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 열여섯

작금의 근황 - 변화의 편

by 노마 장윤석

며칠 전의 한 인터뷰에서 기자는 내게 '활동가'라 부르면 되느냐고 물었다.


..?


무언가를 바꾸고자 하는 길에는 이론, 운동, 정치가 있다고 했다. 나는 정치가 어렵고 운동은 맞지 않으니 이론인가 보다 하고 그다지 열심히 읽지도 않는 책만 잔뜩 사놨는데, 지금은 집회를 열고 확성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정신없이 휘말려 버렸 정리할 새 없이 바쁜 시간을 이어왔다.


시험이 끝난 주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던 중에 그 일이 터졌다. 학교에 들어온 후 사랑방처럼 가던 복사실과 문구점에 호소문이 붙었다. 이번 달을 기점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는 내용.


그 글을 읽고 집에 돌아가는 길 뭔가 왈칵했다. 평범한 사람이 머리에 띠를 두르게 만드는 게 이 나라의 특징이라 했던가. 밀양이 그랬고 강정이 그랬으며 촛불이 그랬다. 도서관에 앉아 유유자적 책을 읽기에는 분명히 해야 될 일이 있었다.


나는 새내기 때 문구점 사장님이 학생이 무슨 돈이 있냐며 깎아주신 이천원을 기억한다. 그 클리어파일을 아직도 잘 쓰고있다. 매일 마감에 쫒기다 복사실에 허겁지겁 뛰어가고 복사실 사장님들께서 자기일처럼 도와주신 걸 기억한다. 오죽하면 내가 아직도 양면인쇄 하는 법을 모른다. 사장님께서 "아직도 이걸 모르면 어떻게 해"하고 매번 해주셔서. 3월 15일, 학교의 입찰통보에 걱정을 늘여놓으시던 복사실 사장님께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도와드리겠다고 한 내 말을 기억한다.


부끄러운 사람이 되진 말아야지. 그러진 말아야지. 입버릇처럼 이 말을 내뱉어도 실제 삶에서는 쉬이 부끄러워지기 마련이다.


하나의 부끄러운 기억은, 한 해 전 서촌에서 매주 토지공개념을 공부할 때였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들고 세미나를 하러 가는 길에는 궁중족발이 있었다. 쫓아내려는 사람과 지켜내려는 사람. 나는 그 투쟁현장에 들어가보지 못했다. 어느날에는 용역들이 새벽철거를 시작한다고 아무나 와서 도와달라고 페이스북에 긴급한 공지가 올라왔지만. 그렇게 쌓인 마음의 빚이 있다.


나는 지키려는 사람인가 지킨다는 말에 위안을 얻어 방관하는 사람인가. 그래서 복사실&문구점 지킴이가 되었다.


미안함인지 분노인지 당위감인지, 저번 주는 미친듯이 갈아넣었다. 기자회견을 열고 외빈들이 참석하는 개관식 옆에서 집회를 기획하고 연대단위를 모으고 대자보를 써 붙였다. 세어보니 한 주간 들어간 회의가 열개며 쓴 자보만 다섯개다.


농담삼아 믹서기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보다 더 알맞는 비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 일이 원래 힘든건지 내가 운동에 안 맞는건지 참 고되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요새 요가&등산 테크로 건강상태는 최상이니까.


나는 엄마에게 이 일을 하면서 내 시간을, 책 읽을 시간을 빼앗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말했다. "나 때는 '해야되니까'가 너무 강해서 그런 생각 할 겨를이 없었는데 말이지"


정혜윤 피디는 고민될 때 이렇게 묻는다 했다. '어느 쪽이 변화의 편이야? 어느 쪽이 더 나은 변화의 편이야?' 그리고 변화의 편에 선다고 했다.


이것저것 재곤하는 내가 새삼 부끄러워짐은 두 말 할 것 없다. 입으로는 변화를 말하면서 수반되는 노력에는 참 약했구나 싶어서. 참 가벼운 언어를 말해왔다 싶어서.


나에게 묻는다. 어느 쪽이 변화의 편이야? 어느 쪽이 더 나은 변화의 편이야?


그리고 그 편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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