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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Feb 08. 2019

3호선에서 있었던 일 두 번째

사회가 만들어낸 아픔들에 대해 생각한다

간만에 쫙 빼입고 길을 나섰다. 낯선 풍경이지만 마냥 낯설지는 않은 풍경을 마주했다.


서른 초반으로 보이고, 지체장애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덥수룩한 머리의 남성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무릎깨에 종이를 내려놓았다.


헤드폰을 쓰고 멍하니 노래를 듣다가 내 무릎에 손바닥만한 종이가 놓이는 걸 보고는 그 분의 존재를 눈치챘다. 이럴 때면 참 난감하다. 그 분의 허름한 옷차림에 비해 나는 너무 가진 것이 많다. 괜스레 손으로 시계를 가렸다. 뻔뜩뻔뜩 명품시계는 아니지만, 고등학생 때 선물로 받은 꽤 낡은 시계지만.. 부끄러웠다. 저이가 받을 상대적 박탈감은 어떨까. 나는 안온한 자리에서 번지르한 말만을 뱉고있는 건 아닐까. 글에서라도 성찰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미워질 것 같아 이리 쓰는 중이다.


종이에 쓰인 글의 첫문장은 '저는 어릴 적의 기억이 없습니다.' '사창가 이모들이 버려진 저를 키워주셨습니다.'

사창가. 라는 단어에서 조금 움찔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안타깝고 한탄스러운.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성 노동자(단어에 대한 논의가 있어 사용이 조심스럽습니다)분들을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겁난다. 남성과 자본이 만들어낸, 짐작키 어려운 수많은 눈물들과 안쓰러움에 대해 생각한다. 사회의 가장 열악한 곳에 있는 그분들이, 당신 입 하나 먹고살기도 어려운 분들이 누가 버린지도 모르는 아이를 키워냈다는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그의 말은 거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거짓말을 쓸 알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남몰래 지갑에서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종이 밑에 감추어 건넸다. 건네받는 그와 눈이 살짝 마주쳤나 그랬나. 그가 꾸벅 허리을 숙였다. 나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 추위에 변변찮은 겉옷도 없는 그가 조금은 걱정스럽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추위에 얼어죽은 노숙인이 그가 될 것만 같아서.


사회가 만들어낸 아픔들에 대해 생각한다. 화려한 타임스퀘어 뒤의 홍등가를 생각한다. 빚져있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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