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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이안 Jun 10. 2023

외로움 문제는 더 이상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며칠 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60대 초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저씨의 전화 통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통화 내용이 들려왔고, 저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져서 듣게 되었습니다. 딸과 통화하는 내용이었는데, 딸이 따로 떨어져 살고 계신 친할머니 댁에 혼자 방문했던 모양이고,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빠에게 전화를 한 것 같았습니다.

 

너도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할머니도 찾아뵙고… 우리 딸 다 컸네~!
할머니가 엄청 좋아하시지? 할머니랑 같이 저녁도 먹은 거야?
그래, 너 괜찮으면 할머니 얘기 좀 더 들어주고 와.
응~ 할머니한테 안부 전해주고~ 그래, 좀 있다 집에서 보자!

 

조용하면서도 다정한 아저씨의 전화 목소리가 제 귀엔 너무 기분 좋게 들렸습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정겨운 부녀지간의 전화 통화였거든요. 길지 않았던 통화 내용이었지만 충분히 어떤 상황인지 머릿속에 그려지더군요. 직장 생활을 하는 딸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혼자 살고 계시는 할머니 댁에 찾아갔고, 저녁까지 챙겨드리고 할머니 말동무까지 해주고 있다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자기 딸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하다고 느껴졌을까요?


‘할머니 혼자서 얼마나 외로우실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할머니를 찾아뵈러 간 손녀의 기특한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외로움이 사회문제로 공론화되고, 외로움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뉴스 보도도 종종 나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어쩌면 우리가 자주 접하고 싶은 따뜻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인 가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혼자 사는 고령자, 자발적 '은둔형 외톨이'(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어 표현으로 '히키코모리')도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고독사 수치도 2020년 이후 매년 3천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노년층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도 외로움의 고충을 많이 토로하고 있다는 통계 수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9년 외로움 관련 실태 조사 _출처 : 마이크로밀 엠브레인



이제 더 이상 외로움이 나와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외로움은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만 하는 사회 문제임이 분명합니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2018년 1월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만들어 ‘외로움부 장관’의 주도하에 외로움, 고독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 데 ㅠㅠ 그냥 부러울 따름입니다.


전 국민이 다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카톡’을 비롯해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다양한 소셜네트워크 플랫폼들을 통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초연결사회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갈수록 외로움, 고독, 소외감을 더 크게 느끼는 걸까요?

 

그건 아마도 사람들 간의 진정한 소통이 갈수록 힘들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피상적으로 주고받는 메시지, 일방적인 정보 전달과 검색 위주의 소셜네트워크 활용, 화려하고 행복 가득한 타인의 일상 모습(물론 꾸며지고 과장된 모습이 많겠지만…)과는 비교되는 냉혹한 자기 현실, 오프라인 만남보다는 온라인 만남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세태, 이해관계의 득실로만 따지는 인간관계, 더불어 부대끼며 사는 것보다는 혼자 독야청청 폼 나게 살고 싶다는 자기애(自己愛) 가득 넘치는 인생 가치관,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극단적인 불신 등 진정한 소통을 가로막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 스스로 외로움의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입니다. 국가 정책 차원에서 해야 할 일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각자 개인의 차원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 제기를 하고 공론의 장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는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옛말도 있듯이 자꾸 소리 내서 울어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 거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개개인들이 각자 주위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외로움에 지쳐서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위험에 처해 있는 건 아닌지 세심하게 챙긴다면 외로움 문제는 어느 정도 우리 선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한다는 전제하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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