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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Mar 12. 2023

2023.3.12. Rmwjrdla

2023.3.12. 끄적임     

풍경, 거울, 언어, 서릿발, 끝내, 빗방울, 피눈물, 차가운 돌바닥, 굳은살, 정, 청, Deep, 마음과 깊이의 관계, 도토리들, 우포늪, 칼날 같은 바람, 영하, 기계, 뜻을 모르고 쓰는 말들 예컨대 AI, 존재, 그리고 관계, 믿음, 말들과 표상, 농부와 유목민, 의두, 미련과 애도, 방황, 겨울바람과 꽃, 산수유, 어떻게 꽃은 노란데 열매는 이토록 빨갛다, 수중에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 낳지 않는, 낫지 않는, 예술 같은 건, 심상, 그림, 부서버륀다고, 부셔져버린다고, Nomad, Nobody, 고요함, 이룰 수 없는 고요함, 책임, 훌훌 털어버리고, 옛친구, 욕망, 나의 의미, 너의 말들, 그 시절 나의 전부 였던 그린마트, 그 인연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 그런 일요일, 떠나가는 배, 안개, 새, 삶, 결국 내 생에 생이 화두 아닌 적이 있었던가, 여러 경로를 보고 난 뒤에 고장난 엔지 떨어진 연료, 탈석탄 이후엔, 그 시절 우리의 말들, 그의 길 나의 길, 그녀의 삶 나의 삶, 글, 글이 아니라면, 오늘 저녁은 컵라면, 독약을 삼켜도 약이다, 아름다운 옆, 처음 그 차가운 바닥의 농성장이 기억난다. 그 때도 지각이었을텐데, 나는 한겨울 미끄러운 빙판에 자전거를 타고 더 늦을세라 미끄러져 내려갔다. 처참한 폭격 이후의 녹색당이라는 부러진 나무의 지킴이를 맡았던 한 아즈매는 크레인 위에 올라가서 백발이 새버린 노동자를 지키고자 식음을 전폐하고 추운 바닥에서 새해를 맞고 있었다. 그 새해는 과연 와도 되는 것이었을까. 세어보니 이 년 하고도 이 개월이 흘렀을 것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었던 나의 항로는 스치고 스치던 동대문의 농성장을 지나 쓸쓸한 바람의 한복판에서 추위를 세는 방황길로 접어들었다. 사람이 공간과 연을 맺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오늘이다. 영문 모르고 사명에 들어차 숱한 밤을 새는 둥 마는 둥 부러진 일상을 살았던 그 당사 혹은 연구소도 이제는 이사를 앞둔다. 나는 그 공간을 그리워하게 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리움, 그 한 맺힌 그리움은 내 숙명 중 하나라서. 수행자든 여행자든 자기가 천착하는 대상과 닮아가는 것 같다. 이것은 행운이자 저주다. 원을 닮아가는 나의 옛 친구 하나, 세상을 닮아낸 나의 또 다른 옛 친구 하나, 그리고 거울 보기가 무서운 나 하나. 촛불로 불장난을 하고 플라스틱컵에 바질을 심었던 내가 친구를 보내고 동시대인을 보낸 후에 여기 질긴 목숨줄을 이어가고 있다. 죽음이 두렵지도 슬프지도 않다. 세상이 화나지도 억울하지도 않다. 나의 재능은 세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저 억눌린 눈물샘에 찾아온 재난만 감추고 있을 뿐이다. 지나보면 수없이 많은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지나보면 수없이 잔인한 시간들을 만났다. 자기 팔자를 고쳐서 돌아가거나 조금 빨리 가거나 할 수는 있어도 만날 것은 만나는 법이다. 방랑의 팔자에 방황의 사주를 가지고 난 내가, 내 조상으로부터 내 후손으로부터 선물받은 고통의 끝자락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꽉 찬 가슴에 숨을 불어넣는 것 뿐. 오늘도 어김없이 지는 해에게 지금까지 수많은 날들처럼 작별인사를 몰래 건네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봄인데 엄동설한이다. 사회를 연구하다가 이 공간을 닮아선 나의 오염된 난잡한 신성한 청아함을 불태워야겠다. 성화를 들고 이 파국을 잿더미로 만들어내면 그제서야 잊혀졌던 씨알 하나가 빼꼼 고개를 들고 초록빛을 보일 것이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비극 속에서 희망 같은게 서리고 있다는 것에서 나는 그리고 너는 괴이한 평온함을 맛보는 것 같다. 내가 만든 틀을 내가 부셔버리면서 그렇게 오래전부터 남몰래 나몰래 길어올렸던 샘물을 감사히 들이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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