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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Nov 19. 2018

끄적임 셋

착잡한 마음을 달래는 욕심과 모순 가득한 결론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애써 고인 눈물을 닦아내고 타자기에 손을 올렸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백석 시인의 시구 하나,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더러운 세상이다. 더러움이 도처에 널려있다. 그것들을 마주하면 처음에는 분노가 치민다. 분노는 살의를 부른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인다고 마법처럼 해결될 리 만무하다, 는데 까지 생각이 미친다. 지금의 나는 나약하고 미천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나약하고 미천한 마음만을 부여잡고 있다.      


혀를 차는 습관이 생겼다. 가만 보니까 막막할 때 나오는 것이다. 무언가 ‘결론’이라 부를만한 것이 보이지 않은 채 답답하게만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내가 난관에 봉착한 것을 비로소 느낀다. 

     

이제는 알 수 없다. 고통을 없애기 위한 부단한 노력들이 그다지 소용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과하게 자신해서도 아니 되고, 속세와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일 또한 아니 된다. 가운데 지점 어느 적절한 곳에 머무르려 한다.      


이 괴로움을 나는 어찌 바라봐야 하는가. ‘앎은 앓음이다’는 말이 공감을 넘어 진리처럼 여겨지는 작금이다. 부동산 문제의 실상을 알지 않았더라면 지하철을 탈 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얼굴도 모르는 망나니 한남의 말을 곱씹어가며 분석하고 염병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환경에 관심을 갖지 않았더라면, 어차피 나 죽을 때까지 멸망할 리 없는 이 지구에서 이것저것 파괴하고 죽이다가 고이 떠나버렸을 것이다. 알고 나자 더러운 현실이 직시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우울감이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했다.      


동지가 공유한 슬픔 앞에 나는 어떤 말을 내뱉을 자신이 없어서 슬픈 모음만 눌렀다. ‘난 뭘 할 수 있나, 뭘 해야 하나.’ 그의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이어지는 말, ‘아 말을 말아야겠습니다.’조차 가슴을 후벼 판다. 참담한 무언가 앞에서 맛난 고기를 뜯고 따뜻한 방구석 책상에 앉아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초라하고 공허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잠시 일었다가 사라졌다. 윤동주가 좋았던 이유가 있었다. 이 파국에 고작 시나 쓰고 있어도 되는가 묻던 그의 여리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와 닿았던 이유가 있었다. 부조리한 것들이 도처에 넘쳐흐르는 이 지옥에서 나라는 무력한 짐승은 무얼 하지도 않고 무엇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지금 느끼는 괴로움을 없애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세상의 부조리함에 괴로워하지 않는 내가 되어버린다면, 세상살이가 나를 그렇게 만든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을 테니까. 그러면서도 세상의 괴로움에 내가 잠식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잠식, 아 그것은 일종의 침식이다. 고통이라는 파도에 깎이고 잘려나가 결국에는 무기력하고 우울한 육체만 남아버리는 것이다. 그러지는 말아야겠다. 세상의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 공부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나를 깎고 잘라내지 않고 살아가며, 이 한 생에 걸쳐 조금이나마 바꾸어 가고자 하는, 그런 모순과 욕심 가득한 말을 끄적거리고 있다. vadfm,. dkl’n p f qoperopqfok qwed qe[dfc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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