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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Nov 20. 2018

끄적임 넷

11.20 / 식어버린 커피를 데워낼 온기의 위로

  가을을 좀 세게 타는 것 같다. 이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나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또렷이 떠오르는 게 없는 걸 보면 아마 없다고 해야 할 듯하다. 또렷한 이유를 모른 채 찾아오는 무기력과 우울에 휘말리고 있다. 규칙적인 삶을 살지 못한 채 기분에 잡혀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잘’ 살아가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요즈음의 특이점인가 옛날부터 이어져오던 관성인가 그것을 모르겠다. ‘시도 때도 없는 기분의 널뛰기’는 열여덟에도 하나의 고민으로 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유독 심해진 것은 홀로 있는 까닭일까.


오늘의 하향곡선은 기행문 쓰기에 한참이다가 화장실을 다녀온 후 시작되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배탈이 나 배가 아팠고 꽤 오랜 시간을 변기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잠시 타자기에 손을 올렸다가 때려쳤다. 그리고 원스를 집어 들고 힐링을 시도하다가 눈이 아파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허기를 느껴 토스트 하나를 시켜 허겁지겁 먹었지만 허기는 가시질 않았다. 다만 막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잠시 생각했다. 내가 느낀 허기를 육체적 허기라 부를 수 있을까. 정신적인 허기가 아니었을까.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결핍을 이천삼백 원짜리 토스트로 허겁지겁 채우고픈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무엇이든, 채워지지 않았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게도 겪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제깟 공감능력이 뛰어나 봤자다. 워낙 건강하게 자라난 탓인지 마음의 병, 심리적 질환이라 부를만한 것들을 믿지 않았다. 오만하게도 그런 것들은 나약한 의지 탓이라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내 의지의 영역을 넘어서, 나도 모르는 새 스물스물 다가오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느낀다.


한 친구의 위로로 괜찮아졌다. 세 번째 끄적임을 읽은 친구의, 식어버린 커피를 데울 수 있을 온기의 위로다. 이 자리에 옮긴다. 이 온기를 누군가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은 까닭이다.    


「 최근 ‘사는 일이 다 식은 커피 같을 때가 있다. 함께 사는 일은 어렵다. 헤어져 사는 일은 더 어렵다. 그러니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책에서 읽었어요. 이 말처럼 우리는 사람에게 또는 세상에게 실망하고, 분노하고, 상처 입으면서, 다 식은 커피를 들이킨 듯한 씁쓸함을 느끼면서 살아가죠. 정말 깊게 다치고 다시는 마음 주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도 있지만 모순적이게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고 결국 타인의 온기로 다시 한번 일어나는 것 같아요. 때때로 사람이 밉고 세상이 원망스러울 거예요. 그래도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한 사람에게라도 힘이 되는 일을 해 보자고 다짐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곳에 떨어졌지만 운명이 다 할 때까지 이 지구라는 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므로: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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