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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이안 May 06. 2023

사람냄새나는 디지털 해방구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AI 기술이 뚝딱 튀어나오는 세상.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도 버거운 현실에서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만난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꼭 선행되어야 할 게 있는데 그건 바로 공감이다. 

공감조차 가지 않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에 감동을 논하다니,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기대 수준을 한 단계 낮춰서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건지 한 번 생각해 보자. 하루 종일 뉴스를 뒤져보고, 즐겨 방문하던 블로그 글도 열심히 스캔해 보자. 거의 대부분 사건 사고 이야기, 지지고 볶으며 싸우는 이야기, 새로운 신기술 이야기, 당신도 금방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허황된 이야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정보들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나에게 위안이 되고, 잠깐이라도 쉼을 줄 수 있는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가 목마른 세상이 되어 버린 거 같아서 조금은 씁쓸하다. 


2015년 겨울, 내 시선을 주말 밤마다 붙들어 놓았던 드라마가 있다.  


응답하라 1988

우리 아버지 엄마 같고 친구 같았던 주인공들이 쏟아 내던 아날로그적 감성에 푹 빠져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를 쏟아 내지만 밥상머리에서는 계란프라이 하나라도 자식들 밥 위에 얹어 주려고 마음 쓰는 아버지. 친구들을 몰고 점령군처럼 집안에 쳐들어와도 잔소리 한번 안 하시고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화려한 저녁을 챙겨 주시는 통 큰 엄마. 공부 잘하는 언니에 치여서 켜켜이 쌓여가는 설움도 많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웃어넘기는 착한 여동생. 매사에 불만 가득한 ‘투덜이’ 이지만 결국은 뭐든 못 이기는 척해주는 나쁜 남자 스타일의 친구. 주인공 한 명 한 명 공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가 없었던 웰 메이드 드라마였다. 


외국인들은 절대 공감하지 못할 우리들만의 이야기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호기심이 발동하여 유튜브를 찾아보니 외국인도 ‘응팔’을 보고 완전 공감한다는 브이로그 영상이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다. 가족, 친구, 사랑과 같은 주제는 만국 공통어가 맞는가 보다.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이 넘쳐나는 공감 백배 이야기가 그리운 건 나만 그런 걸까?


나는 평생을 마케팅, 광고일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클라이언트 제품을 팔기 위해 때로는 감동 가득한 에피소드를 찾아 밤을 지새운 날도 많았다. 리얼 세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감동 이야기가 아니라 억지로 짜낸 감동 이야기로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데 한계가 분명했다. 운 좋게 찾은 감동 에피소드가 잘 먹혀 들어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라도 하면 그나마 고생한 보람이 조금은 있었지만 그래도 찜찜함은 남았던 것 같다. 억지웃음, 억지 감동의 한계이겠지만… 


‘이렇게 하면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신기술을 빨리 적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 들로만 가득 찬 유튜브 콘텐츠보다는 ‘공감, 나아가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이 4차 산업혁명의 천지개벽 세상에서도 꼭 필요한 화두가 아닐까?’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브런치를 ‘제대로’ 만나게 되었다. ‘제대로’를 강조한 이유는 브런치가 영화 평론가나 문화 비평가들이 글을 올리는 특별한 공간인 줄로만 알고 매번 스쳐 지나쳤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제대로(?) 된 감동 가득한 브런치 글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틈만 나면 브런치에 들어가 수많은 작가들의 희로애락이 날것 그대로 담겨있는 글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참된 용기도 얻게 되었다. 


화려해 보이지만 정작 알맹이 없는 디지털 세상에 지친 내가 새로운 갈 곳을 찾아 길을 헤매다가 브런치에 와서야 진정한 해방구를 만나게 된 느낌이 든 것이다. 매일 출퇴근 하듯이 드나들다가 어느 순간 나도 직접 참여해서 이 해방구의 일원이 되면 어떨까 상상하게 되었고, 몇 달 만에 드디어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이제 나도 나만의 모래성을 직접 쌓아보며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진정한 일원이 된 것이다.


브런치는 해방구다. 브런치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사람냄새나는 해방구’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야 말로 ‘노벨평화상’을 받아 마땅하다. 뭐 ‘노벨평화상’이 여의치 않다면 ‘노벨플랫폼상’이라도 만들어서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진심으로 브런치를 사랑한다. 

브런치를 ‘사람냄새 가득한 해방구’로 만들어 가고 있는 작가님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사진 : Unsplash의 Harli Mar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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