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이다. 오늘은 닫는 금요일이다. 3월의 삼분의 일이 흘러간다. 나는 정독도서관에서 하루의 시작 전에 마음을 다잡고 있다. 오전의 마음을 다 잡는 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대부분의 시간은 방황에 쓴다. 마음이 갈피를 잃고 방황하는 것이 매주 찾아오니 애 키우는 것 마냥 쉬운 일이 아니다. 양극성 중에서 우에 더 기울었다. 그래도 화창한 햇볕을 맞으면 살아날 것 같다. 생각하니 나에게 가장 힘든 시간은 1월과 2월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계절을 타는지라 한 해를 살아갈 막막함이 닥쳐오기 때문인 것 같다. 훌쩍 커버린 자기를 이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모종의 감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의뭉스러운 표정. 우리가 살아갈 길은 이 표정과 마주치는 일이다. 본능적으로 정신을 흩트려 뜨리려는 관성과 몸의 타성에 젖어있는 안일을 지금은 이마저도 사랑할 수 있다. 조금 과장이지만. 가장 못난 내 모습을 마주 보는 것에서 모든 진실이 시작된다고. 얼마 전 긴급행동의 2차 형사 재판 마지막 공판에 다녀온 후 생각했던 것이다. 실은 지난 삼 년이 내게 남긴 것은 우정뿐이다. 나의 실력은 아마도 꽤 정체되어 있다. 반면 열정은 꽤 사라져 있다. 슬럼프라고 하기에는 희미하고 장기적이고 서서히 찾아와서 조금 민망하다. 나는 아직 생태학살 연구를 마치지 못했고 이제는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고, 나는 더 이상 기후라는 시대와 대의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 과몰입과 초자아로부터 빠져나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힘을 빼고 보니 그것이 내가 태울 수 있는 대부분의 연료였던 것이다. 석탄을 쓰지 않기로는 결심했고 어느 정도 끊었지만 다음의 에너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 그게 지금이지 않을까. 나에게 본능적으로 길을 찾아가는 힘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이 방황 끝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냥 고통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을 뿐. 하지만,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깊다. 골반에는 관계의 마음이 있다고 요가 시간에 들었다. 여기가 뭉쳐있는 것은 마음이 응어리져서 그렇단다. 지나온 시간 끝에 나에게 남은 수많은 한들을 생각한다. 앞으로 꼭 삼 년의 시간이 흐르면 이 한들은 사라질까. 속세에서 모든 인연과 모든 업은 한이 된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도 하겠다. 불연기연(不然其然) -'그렇지 않다, 그렇다' “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언어를 통해서 각자 위심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내 마음이 곧 한울님을 자각하게 하는 동학의 핵심 논리”-을 생각한다. 삶은 모순 투성이고, 나도 모순 투성이다. 그 투성이들이 왁자지껄 살아가는 게 우리의 행성이고 사회겠다. 이 정도 하면 조금은 편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