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이것은 공기와 물 같은 것이다. 사랑하는데 상처받지 않을 수가 있는 가? 세 명 이상이 모인 공동체에서 갈등이 없을 수가 있을까. 사회에 관련된 질문은 교육이든 정책이 든 화두는 다 비슷하다. 사회적 경제의 뿌리를 이루는 이론 중에서 시민 경제학을 말하는 이들은 “상 처받을 위험을 감수하는 사랑의 원리로 경제를 재조직하자”고 말한다. 돌봄(Care) 운동을 하는 이들 이 잘 아프고 잘 상처받고 동시에 잘 치유될 질병권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궤에 있다.
여러 번 말해왔지만,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지구가 붕괴를 앞두고 살아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일 어나고 있다. 최근 기존의 경제 문법을 바꾸자는 여러 운동들을 살펴보면 인상적이다. 바르셀로나에 탈성장 대학이 설립된 것이 가장 좋았다. 이것은 당연히 기후생태 위기 등 물리적 조건의 변화에 영향 을 받는다. 자연 안에 묻어든 사회와 그 안에 묻어든 경제다. 자연과 사회 조직 원리와 구성이 바뀌고 있는데 예민한 교육이 그대로일 수는 없다. 기후교육, 생태교육, 전환교육 무엇이라고 부르던 인상적 인 대목이 여럿이다. 이 교육들은 먼저 커리큘럼을 재편한다. 분과 학문 체계가 아니라 사건 특히 문 제 별로 분리해서 교육을 이룬다. 지식 위주의 교육에서 경험적 교육으로 바꾼다. 내용 위주의 교육에 서 관계의 교육으로 변해간다. 생태전환교육의 그림을 계속 상상하며 가야한다. 전환은 상상력에 의 존한다. 친구 지용은 생태기후교육에 있어 지구적 세계관과 세계감을 전환하는 교육, 풍류적 접근, 지 역 이야기와 모델 만들기를 제안했다. “나와 너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세상을 어 떻게 바라볼지, 그리고 어떻게 관계맺을지”를 기본으로 질문하자는 것이다. 지구살림이 우리(나)살림 이라는 생각과 이론을 감각하고 체험하며 문화를 통해 확장하자는 제안이다. 이 사례로 세계생태마을 네트워크의 생태마을 디자인 교육, 조안나 메이시의 재연결 작업, 슈마허 컬리지의 프로그램을 예시로 들었다. 이 흐름들의 뿌리로 다양하지만 나에게는 한 장면이다. 1965년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 있 는 CIDOC(The Centro Intercultural de Documentación,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라는 한 도서관이 자 공동체에서 이반 일리치와 그 친구들이 시작한 만남이다. 이 모임의 이야기는 들을수록 흥미롭다. 수도사였던 이반 일리치가 연구하고 수양하던 공간에서, 그 소식을 듣고 찾아온 세계의 우정 가득 친 구들이, 밥 지어먹고 허구한 날 세미나를 열더니 결국 세계의 학계를 뒤집어 놓을 책들을 만들어냈다. 근대 교육철학을 엎은『학교 없는 사회(Deschooling Society, 1970)』이 대표적이다. 대가속의 시대 라고 불렸던 그 격변의 시기에 모인 사람들이 가진 시선과 전환의 열망이 스며들어있는 것이 인상 깊 다. 지금 우리의 시대가 요청하는 전환교육은 이런 그림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대안학교 3세대 에게 주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공간의 모양이다.
꽃피는학교에서의 시간들을 보내며 예상은 늘 빗나갔지만 참 뜻깊게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꽃피는 학교에 오고가며 좋은 기운을 많이 주고받았던 것 같다. 해러웨이의 “이야기는 이데올로기보다 힘이 세다”는 말처럼 내용은 변변치 않았지만 고민을 대하는 태도가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달라졌다고 생 각했다. 생태전환교육을 설파하고자 했던 4차시 강의계획을 서로의 이야기를 건져 올리려는 워크숍 으로 수정한 것이나 『나의 덴마크 선생님』을 쓴 혜선님을 모신 것도 인연이 깊다. 지리산 산골짜기 에서 온라인으로 얼굴 뵙던 것을 처음으로 여름과 가을에 이곳에 와서 고민과 대안 이야기를 나누고 했던 장면 모두가 좋았다. 내 말씀에 화답하여 924기후정의행진에도 손잡고 가시고 트럭에서 나를 봤 다고 하는 모부님들의 모습이 참 좋았다. 언젠가 아버지..?가 된다면 이렇게 고민을 나누며 공동의 것 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좋은 모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여전히 있지만 그 고민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조금 나을 것 같다. 지나가서 귀한 건지 모 르겠지만 공동의 고민과 추억을 같이 겪는 건 이래도 저래도 참 귀한 것 같다. 부족하고 미숙했지만, 함께 한 해를 따라와주셔서 감사하다.
통틀어 교육은 사회의 상처이자 사랑이고 그 당연한 자연율을 받아들이고 전환을 일궈갈 때 아름다 울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함석헌이 “앎은 앓음”이라고, 정현경이 “앓음은 아름다움”이라고 했 으니 우리는 이 이야기를 앓음-앎-아름다움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부제처럼 불안과 우울 의 시대에 서로 의지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 영광이었다. 특별히 와주신 정혜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 다. 꽃피는 학교의 선생님들과 모부님들께 이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용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