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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Dec 19. 2018

끄적임 여덟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을 지나 여덟이라는 숫자를 적는 지금까지도 하얀 한글 창을 열어 첫 문장을 고심하노라면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이 매거진에는 어떤 글을 적어야 할지, 지금껏 끄적여온 것들을 과연 글이라 부를 수는 있는지 말이다. 글보다야 푸념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샌가 늘어버린 222명의 구독자는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의식되는 면이 있다. 새로 쓴 글 하나가, 222개의 스마트폰에 알림을 울려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복에 겨운 고민 같기도 하고.    


‘나는 오늘’ 하루종일 나를 달랬다. - ‘나는 오늘’을 씀에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늘 쓰지 말라고 했던 가르침에 인 반감이 가미되어 있다 - 약간의 우울증을 앓고 있고, 별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는다. 어느샌가 우울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만성적인 것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나라고 특별할 것 하나 없다는 진언이다. 예전에는 정신과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으면 마치 그가 어디 심각하게 아픈 것처럼 놀랬었는데, 이제는 하도 여기저기서 듣다 보니, 감기 걸려 이비인후과 다녀왔다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들린다.   

  

기분이 나쁘고, 자존감이 하락하고, 의지가 사라지고, 식욕이 떨어지는데 허기는 남고, 대부분의 인간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 답답함의 요지는 이 불현듯 찾아오는 우울의 전조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 만성적인 귀찮음처럼 어느 순간 툭 온다. 오늘의 시작은 이랬다. 도서관(디테일을 살리자면 영상자료원)에 앉아 글을 쓰다가 눈 돌려 웹툰을 몇 편 잇달아 보고는 노트북 덮개를 덮었다. 기분 씨가 살짝 이상해 보여서 밖으로 나갔다. 핫도그를 먹기로 했다. 삼천 원이란 부담되는 가격에 특별한 날만 먹곤 하지만 오늘은 기분 씨가 뾰로롱하다니 특별한 날이다. 가뜩이나 연말어쩌구로 이미 12월 잔고는 바닥난지 오래지만 신용카드를 내밀어 1월의 나에게 고통을 토스했다. 미석이(미래의 나)는 현석이를 저주할 게 틀림없다. 정초부터 저주라니, 참 잘하는 짓이다. 핫도그는 몇 입 배어물자 사라졌다. 한 입에 천 원 이려나.. 기분은 나아지지 않고 허기만 조금 나아졌다.

영화를 보기로 했다. 12월 영상자료원의 테마는 ‘영화 같은 사랑’이란다. 라라랜드, 비포 선라이즈, 러브레터, 말할 수 없는 비밀,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타임 등 핑크퐁퐁 로맨스 명작들만 엄선해서 늘여놓았다. 저번에 만난 친구가 레이첼 맥아담스가 좋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어바웃 타임>을 집어 들었다가 괜스레 사랑이 하고 싶어 질까 봐 내려놓았다. 연말에 사랑 어쩌구로 뒤숭숭해지고 싶지 않다.   


홍상수의 <우리 선희>를 집었다. 영화광 친구가 꼭 보라며 추천했고, 홍상수 감독의 명성이 워낙 높아 언젠가 봐야지 싶었던 영화라 툭 봤지만 나는 별로였다. 단적으로 여주를 다루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질문을 품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선희를 세 명의 남자들이 관음의 시선을 보내며 맴돈다. 한심한 그리고 한물간 남성 캐릭터에 거부감이 일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나는 연기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머저리니까.

 

이게 다 머리카락 때문이다. 일개 단백질구성복합체 따위가 나를 괴롭혔다. 무작정 방치 중인, 매일 생애최고길이를 갱신 중인 머리카락을 오늘은 비대칭으로 가르마를 다. 나쁜남자 느낌이 나서 그냥 두었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한쪽 눈을 반쯤 가려서 몇 시간 지나어지러웠다. 가뜩이나 안경의 두꺼운 렌즈와 폰과 노트북의 블루라이트 만으로도 어지러워 죽겠는데 머리카락마저 말썽이라니, 피곤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이랑님 노래를 들었다. 식상하지 않은 표현으로 그녀의 노래를 설명하고 싶은데 무슨 단어를 골라도 식상하기 그지없어 단어보따리 좀 채워놓을걸 하고 한탄 중이다. 두 번이나 감읍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에서 한 번, <잘 듣고 있어요>에서 한 번.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부분에서 울었다. 이랑 님은 마음에 없는 말을 지어내지 않는구나 싶었다. 무표정으로 담담하려 하지만 차마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의 삑사리가 보풀처럼 일어난 것, 거기서 나도 터졌다. 이랑님 잘 듣고 있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잘 듣고 있어요


한 페이지를 꽉 채워낸 지금마저도 이게 뭐하는 짓인가 모르겠다. 끄적임 여덟이 아홉이 되고, 아홉이 열이 되고 열하나, 열둘을 넘어 스물 서른 마흔이 되면 그제서야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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