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장윤석 Jan 19. 2019

노인과 버스

간만의 나들이 길에서

지난 며칠을 옥죄던 미세먼지가 물러가고 새파란 하늘이 다시 찾아왔다.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피아노를 뚱땅거리니 천국이 따로 없다. 나들이나 가야지 싶어 출판단지를 갈 채비를 했다. 글 쓸 노트북이랑, 그림 그릴 소묘 도구랑, 집중해서 읽을 책 한 권이면 하루가 금세 저문다. 파-아란 하늘 아래서는 뭘 해도 만사 오케이.


나는 파주에 산다. 태어난 건 서울. 주변 위성도시로 이사를 전전하며 살아왔다. 전세계약 2년이 끝나면 주변의 신도시 아파트로 옮겨가는 식이였다. 그래서 나는 일생을 갓 지은 새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아파트로 빽빽이 들어찬 신도시 지역구는 도저히 정을 붙이기가 어렵지만 파주는 그나마 낫다. 출판단지가 있어서 그렇다. (정식 명칭은 출판도시지만 출판단지라고 부르는 걸 더 좋아한다. 어감이 좋아서랄까)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심학산을 지나면 임진강 오른편에 위치한 출판단지가 나온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길이다. 그 길 사이로 토토로 고양이 버스를 닮은 083 마을버스가 다닌다. 오늘은 이 버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모든 게 다 새 것인 신도시에서 이 083 버스는 보기 드문 구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기사님과 인사하는 것조차 낯설어진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083버스 안에선 안부를 묻는 말소리가 퍼진다. 오늘은 송해 할아버님을 닮은 기사님께서 넉살 좋은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신다. 따라 웃으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드렸다.


같은 버스인데도 서울로 나가는 버스는 인사 한 마디 오가지 않는다. 기사님은 단지 생계를 위해 버스를 몰고, 정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액셀을 밟고, 손님들은 정해진 목적지까지 정해진 요금을 내고 갈 뿐이다. 언젠가 기사님이 4차 혁명과 인공지능의 조류에 휩쓸려 딱딱한 금속으로 대체된다고 해도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모를 테다. 언젠가 살짝 지각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다가 간절한 눈빛을 보냈건만 그 기사님은 휙 쳐다보고는 마셨다. 문은 얄리지 않았고 당황하고 무안해서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삼십여 초를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돌아온 버스안내양'을 소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교과서에서 시대의 조류에 없어져버린 직업으로 꼽히던 버스안내양이 저 전라도 산골짜기 마을 어딘가에 다시 생겼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이 노인만 남은 시골에서 버스는 교통수단의 전부이자 일개 버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일종의 만남의 지평이랄까. 버스안내양은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님 할아버님을 버스에 안전하게 타도록 도와드리는 것은 물론 어떻게 지내셨냐고 근황을 묻고 말동무가 되어드린다.


"아이고 어머님 저번 주에 병원 다녀온 데는 좀 괜찮으셔유?"

"아이고 그럼그럼. 내가 우리 안내양 없음 못 살아."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데 거창한 이론들과 정책만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노인복지라며 거대한 요양원을 짓고 시골길을 아스팔트로 뒤덮는 것 보다야 훨씬 좋아 보였다.




다음 정류장에서 할아버님 한 분이 버스에 오르셨다. 매일 같은 시간에 버스에 오르시는 할아버님.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신다.


"어르신 요새는 좀 어떻게 지내셨어요."

"죽지 못해 사는 거지."

"아이고 그런 말씀 마셔요."

"사는 게 괴로워."

"그래도 어르신 노인정이라도 가서 사람도 만나고 대화도 나누시고 그래야지 혼자 있으시면 적적해져요."


자연스레 '노인'에 대해 생각이 옮겨간다. 나를 포함 요새 젊은 세대에게 노인은 영 달갑지 않은 존재다. 예전보다 유교문화의 지속력도 약해졌겠다, 노인공경은 이제는 정당한 사유 없이는 없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보이는 노인이란 해병대 모자 쓰고 꼰대짓 하고 광화문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박근혜를 석방하라는 '그들'이지 않은가. 어렵다. 다 무너져가던 나라를 그 어느 나라 국민보다 부지런하게 일으켜낸 세대인데 왜 존경받지는 못할 망정 광장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는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어서 시선을 돌리곤 했다.


그러다가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실마리를 찾았다.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던 곳에서 일군의 노인들이 서명대 집기를 부수고 유가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 그 고통스러운 소동이 끝난 후 행패를 부리던 노인 중 한 명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그 소란에 대해서 묻지 않고 "고향이 어디세요?'"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내와 살았던 시절로 갔다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들과 며느리 이야기로 옮겨왔다. 거리에 버려진 부서진 장롱 같은 그의 삶을 듣다가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한참 만에 노인이 불쑥 말했다.

"내가 아까 그 아이 엄마(세월호 유가족)들한테 욕한 건 좀 부끄럽지."
"그런 마음이셨군요. 그러셨군요."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사과를 받고자 시작한 얘기가 아니었지만 노인은 사과를 했다. 사과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노인의 마음속에 미안함이 조금씩 고이고 있다는 걸 대화 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정혜신 박사는 '존재에 대한 공감'을 말한다. 노인이 폭력을 후회한 것은 자기 존재에 주목해주고 자기 삶에 귀 기울여준 사람을 만나면서였으니.


노인은 보수단체에서 개최한 강의를 들었다.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잘살게 된 건 모두 어르신들 덕분이다. 어르신들이 진정한 애국자다. 오랜 세월 고생 많으셨다"는 얘기를 듣는데 코끝이 시큰했다. 노인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은 자기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였다.


태극기 집회가 운영되는 방식이 독특하다. 일단 노인분들을 모셔다 놓고 '어르신 고생하셨지요. 이 나라가 누구 노력으로 만든 나라인데 지금 이렇게 돼야 쓰겠습니까?'란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대접하지 않은 노인을, 가증스러운 보수단체가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노인을 혐오할 게 아니. 노인을 사회에 무익하고, 해로운 존재로 보는 시선이 자본의 시선과 닮아있고 내 시선도 이에 옮았지 않나 싶다. 효용가치가 없는 순간 폐기되는 그런 시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언젠가 경복궁역 역사에 앉아있는데 한 할머님이 '여호와의 증인' 팸플릿을 내미셨다. 어우 왜 그래. 하고 자리를 피할 수도 있지만 그날따라 할머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싶었다. 말할 대상이 간절해 보였달까. 그렇게 친구가 오기 전까지 할머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해드린 거라곤 이야기 몇 분 들어드린 것뿐인데 할머님께서는 참 감사해하셨다.


버스에 오른 할아버님이 한숨을 내뱉듯 "죽지 못해 사는 거지, 사는 게 괴로워"하고 하신 말씀이 귓가에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방 문 열리셨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